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신문>이 입수한 현대증권의 내부문서 ‘SK 증권 정산 현황(왼쪽)’과 ‘확인증.’ | ||
2002년 KT 지분 매각 당시 가장 많은 지분을 사들일 것으로 예상됐던 기업 중 하나는 무선 통신의 절대강자 SK텔레콤이었다. SK텔레콤은 계열사인 SK증권을 통해 지분을 사들이면 좋으련만 SK증권은 매각주간사로 선정되지 못했다.
공동매각주간사로 선정된 곳은 현대증권을 포함해 LG투자증권과 삼성증권 3개사. 당시 전략적투자자(대기업)의 KT 지분 매입은 삼성 LG SK의 3파전 양상으로, ‘연막작전’까지 펼치며 서로 심한 견제를 하고 있었다. SK텔레콤으로서는 기밀유지가 어려운 경쟁그룹 계열사 삼성증권과 LG증권을 통해 대규모 청약을 하기 어려웠다. SK텔레콤과 현대증권의 ‘밀월’이 시작되는 부분이다.
결국 현대증권은 SK텔레콤의 청약분을 포함해 5조 원에 육박하는 정부 지분 매각 물량 중 절반 가까이 판매해 수수료 등으로 250억 원대 수익을 올렸다. 한데 이 중 81억여 원이 SK증권으로 넘어간 정황이 포착됐다.
<일요신문>이 입수한 현대증권의 내부문서 ‘SK 증권 정산 현황(2007.02.08현재)’을 보자. 위부터 ‘I. 지급약정금액 81억 5556만 5000원/ Ⅱ. 계약에 의한 지급액 45억 728만 5000원/ Ⅲ. 잔액(I-Ⅱ) 36억 4828만 원’으로 나와 있다. 현대증권과 SK증권 사이에 모종의 계약이 있었다는 얘기다. 증권회사들 간에 만연된 것으로 알려진 ‘수수료 밀어주기’ 또는 ‘커미션 제공’ 의혹이 불거지는 대목이다.
▲ 현대증권 | ||
특히 단일항목으로 최고액을 기록한 SK 주식매각이 눈길을 끈다. 이는 SK-소버린 경영권분쟁 때 SK가 소버린에 대항하기 위해 현대증권에 SK주식의 매입을 요청했고 이에 현대증권은 명의개서 폐쇄일 직전에 SK주식을 매입한 후 곧바로 이를 매도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손실 등을 정리한 항목으로 전해진다.
이처럼 현대증권은 SK증권에 4년여 간 수수료를 돌려주었고 ‘정산현황’ 맨 밑에는 ‘Ⅴ. 잔액’이 3495만 1849원이 남아 있다고 기재되어 있다.
이런 내용이 사실로 확인된다면 현대증권과 SK증권은 증권거래법 제52조(부당권유행위등의 금지) 3호와 제52조의4(증권회사등에 대한 부당요구 금지)를 위반했을 가능성이 있다.
증권거래법 제52조 3호, 시행령 36조의3, 3호에서는 ‘증권회사는 유가증권의 매매 기타 거래와 관련하여 고객에게 직접 또는 간접적인 재산상의 이익을 제공해서는 안 된다’고, 동법 제52조의4에서는 ‘누구든지 증권회사가 영위하는 업무와 관련한 수수료 지급을 대가로 부당하게 당해 증권회사 또는 그 임직원으로부터 금전·서비스 기타 재산상의 이익을 제공받거나 자기 또는 제3자에게 이를 제공하도록 요구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사안을 검토한 이상훈 변호사는 “현대증권과 SK증권의 거래가 사실이라면 현대증권은 매각주간사로서 정부 주식을 SK텔레콤에 공정하게 매각해야 함에도 SK그룹 계열사인 SK증권에게 81억여 원이라는 재산상의 이익을 제공하는 행위(제52조 위반)를 했고, SK증권은 현대증권이 주간사로서 진행하여야 할 업무와 관련, 수수료 지급을 대가로 현대증권에 81억여 원이라는 재산상의 이익을 요구하고 제공받는 행위(제52조의4 위반)를 한 것으로 보인다”고지적했다.
▲ SK증권 | ||
두 증권사의 증권거래법 위반 의혹에 대해 지난 13일 금감원에 조사를 요청한 전국민주금융노동조합 현대증권지부(노조) 민경윤 위원장은 현대증권의 배임 의혹도 제기했다. 민 위원장은 “현대증권은 정당한 수수료수입을 불법적인 계약을 통해 SK증권에 넘겼다. 또 이 과정에서 고의로 손실을 내는 등 회사와 주주에 손해를 끼치는 행위를 했다. 이 부분은 검찰에 고발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노조는 지난 3일 두 증권사와 그룹 총수인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에게 고발 방침을 알리고 대책을 촉구하는 공문을 발송했다. 민 위원장은 “현대증권은 회사와 무관하다고 했고 SK증권 측은 묵묵부답이었다”면서 “결국 관계 당국에 이를 알려 진실을 규명하고 잘못을 바로잡는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한편 현대증권에 사실 확인을 요청하자 홍보 관계자는 “그 내용은 잘 모르겠다. 확인해 봐야 할 듯하다”면서도 재차 추후 확인과 회사의 공식 입장을 요청했지만 “예전 일이라 확인은 쉽지 않을 듯하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SK 증권 정산 현황’ 문서에 대해서도 “들어본 바 없다”라고 말했다. SK증권의 홍보 관계자도 “기업금융 쪽 얘긴데 답변해 줄 사람이 없을 듯하다. 사실 확인이 어렵다”라고 말했다.
이성로 기자 roile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