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동혁 대표는 주저하지 않았다. “설마 제명까지 하겠느냐”는 기류가 당 내부에서 주를 이뤘고, “제명은 절대 안 된다”는 주장이 쏟아진 장외 집회까지 열린 상황이었다. 한 전 대표 측 지지자들은 1월 24일 서울 여의도에서 집회를 열고 징계 철회를 요구했다. 한 전 대표가 집회에 참석하지 않았지만 이날 집회엔 3만 명이 모인 것으로 추산됐다.
그러나 장 대표는 이빨을 꽉 깨물었다. 6·3 지방선거를 불과 4개월여 앞둔 시점에서 ‘뺄셈 정치’라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한 전 대표와 이혼 도장을 찍었다. 1월 29일 국민의힘 최고위원회의는 당 중앙윤리위원회가 이른바 ‘당원 게시판’ 사태의 책임을 물어 한 전 대표에 대해 내린 제명 처분을 원안대로 의결했다.
장동혁 대표는 ‘쌍특검’ 요구 단식을 마치고 당무에 복귀한 지 이틀만인 이날 최고위를 처음 주재하면서 한 전 대표 제명을 확정했다. 당무 재개 이후 첫 결정을 ‘한동훈 제명’이라는 극약 처방으로 내세운 셈으로 한동훈 제명의 상징성은 더 커졌다. 장 대표 측은 당을 위험에 빠뜨린 장본인인 만큼 하루라도 빨리 당에서 제거해야 한다는 이유를 들고 있다.
장동혁 지도부의 이런 결정은 친한계 김종혁 전 최고위원 징계 결과가 나왔을 때부터 어느 정도 예상됐었다. 중앙윤리위원회는 언론 인터뷰 등에서 당 지도부와 당원을 모욕하는 언행을 했다는 이유 등으로 김 전 최고위원에게 1월 26일 탈당 권유 처분을 내렸다. 앞서 당무감사위가 김 전 최고위원에 대해 당원권 정지 2년 처분을 내린 것보다 수위가 높았다. 탈당 권유는 제명 다음으로 높은 수위의 징계다.
장동혁 지도부의 한 전 대표 제명 결정은 오랜 숙고의 결과라는 게 정치권의 한결같은 평이다. 한 전 대표와는 한 배를 탈 수 없다는 입장을 일찌감치 정했고, 더 늦기 전에 싹을 잘라야 한다는 판단을 내렸다는 것이다. 장 대표가 단식 카드를 꺼낸 것을 두고는 ‘한동훈 징계’ 에 따른 당내 파장을 최소화하려는 노림수로 풀이되기도 했다.
장동혁 대표와 가까운 최고위원들 메시지에서도 이런 의미가 읽혀졌다. 1월 29일 조광한 최고위원은 “과감한 구조조정이 희생의 첫걸음”이라며 한 전 대표를 구조조정 대상으로 지목했다. 김민수 최고위원도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당원 게시판 사태를 거론하면서 “똑같은 행위를 제가 했다면 15개월이나 (제명하지 않고) 끌었겠느냐”고 쏘아붙였다.
장 대표의 한 최측근 인사는 “대화를 할 때 자기주장이 너무 강하고 상대의 의견을 듣지 않는 모습에 대해 장 대표는 여러 차례 주변에 한 전 대표에 대한 실망감을 표시했었다”며 “좌중을 배려하지 않고 자기 말만 한다는 비판을 받았던 윤석열 전 대통령보다 더 심한 독선적 모습까지 여러 차례 목격한 바 있어 자신이 아니라 국민의힘이라는 공당을 위해서 한 전 대표와는 정당 생활을 같이 하기 어렵다는 최종 결론을 내린 것”이라고 전했다.
장동혁 지도부가 한동훈 내치기에 대한 명분을 충분히 쌓아왔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한 전 대표가 장 대표의 단식 농성장을 찾지 않은 것을 두고 비판이 쇄도한 바 있는데, 이 부분이 압도적인 제명 찬성 결정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전해졌다. 한 전 대표 제명 의결에는 당 대표·원내대표·정책위의장까지 모두 9명의 최고위원이 표결에 참여, 7명이 찬성했다. 친한계인 우재준 최고위원만 반대였고, 제명에 부정적이었던 양향자 최고위원은 기권했다.
장 대표 측은 한 전 대표가 스스로 빌미를 제공해왔다는 의견도 내놓는다. 당원 게시판 사태가 처음 불거졌을 때 털고 갔다면 별 문제가 없었는데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다가 일을 키웠다는 것이다. 게다가 가족이 연루됐다는 여러 정황이 나왔을 때도 깨끗하게 사과하고 불을 껐으면 됐는데 오히려 역공 자세를 드러내면서 태도 점수를 깎아먹었다는 게 장 대표 측의 논리다.

한 전 대표 제명 후폭풍은 거세게 불었다. 당사자인 한 전 대표는 제명 결정이 나온 날 오후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에서 “저를 제명할 수는 있어도 국민을 위한 좋은 정치의 열망을 꺾을 수는 없다”며 “우리가 이 당과 보수의 주인이다.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기다려 주십시오. 저는 반드시 돌아온다”고 했다.
한 전 대표 발언은 “(당대표를 지낸) 내가 이 당의 주인이므로 결코 이 당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읽힌다. 한 전 대표 제명으로 당을 떠나려는 지지자들에게도 ‘당에 남아 달라’는 신호를 보낸 것으로도 받아들여졌다. 한 친한계 인사는 “때리면 때릴수록 한 전 대표 체급은 올라갈 수 있다. 보수 진영에서 한 전 대표의 몸값을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전 대표는 과거 유승민 전 의원이나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처럼 신당 창당의 길은 걷지 않겠다고 밝혔다. 대신, 당 외곽에서 국민의힘 유니폼을 벗지 않은 채 장동혁 지도부와 대결을 벌일 전망이다. 우선, 지방선거를 앞두고 창당을 준비하기까지 시일이 빠듯하다. 유승민 전 의원의 바른정당 창당은 실패로 돌아갔고, 이준석 대표의 개혁신당도 성공 사례로 보기는 어렵다는 판단도 깔려 있다. 여기에 친한계 의원들 상당수가 탈당 시 의원직을 상실하게 되는 비례대표라는, 현실적 고충도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한 전 대표와 함께 친한계는 조직적으로 움직이면서 장동혁 대표 사퇴를 들고 나왔다. 친한계 의원 16명은 제명 결정 직후 국회 본청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한 전 대표에 대한 제명 결정은 심각한 해당 행위로, 우리 의원들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며 “개인적 이익을 위해 당을 반헌법적·비민주적으로 몰아간 장동혁 지도부는 이번 사태에 책임을 지고 즉각 물러나야 한다”고 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장 대표 퇴진을 외치고 나온 것은 장동혁 지도부에 큰 위기감을 던지고 있다. 오 시장은 제명 결정 직후 소셜미디어(SNS)에 올린 글에서 “장 대표가 기어이 당을 자멸의 길로 몰아넣었다. 국민께 사랑받고자 하는 정당이라면 결코 있을 수 없는 결정으로, 결국 당 대표 개인과 홍위병 세력을 위한 사당화라고밖에 볼 수 없다”며 “장 대표는 즉각 물러나야 한다”고 몰아세웠다.
여론 지형이 자신에게 유리하다고 보는 한 전 대표는 지지층 결집을 통해 장동혁 때리기의 강도를 높인다는 전략이다. 한 전 대표 지지자들은 1월 31일 국회 인근에서 국민의힘 지도부를 비판하는 집회를 개최한다. 세 과시를 통해 장 대표를 압박하겠다는 것이다. 한 전 대표는 2월 8일 서울 송파구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토크콘서트까지 진행, 팬덤층을 총동원해 장동혁 지도부 공격에 나선다.
친한계 한 초선 의원은 “한 전 대표가 무작정 장동혁 때리기만 한다고 해결될 것은 없다”면서 “정치인은 결국 선거에서 승부를 벌일 수 있어야 하는데 이번 지방선거와 동시에 치러질 보궐선거를 겨냥해 보수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대구나 부산에서 무소속 후보로 나서 승리를 따낸 뒤 금의환향하는 모델을 준비할 것”이라고 했다.
그동안 한 전 대표는 6월 지방선거 또는 재보궐 선거 출마에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해왔다. 하지만 정치권은 물론 친한계에서조차 이번엔 재보선에 등판해야 한다는 기류가 퍼지고 있다. 장동혁 체제의 국민의힘이 선거에서 지더라도 기회를 얻기 위해선 한 전 대표가 원내로 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전 대표 주변에선 대구 지역 재보선 출마가 유력하게 거론된다.

단식 농성으로 모처럼 단일대오를 이뤄냈던 장동혁 대표 측은 예상보다 거센 후폭풍에 당혹스러워하는 모습이다. 특히 오세훈 시장의 용퇴 요구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장 대표 측과 가까운 한 의원은 “지방선거와 맞물려 더 큰 파장이 일고 있는 것 같다”면서도 “장 대표, 지도부가 물러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장 대표 측은 ‘빅텐트’를 포함한 보수 재결집으로 한동훈 제명 파동을 극복하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한 전 대표 제명은 가짜 보수를 퇴진시키는 과정에 불과하다는 목소리도 뒤를 잇는다. 장 대표 측 인사들이 ‘진짜 보수’를 강조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한 전 대표 역시 ‘진짜 보수’를 내걸고 있다는 점을 떠올려보면, 향후 양측이 보수의 적자를 놓고 일전을 벌일 것으로 점쳐볼 수 있다.
장동혁 지도부 관계자들은 물론, 국민의힘 중진 의원들이 최근 ‘윤석열·한동훈 동반 퇴진론’을 흘리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당이나 의회에 대한 학습이 되지 않은 검사들의 정치 입문은 보수 정치사에 큰 오점을 남겼고, 그 퇴진 시점이 지금이라는 뉘앙스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도 매일 SNS에 글을 올리면서 한동훈 전 대표 등 이른바 용병들에 대한 인적 청산이 보수 정당 재기의 첫걸음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외부에서 수혈한 용병들의 구조조정을 마무리한 뒤, 그 빈자리를 정통 보수로 채워야 한다는 주장을 펼 것으로 관측된다. 이미 장동혁 대표는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를 향해 러브콜을 보냈다. 또한 단식 투쟁 중 자신을 찾아와 위로했던 유승민 전 의원에 대해서도 손을 내밀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방식으로 보수 빅텐트가 꾸려지면 지방선거 국면이 닥치고 결국 당의 원심력은 사라지고 지도부가 구심력을 확보할 것으로 국민의힘 주류 측은 기대한다. 선거 승리를 원하는 보수 지지층이 결집하면 친한계의 지도부 때리기 목소리도 힘을 잃을 수밖에 없고, 제명당한 한 전 대표가 홀로 고립되면서 존재감이 사라진다는 시나리오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정당은 선거 승리를 통해 존재감을 확인한다. 장동혁 대표는 유승민이든, 이준석이든 어르고 달래서 빅텐트를 만들 수 있어야 지방선거 승리를 담보할 수 있다. 지금 당장은 장동혁 퇴진론까지 나오고 있지만 빠른 시일 내에 정통 보수를 연상시킬 수 있는 빅텐트를 만드는 모습이 나온다면 위기는 극복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런 절차를 감당해낼 고난이도의 협상력이 장 대표에게 내재하고 있는지, 핵심 참모 중에 이런 능력자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병준 언론인 master@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