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구연 총재는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 취임 후 ‘팬 퍼스트’를 강조하며 프로야구 팬들에게 더 다가갈 수 있는 정책들을 연구했다. 더욱이 경기의 공정성과 빠른 경기 진행을 위해 새로운 제도 도입에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하지만 최근 정치권의 입김을 등에 업은 일부 야구인들이 허 총재를 흔들고 있다. 그 시작은 지난 10월 조국혁신당 김재원 의원을 통해 드러난 허 총재의 법인카드 내역이었다.
김재원 조국혁신당 의원은 KBO 내부자료를 입수해 허구연 KBO 총재가 외국 출장 때 기사가 딸린 최고급 차량을 렌트했고, 1주일도 안 되는 기간에 2000만 원을 사용했으며 1박에 최대 140만 원이 넘는 호텔에 머무는 등 호화 출장을 반복했다는 사실을 알렸다. 또한 허 총재가 해외 출장을 19차례나 다녀왔다며, 이는 프로농구(5회), 프로배구(1회)와 비교해 과도하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KBO 고위 관계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허 총재 취임후 해외 출장이 많아졌다는 지적이 있었는데 그건 이사회에서 허 총재에게 국제 교류 활성화를 위해 노력해달라는 요청이 있었고, 내년 3월 WBC를 위한 평가전이나 MLB 개막전, 그리고 2028년 7년 만에 부활하는 LA 올림픽 관련된 출장 등이 주를 이뤘다. 총재가 해외 출장시 최고급 차량을 렌트했다고 하는데 출장지가 미국이었다. 미국은 이동할 때 보통 한두 시간 이상이 소요된다. 이동하는 거리가 만만치 않았고, 의전과 총재의 연세를 고려한 데다 KBO 직원들도 함께 움직이는 터라 일반 승용차보다는 조금 더 가격이 나가는 SUV를 렌트한 것이다. 숙박 관련해서도 1박에 140만 원이 넘는 호텔에 머물렀다고 했는데 그때가 미국 애리조나였고, ‘슈퍼볼’이 열리는 기간에 호텔에서 미팅이 잡힌 터라 다른 때보다 숙박비가 두 배 이상 올랐다. 그 호텔이 비싸다고 다른 호텔에서 미팅을 갖자고 할 수는 없지 않나. 장기간도 아니고 하루 이틀 머물다 이동한 상황인데 ‘1박에 140만 원’이란 숫자만 부각돼 아쉬움이 남는다.”
김재원 의원은 KBO 내부 자료를 통해 허 총재가 2024년 9월부터 2025년 8월까지 11개월에 걸쳐 총 2310만 원을 법인카드로 결제해 스타벅스의 5만원 권 선불카드를 462장 대량으로 구입했고, 비슷한 시기에 KBO 사옥 인근의 한 과자점에서 총 548만 원어치 빵과 과자 세트를 법인카드로 구입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서도 KBO 고위 관계자는 설명을 이어갔다.
“스타벅스 선불카드는 KBO 직원들이라면 대부분이 다 받았을 것이다. 팀장들 불러서 팀원들에게 나눠주라고 했고, 연말에 워크샵이 열릴 때 상품으로 나눠주기도 했다. 만약 KBO 직원들 중에서 스타벅스 선불카드를 못 받았다면 그게 이상할 정도다. 한 과자점에서 빵과 과자 세트를 548만원 어치 구입했다는 건 빵이 아닌 쿠키 세트다. KBO를 찾는 야구인들, 야구 원로들에게 감사의 선물로 드렸다.”

KBO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서 “그 지적은 겸허히 받아들인다”면서 “그동안 한국시리즈 때마다 역대 KBO 총재들을 VIP 자격으로 초청했고, 올해도 전직 총재들에게 초청장을 보냈는데 김기춘 전 총재와 정대철 전 총재가 한국시리즈 1차전을 찾은 것”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사회적인 분위기를 고려하지 못했다는 점에 대해선 충분히 공감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1995∼1996년 KBO 8대 총재를 지냈다.
KBO는 사단법인이다. 법적으로는 비영리단체이기 때문에 KBO리그에 참가하고 있는 10개 구단의 회비(구단별 매 시즌 20억 원)로 운영된다. KBO는 올해 문체부로부터 스포츠토토 지원금 220억 원을 받았고, 구단 분배 후 KBO가 운용하는 금액은 139억 원이다. 이 돈은 유소년 육성 등 사업계획서를 제출한 항목에 사용하는 등 사용처가 정해져 있어 다른 용도로는 사용이 불가능하다. 지난 국정감사에서 문제 제기된 허 총재의 출장비와 업무추진비(스타벅스 선불카드, 쿠키 세트 구입 등)는 KBO 자체 예산으로 지원이 이뤄지기 때문에 그동안 감사 대상에서는 제외됐다. 다음은 KBO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전 총재 시절에도 총재의 법인카드 내역을 제출해 달라는 국회의원이 있었지만 단 한 번도 제출한 적은 없었다. 내부 경영 정보나 민감한 개인 정보도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총재의 법인카드를 정부 지원금으로 사용하는 게 아닌 구단이 낸 회비로 사용하는 거라 업무추진비 내역을 제출할 의무는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대신 KBO 이사회에는 사용 금액에 대한 보고는 있다. 매년 책정된 금액에서 어느 정도를 사용했는지에 대한 보고다.”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는 국정감사에서 제기된 KBO와 허구연 총재 관련 의혹에 대해 11월 중순 KBO에 관련 자료를 제출해 달라고 요청했고, 12월 초부터 사무검사에 착수했는데 최근 일정이 마무리된 것으로 알려졌다. KBO 측에서는 “실무자들이 직접 KBO에 나와 자료들을 다 확인했다”면서 “1월 중순 정도에 결과를 통보해주는 걸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11월 20일 KBO의 마케팅 담당 자회사인 KBOP 임원 A 씨에게 3개월 정직 처분을 내렸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A씨는 삼성 라이온즈와 NC 다이노스의 와일드카드 1차전이 열린 10월 6일 밤 대구 시내 한 호텔에서 속옷을 벗고 복도와 엘리베이터를 돌아다니는 추태를 부렸다. A 씨 사건이 관심을 끌었던 이유는 그가 허구연 총재의 해외 출장 경비와 법인카드 사용 내역 등 내부 문건의 외부 유출에 관련이 있다는 의혹을 받았기 때문이다. A 씨는 이후 제기되는 의혹들과 자신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KBO 내부 사정을 잘 알고 있는 한 야구인은 이런 이야기를 들려줬다.
“야구계에서는 오래 전부터 KBO를 움직이는 또 다른 ‘큰손’이 있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전직 총재 출신 중의 한 명이 KBO 일부 임직원들을 통해 ‘반허구연파’를 형성했다는 내용이다. 즉 그 총재 출신 인물이 여전히 KBO 내부 일을 관여하고 있다는 소문이 팽배하다.”
최근 한 매체에서는 “허구연 총재가 2023년 11월 용산 대통령실 모 수석 비서관을 찾아 총재 연임 관련해 도움을 청했고, 서둘러 KBO 총회가 소집돼 만장일치로 25대 총재로 선출됐다”고 보도했다. 이 보도가 나간 후 허 총재는 깊은 절망감과 안타까움을 토로했다는 후문이다.
KBO 고위 관계자는 “총재가 대통령실의 수석 비서관을 찾아가 총재 연임에 도움을 요청했다는 건 전혀 사실이 아니다”면서 “총재가 국가 스포츠 정책위 소속 위원이라 국회의원 상대로 강의한 적은 많았는데 그런 내용들이 왜곡돼 기사화되는 게 심히 안타까울 뿐”이라고 설명했다.
허구연 총재는 2022년 3월 건강상 이유로 사임한 정지택 총재 후임으로 선임됐다. 이후 2023년 11월 22일 KBO 총회를 통해 만장일치로 허구연 총재의 3년 연임이 결정됐다. 허 총재는 2023년 11월 18일 제 5차 KBO 이사회에서 총재 후보로 단독 추천됐고, 총회의 전원 찬성으로 선출이 확정된 것이다.
KBO 고위 관계자는 “옛날처럼 정치권의 입김이 총재 선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서 “지금은 철저하게 구단들이 구단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인물을 선임하는 거라 KBO 총재는 구단 눈치를 볼지언정 정치권 눈치를 보는 자리가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KBO 고위 관계자의 말대로 KBO 총재는 이전까지 정치인이나 기업인 출신의 인물들이 많았다. 국회의원이나 국무총리 출신이 총재를 맡은 적도 있다. 그러나 허구연 총재가 선임되기 전 KBO 이사회에서는 의전만 따지는 총재보다 실제로 야구를 위해 일할 수 있는 총재를 필요로 했고, 정지택 전 총재의 사임 후 잔여 임기를 수행할 총재를 찾다 선수 출신으로 지도자 경력과 해설위원으로 오랫동안 현장과 동행한 허구연을 새로운 총재로 추대한 것이다.
한 야구 해설위원은 최근 불거진 허구연 총재 논란 관련해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다.
“일하는 총재가 선임된 후 프로야구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메이저리그 개막전이 한국에서 열렸고, 미국에서도 시행하지 않았던 ABS 도입을 밀고 나갔으며 프로야구 흥행을 위해 많은 문턱을 낮췄다. 허구연 총재의 야구에 대한 열정과 추진력, 그리고 야구 원로들을 우대하고 야구인들의 화합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들은 이전 총재들이 보이지 못했던 성과들이다. 일부에서는 허 총재를 시기하고 질투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허 총재의 열정을 따라가지 못하는 KBO 직원들 사이에서 불만도 많다고 하더라. 허 총재가 청탁 등 관련해서 벽을 치다 보니 안 좋은 목소리를 내는 이들도 존재한다. 하지만 진정한 야구인들, 야구팬이라면 일하는 총재에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 프로야구의 발전을 위해서 더 이상 편 가르기가 존재하지 않기를 바란다.”
제 22대 KBO 총재를 역임했던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은 KBO 총재 시절 관련해 “총재 취임하면서 미디어센터 등 다양한 사업을 벌이려고 했지만 일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면서 “일부 사무국 직원들의 견고한 벽을 허물기가 쉽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자신보다 앞서 총재를 역임했던 인물이 대표팀 감독으로 호남 출신의 한 야구인을 추천한 적이 있었는데 그걸 수용하지 않았고, 또 다른 총재 출신은 정운찬 이사장에게 호남 출신하고만 일해서 유감이라는 내용의 문자를 보냈다고 전했다.
원로 야구인 B 씨는 허 총재 논란과 관련해 “총재의 열정은 높이 사지만 이전 총재에 비해 해외 출장이 많았고, 경비가 많이 지출된 건 사실”이라면서 “전임 총재들이 일을 안 해서라고 치부하기 보다 의혹이 제기된 문제들을 투명하게 공개해 불필요한 논란을 해소하는 게 더 옳은 방법이 아닐까 싶다”는 의견을 들려줬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