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일리노이주 북부 연방지방법원에 따르면 SM엔터는 2025년 11월 24일(현지시각) 불법 굿즈 판매업자들을 상대로 첫 상표권 침해 소송을 제기한 이후, 12월 1일부터 11일까지 총 8건의 소송을 제기했다. 주말을 제외하면 사실상 매일 법원에 소장을 제출했다.
SM엔터는 소장에서 “피고들은 중국 또는 상표 집행이 느슨한 해외 관할권에 거주하며, 정체를 숨기기 위해 수많은 가명을 사용해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적시했다.
불법 MD 유통업자들은 아마존, 월마트 등 글로벌 전자상거래 플랫폼에 입점해 정교하게 꾸며진 ‘가짜 상점’을 열고, 페이팔이나 신용카드를 통해 미국 달러로 결제를 유도해 소비자들이 정품 판매처로 착각하게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SM엔터는 소장에 “이들은 적발될 경우를 대비해 여러 개의 가상 상점을 동시에 운영하며 수익금은 미국 법원의 관할이 미치지 않는 역외 계좌로 빼돌리고 있다”며 “이들은 QQ.com 채팅방이나 ‘sellerdefense.cn’ 같은 웹사이트를 통해 단속을 피하는 법과 소송 대응 전술을 공유하고 있다”고 적었다.
또 소장에는 이들의 불법 MD 판매 행위로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소녀시대, 샤이니, 엑소(EXO) 등을 비롯해 NCT(127·DREAM·WISH), 에스파(aespa), 라이즈(RIIZE) 등 현재 주력 아티스트들의 팀명과 ‘광야(KWANGYA)’ 등 세계관 관련 상표권이 침해당한 사실이 구체적으로 명시됐다.
SM엔터는 재판부에 위조 업자들의 영구적인 판매 금지 명령을 요청하는 한편 미국 연방 상표법(랜험법)에 근거해 침해 건당 최대 200만 달러(약 29억 원)의 법정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특히 소장에는 아마존, 테무, 월마트, 페이팔 등 ‘제3자 서비스 제공업체’들이 피고의 광고를 비활성화하고 계정을 즉각 정지하도록 강제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김동현 마일스톤 특허법률사무소 대표 변리사는 “미국 소송의 경우 피고가 명확히 특정되지 않아도 일단 ‘그룹’으로 묶어 소송을 제기한 뒤, 법원의 명령을 받아 플랫폼으로부터 판매자 정보를 역추적할 수 있다”며 “위조 업자들이 익명 계정 뒤에 숨어 있더라도 입점 당시 등록한 계좌나 거주지 정보는 아마존 등 플랫폼에 남아있기 때문에, 이를 확보해 신원을 파악하고 결제 대행사(페이팔)를 통해 정산 대금을 동결해 자금줄을 차단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소송 무대로 낙점된 일리노이주 북부 연방지방법원은 위조 상품 소송에 유리한 법원으로 꼽힌다. 김동현 변리사는 “일리노이는 온라인 위조품 소송이 빈번해 압류 및 계좌 동결 절차가 매우 체계화된 관할”이라며 “특허 소송에서 텍사스동부연방지방법원이 선호되듯, 상표권 침해에 대해 손해배상액을 높게 인정하고 온라인 판매업자 제재에 유리한 판례가 많아 SM엔터가 전략적으로 선택한 ‘포럼 쇼핑(유리한 법원 선택)’의 일환”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소송이 단순히 배상금을 받아내기 위한 절차를 넘어, 즉각적인 ‘판매 중단’을 압박하는 가장 확실한 수단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통상적으로 상표권 침해 소송에서 ‘고의성’ 여부는 배상 규모를 결정짓는 핵심 쟁점인데, 소장 접수 자체가 피고인들에게는 더 이상 상표권 존재 여부를 몰랐다고 발뺌할 수 없는 확실한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이준석 로한국제특허법률사무소 대표는 “상표권 침해는 법적으로 형사처벌까지 가능한 사안”이라며 “소장 접수는 통상적인 경고장 발송보다 훨씬 강력한 효력을 갖는다. 소송이 제기된 후에도 판매를 계속할 경우 ‘악의적 고의’가 명백히 입증돼 향후 감당할 수 없는 법적 리스크를 떠안게 되므로, 위조 업자들로서는 즉각 판매를 중단할 수밖에 없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조치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IP(지식재산권) 비즈니스의 중요성이 커진 상황과 맞물려 있다. NCT, 에스파, 라이즈 등 소속 아티스트들의 글로벌 팬덤이 확장되면서 MD 매출 규모도 급증하고 있지만, 알리익스프레스나 테무, 아마존 내 제3자 셀러 등을 통한 가품 유통으로 인한 손실 또한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전 세계 위조 및 불법 복제 상품 거래액은 연간 약 4670억 달러에 달하며, 이는 전체 무역 수입액의 2.3%를 차지한다. 특히 미국 관세국경보호국(CBP) 집계 결과 2024 회계연도에 압수된 지식재산권 침해 물품의 약 90%가 중국과 홍콩에서 발송된 것으로 집계됐다.
엔터업계 한 관계자는 “중국 공장에서 대량으로 찍어낸 위조 굿즈가 전 세계에 만연해 있어 업계도 골머리를 앓고 있다”며 “국내 이커머스 플랫폼에서도 가짜 응원봉을 손쉽게 찾을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해외 투어 현장에서는 공식 MD 부스 바로 앞에서 짝퉁 상인들이 좌판을 깔고 저가 공세를 펼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고 설명했다.
불법 MD 유통은 북미 등 서구권 시장 공략이 시급한 SM엔터 입장에서 더욱 뼈아픈 대목이다. 실제로 증권가는 SM엔터의 더딘 서구권 확장을 우려하며 눈높이를 낮추고 있다. 2025년 11월 6일 한화투자증권, NH투자증권, 미래에셋증권, 유진투자증권 등 주요 증권사들은 “아시아 내 팬덤은 견고하나 미국 등 서구권 시장에서의 모멘텀이 부족하다”며 SM엔터의 목표주가를 일제히 하향 조정했다. 앨범 판매량은 준수하지만, 경쟁사 대비 북미 시장에서의 파급력과 수익화 속도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냉정한 평가다.
이환욱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하이브나 JYP엔터테인먼트, YG엔터테인먼트 등 경쟁사들이 빌보드 차트 진입이나 스트리밍을 통해 서구권의 ‘라이트 팬덤’을 확보하고, 이를 대규모 투어와 MD 매출로 연결하는 수익화 모델을 구축한 반면, SM엔터는 여전히 앨범 판매 위주의 ‘코어 팬덤’ 비즈니스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주력 IP인 에스파가 분전하고 있지만 경쟁사 대비 서구권에서의 인지도 확산 속도는 아직 아쉬운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결국 이번 대규모 소송전은 본격적인 서구권 확장에 앞서 기형적인 수익 구조를 개선하고, MD 등 부가 판권 시장에서의 누수를 원천 차단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앞서의 엔터업계 관계자는 “그간 SM엔터는 영미권 진출 의지가 컸던 것에 비해 경쟁사 대비 가시적인 성과는 아쉽다는 평가를 받아왔다”며 “이번 대규모 소송전은 본격적인 미국 확장을 앞두고 수익 누수를 막기 위한 조치인 동시에, 해외 성과에 민감한 시장과 주주들에게 적극적인 리스크 관리 의지를 보여주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와 관련, SM엔터 관계자는 “미국에서 아티스트 MD의 불법 상품 및 유통 관련 소송을 진행 중이다”라며 짧게 입장을 밝혔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