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준 인수위원장이 새 정부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되면서 명실상부한 차기 정부 실세로 거듭나고 있다.
김 후보자는 지난 대선 때 새누리당 공동선대위원장으로 참여하면서 정치권에 첫 발을 내디뎠다. 당시 박 당선인은 김 후보를 영입하기 위해 '삼고초려'를 마다하지 않았다. 이전까지는 박 당선인과의 친분이 전무하다시피 했고 정치와는 무관한 삶을 살았다. 김 후보 스스로도 캠프 해단식 때 “평생 정치에는 전혀 관여할 일이 없었고, 또 관여하리라는 생각은 꿈에도 한 일이 없었다”라고 밝힌 바 있다.
▲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 사진은 지난해 12월 20일 김용준 인수위원장이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에게 축하 인사를 건네는 모습.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3년 뒤에는 '최연소 판사'라는 타이틀까지 거머쥐었다. 김 후보자는 대법관 시절 <우먼센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어린 마음에 낙담할 때가 많았다. 나는 왜 친구들처럼 뛰지 못할까. 그러나 철이 들면서 그나마 걸을 수 있다는 것이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라고 회고하기도 했다.
김 후보자는 할 말은 하는 적극적인 성격을 소유하고 있다.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 때마다 거침없는 언변으로 화제를 모았다. 2003년 참여정부 초기에 <동아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김 후보자는 “노무현 대통령이 과연 법치주의를 확고하게 구현할 의지가 있는 것인지 확신이 서질 않는다”라고 거침없는 발언을 했다.
최근의 반값등록금 논란에 대해서도 “그저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에서 얻은 쪼가리 지식이 전부인 줄 아는 일부 젊은이들에게 따끔하게 실력을 키우라고 왜 얘기 못 하나. 노력도 안 하는 대학생들에게 국민이 세금으로 등록금을 대신 내줘야 하나”라며 쓴소리를 날리기도 했다.
2010년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는 “수도이전 법안을 위헌이라고 결정했다면 그 위헌 결정을 피해가기 위해 만든 세종시 법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위헌 결정을 했더라면 좋았을걸 하는 생각이 가끔 든다”며 '세종시 수호자'인 박 당선인과 다른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김 후보자는 자신과 같은 '소아마비' 장애를 이유로 법관 임용에서 탈락한 박은수 전 민주당 의원을 도운 일화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김 후보자는 당시 고등법원 부장판사라는 중책을 맡고 있었지만 법원 결정에 대립각을 세우며 장애인단체·사회기관과 박 전 의원을 연결시키는 데 힘을 보탰다. 당시 상황에 관해 박 전 의원은 자신의 저서에서 “김 소장(김 후보자)은 이를 바로잡지 못하면 다른 사람들도 똑같은 일을 당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분명하고 단호한 입장을 표명했다”라고 밝혔다. 결국 박 전 의원은 법원의 항복을 얻어냈고 김 후보자와 같이 대구지방법원에서 판사 생활을 시작했다.
▲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정치권 관계자들은 김 후보자가 새누리당 선대위원장과 인수위원장을 거쳐 새 정부 첫 총리도 발탁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침묵의 금도'를 지켰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실제로 김 후보자는 1994년 헌법재판소장에 임명될 당시 “직무와 관련 없는 모든 인터뷰는 퇴임 이후로 미룬다”는 원칙을 세웠을 정도로 신중한 성품을 지녔다. 지난 대선 기간 중에 쏟아진 각 언론매체의 인터뷰 요청도 대부분 사양한 채 조용히 선대위를 조력하는 일에만 매진했다. 김 후보자의 이 같은 소신과 원칙은 박 당선인과도 상당 부분 겹친다.
김 후보자는 초대 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직후 “헌법에 따라 대통령을 보좌하고 명을 받아 행정 각부를 총괄, 성실하게 임무를 충실할 것”이라며 “국회 동의를 얻는 절차가 남았지만 동의를 얻어 새로 출범하는 박근혜 정부 첫 국무총리로 임명받으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장애를 극복하고 법조계 거물에서 새 정부 실세로 거듭나고 있는 김 후보자의 향후 정치행보에 정치권은 물론 국민적 이목이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