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관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언성이 높아지자 근거로 ‘중앙지검 내부 지침’을 내밀었지만 제대로 확인시켜 주지 않았다는 게 변호사의 설명이다. A 변호사는 피의자 진술을 볼펜으로 받아 적은 뒤 다시 컴퓨터로 옮겨 문서화해야 했다.

변호사가 검찰 조사 동행 시 ‘노트북’ 사용을 금지하는 규정이 정해져 있을까. 취재 결과를 종합하면 ‘그런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은 없다. 다만 몇몇 경우에는 전자기기 사용을 제한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검사와 사법경찰관의 상호협력과 일반적 수사준칙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은 피의자신문에 참여한 변호인이 피의자의 옆자리 등 실질적인 조력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앉도록 해야 하고, 정당한 사유가 없으면 피의자에 대한 법적인 조언·상담을 보장해야 하며, 변호인의 메모를 허용해야 한다’고 막연하게 명시돼 있다.
검찰사건사무규칙에서는 ‘변호인은 신문 내용을 수기로 기록할 수 있다’면서도 제한할 수 있는 경우를 제시했는데 △신문·조사 내용을 전자기기를 활용해 촬영·녹음하는 경우 △수사 지연, 신문·조사 방해 또는 수사기밀 누설 등 수사에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는 경우 △신문·조사를 종료한 후 조서의 내용을 옮겨 쓰는 경우 △다른 사람의 개인정보 유출 등 사생활의 비밀 또는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 등으로 구체화해 놨다.
과거 전자기기가 없던 시절 ‘수기(手記)’라는 개념으로 마련된 규정을 여전히 유지하다 보니 검찰이 과거에 머무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검찰은 피의자를 조사하면서 작성된 조서를 변호사에게 곧바로 공유해주지 않는다. 객관적인 기록을 남기기 위해 영상 조사를 희망해 영상녹화조사실에서 조서를 촬영·녹음하더라도, 해당 자료는 피의자나 변호인 측에 제공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조사 중 나온 중요한 내용들을 기록해야 하는 변호사에게 ‘메모의 권리’가 허용돼 있지만, 일부 검사나 수사관들이 “노트북을 사용은 불가하다”며 수기 기록만 강요하고 있다.
위 사건으로 불편을 겪은 한 변호사는 “검사나 수사관에 따라 노트북 사용을 허가하거나 불허하는 등 가이드라인이 정해져 있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회의조차 자동으로 기록되는 시대에 검찰 조사에서는 수기로 메모한 뒤 이를 다시 노트북으로 옮겨 동료 변호사나 의뢰인과 공유해야 한다는 점은 21세기 디지털 환경과 동떨어진 조치”라고 지적했다.
특수부 부장검사를 역임한 한 법조인은 “노트북 사용에 대해 별도의 가이드라인을 지시받은 적이 없어서 검사나 수사관 각자의 판단 영역으로 알고 있다”며 “사건에 따라 다르겠지만 언론에 노출될 정도의 중요 사건이 아니라면 변호사의 노트북 사용을 허용하는 게 옳은 것 같다. 녹음이나 촬영을 걱정할 수 있지만, 이는 어차피 변호사가 스마트폰으로 몰래 녹음을 해도 가능할 정도로 이미 전자기기가 보편화되지 않았느냐. 노트북은 본질이 아닌 것 같다”고 설명했다.
소형 로펌의 대표변호사는 “변호인들에게 전자기기 사용을 금지한다면 무기 대등 원칙에 따라 수사기관도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아야 하는 것 아니냐”며 “전자기기가 아닌 타자기를 가져오면 그건 허용할 것인지 묻고 싶다”고 비판했다.
#6년 전 변화한 경찰, 여전히 빗장 건 검찰
검찰의 ‘노트북 결벽증’은 경찰과 대비된다. 경찰은 2020년부터 변호사의 노트북 사용을 전면 허용했다. 당시 이 변화를 주도했던 조순열 서울지방변호사회장(당시 대한변협 부협회장)은 민갑룡 경찰청장과 조율해 변호사가 일선 경찰서 조사 동행 때 노트북으로 조사 내용을 기록할 수 있도록 내부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경찰은 대한변협과 조율해 “신문 방해, 수사기밀 누설 등 수사 방해에 대한 우려만 없다면 수사 과정에 참여하는 모든 변호사는 간단한 메모 목적으로 휴대폰, 노트북, 태블릿PC 등 전자기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변호인의 전자기기 사용 메모권 보장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전자기기 사용은 전면 허용하면서도 ‘조사 과정 문답 대부분을 촬영, 녹음, 속기해 수사에 현저한 지장을 주거나 줄 우려가 있으면 전자기기 사용이 제한되거나 변호사 참여가 제한될 수 있다’는 점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검찰청 폐지가 예정된 만큼 올가을 중수청과 공소청이 신설될 때 ‘전자기기 전면 사용 허가’를 내부 규정에 명시하도록 정책적으로 추진하겠다는 게 서울변호사협회의 계획이다. 조순열 서울지방변호사회장은 “검찰이 우려하는 노트북을 이용한 녹음이나 촬영하는 변호사가 적발될 경우 곧바로 징계로 이어질 사안”이라며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몰래 촬영할 변호사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향후 신설될 중수청이나 공소청은 동행한 변호사에게 노트북 등 전자기기 사용을 전면 허용해 경찰처럼 조력권을 보장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서울변회 차원에서 필요한 모든 조치를 강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환한 객원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