
“당시 주위에서는 대호 형과 친한 척 그만하라고 뭐라 했지만 난 그런 말들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그런 말들이 나오면 나올수록 대호 형에게 더 다가갔다.”
이대호는 자신을 따르는 정훈을 살뜰히 챙겼다. 정훈이 야구 외적으로 선수단과 관련된 힘든 일을 할 때는 따로 불러 같이 시간을 보냈다. 그런 이대호에게 항의할 수 있는 선수는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정훈은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마산용마고 졸업 후 2006년 현대 유니콘스 신고 선수로 프로에 입단했다가 1년 만에 방출을 당한다. 이후 현역으로 군 복무를 마치고 모교인 양덕초등학교 야구부 코치로 활약하다 2009년 입단 테스트를 거쳐 다시 신고 선수로 롯데 유니폼을 입었고, 2010년 정식 선수로 등록됐다. 그래서 정훈의 KBO리그 통산 성적은 2010년부터 기록돼 있다.
이대호는 지름길이 아닌 울퉁불퉁한 자갈밭을 밟고 프로에 데뷔한 정훈이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버팀목이 돼줬다. 그런 ‘대호 형’의 기대와 관심 속에서 정훈은 ‘악바리’로 생존 경쟁을 벌인 끝에 16시즌 통산 1476경기 1143안타 80홈런 76도루 637득점 532타점 타율 0.271 OPS(출루율+장타율) 0.742를 기록했다.
정훈은 자신의 은퇴를 앞두고 2022년에 있었던 이대호의 은퇴식을 떠올렸다. 10월 8일 부산 사직야구장에서 있었던 이대호의 은퇴식에서 이대호는 동료 후배들에게 고별사를 전하며 특히 “이 순간에도 울면서 듣고 있을 정훈”을 언급했다. 고별사를 마친 이대호가 롯데 선수들과 이별 포옹을 하다 정훈을 만났을 때 이대호는 양팔을 활짝 벌려 울고 있는 정훈을 꼭 안아줬고, 정훈은 큰 소리를 내 오열했다. 이대호도 정훈을 품에 안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당시 은퇴식 앞두고 대호 형이랑 서로 울지 말자, 슬퍼하지 말자고 했는데 막상 은퇴식이 진행되니까 대호 형은 내가 처음 본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오래 알고 지냈는데 그렇게 슬픈 표정을 처음 봤다. 그래서 그 순간 펑 하고 터졌던 것 같다. 난 눈물이 거의 없는 편이다.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통곡하며 울 줄 몰랐다. 누구는 고라니 울음소리를 냈다며 놀리는데 그만큼 진심으로 대호 형이 그라운드에서 떠나가는 게 슬펐다.”
그래서 정훈에게 2026시즌에 자신의 은퇴식이 열린다면 가장 먼저 누구를 초대하고 싶은지를 물었다. 정훈은 숨도 안 쉬고 “대호 형”이라고 답한다. “그 외에는 아직 생각해보지 않았다”면서 말이다.
지금도 은퇴했다는 사실이 실감나지 않는다는 정훈.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코치직을 맡았다가 후배들에게 민폐가 될 것 같아 당분간은 현장보다는 또 다른 일을 찾아보고 싶다는 그는 ‘물음표’를 가득 안고 야구장 밖을 벗어났지만 그 안에는 미련보다는 후련함이 더 가득해 보였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