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4억 원의 사학비리를 저지른 이홍하 이사장이 설립한 서남대 외부 모습. 돈을 아끼려 대부분 건물은 부실 공사로 지어졌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서남대학교 교직원들은 ‘만능 일꾼’이다. 총장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정장을 차려 입고 출근은 하지만 그의 주요일과는 쓰레기 줍기다. 심지어 조경과 운동장 잔디를 깎는 일도 교직원의 몫이다. 무더운 여름 땀을 뻘뻘 흘려가며 나무의 가지치기를 하는 교직원을 위해 연신 음료수를 사다 나르는 총장의 모습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경비절감을 이유로 청소 용역은커녕 교직원조차 제대로 고용하지 않는다. 십수 년 서남대 남원캠퍼스에서 근무했다는 한 교직원은 “기본적인 일 처리만 해도 버거운데 여기에 잡일도 어마어마하다. 매일 이사장이 학교에 들러 점검을 하는 탓에 오히려 청소에 더 신경 써야 할 지경”이라고 하소연했다.
그가 말하는 점검이란 이홍하 씨의 취미인 ‘학교 투어’를 말한다. 이 씨는 하루도 빠짐없이 기사가 운전하는 차량을 이용해 대학교 및 고등학교를 순찰했다고 한다. 총장이나 교장을 대동하고 학교를 둘러보다 쓰레기가 발견될 시엔 쥐 잡듯 몰아세웠다. 또한 야간자율학습을 하는 고등학교에 찾아가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담당교사를 불러 혼냈으며 종종 학생들이 지켜보는 데서 직원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또한 이 씨는 ‘짠돌이’로도 유명하다. 본인 스스로 “하루에 2500원 이상은 사용하지 않는다”는 얘길 자랑스럽게 하고 다녔다. 유일한 사치는 편의점에서 500원짜리 생수를 사먹는 것이었을 정도다.
이 씨의 ‘알뜰한’ 성격은 학교운영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인건비 절약은 애교 수준이고, 학생들의 안전을 담보로 하는 학교건물에도 돈을 아꼈다. 그가 운영하는 학교에는 한 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는데 모든 건물이 쌍둥이처럼 꼭 닮아 있으며 공사가 중단된 건물이 한 개씩은 존재한다는 점이다.
앞서의 교직원은 “하나의 마스터 설계도를 이용해 축소 및 확대 복사해 사용한 것 같다. 이 씨는 각 건물에 사용된 벽돌 개수도 알고 있을 만큼 공사에 깊이 관여했으며 최저의 공사비를 사용하려 애썼다. 그렇더라도 제대로 지었으면 문제될 것이 없는데 꼭 부실공사로 이어졌다. 뭔가 맘에 안 들면 공사를 중단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고 말했다.
실제 서남대 남원캠퍼스에는 15년 째 완공되지 않은 종합강당이 있으며 완공된 도서관은 부실공사로 인해 건물이 기울어져 관리부처로부터 사용금지 명령을 받아 출입이 금지된 상태다. 또한 “의대는 남원에 있는데 왜 병원은 광주에 있느냐”는 지역민의 민원을 받아들여 교과부로부터 병원 설립을 지시받자 빛의 속도로 건물을 올린 뒤 개원은 하지 않은 황당한 사례도 있다.
이 씨의 설명인즉 교과부에서 ‘건립’을 명령했을 뿐 ‘개원’을 지시하지는 않았으니 돈 안 되는 병원을 운영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애초부터 개원에 대한 계획은 없었던 탓인지 완공된 병원을 둘러보니 건물만 아파트 단지 속에 덜렁 남겨져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빼돌린 금액은 아이러니하게도 대다수 학교 및 병원운영 비용으로 사용됐다. 이번 검찰조사에서 이 씨는 지난 2007년부터 5년 동안 자신이 운영하는 남광병원에 비밀 법인기획실을 차리고 각 대학의 총장 도장까지 불법 복사해 교비와 건설자금 1004억 원을 횡령한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이 씨의 수중에는 거액의 현금이 남아있지 않았다. 아들의 아파트를 구입하기 위해 15단계의 돈 세탁을 거쳐 12억 2000만 원을 사용한 것 외에는 사적으로 큰돈을 쓴 내역도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학교 투어’를 위한 차량 유지비를 비롯해 병원운영비로 214억 원, 대출금 상환 명목으로 284억 원 등을 사용했다고 한다.
물론 현금만 없다뿐이지 이 씨의 재산이 적은 편은 아니다. 측근의 말에 따르면 이 씨는 현금보다는 땅을 선호하는 스타일이다. 한 번 구입한 부동산은 절대 되팔지 않는다는 것이 이 씨의 신념. 한 번은 이 씨 소유의 부동산이 광주 재개발지역에 포함돼 팔아야 할 상황에 처한 적이 있었는데 그는 “억만금을 줘도 내주지 않겠다”며 버텨 결국 그곳만 빼고 공사를 진행한 적도 있다고 한다.
이러한 이 씨의 과도한 부동산 욕심은 교직원들 사이에서도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서남대의 한 교직원은 “무리하게 부동산을 사들이고 그에 대한 이자를 갚으려 비리를 저지른 것 같은데 욕심만 조금 줄였어도 존경받는 교육자로 남았을 것이다”라며 안타까워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
유명 의원이 민원…의대 정원 빼가기?
생각보다 심각했다. 교육과학기술부(교과부)의 감사 결과 서남대 의과대학은 임상실습 시간이 부족한 학생에게도 학점을 부여하는 등 교육과정에서 상당한 부실이 있었음이 드러났다. 이 때문에 졸업생 134명의 학위가 취소, 의사 면허를 반납해야 하는 초유의 사태가 예고되고 있다. 만약 학교 측이 학위를 취소하지 않을 시 명령 불이행으로 의대 폐지에 대한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학교 측은 “졸업생들을 구제할 방법을 우선으로 찾아보고 있는 중”이라며 지켜봐달라는 입장을 전했다.
한편 사태가 일파만파 커지고 있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누군가 서남대 의대 폐지를 주동하고 있다는 설도 흘러나오고 있다. 이번 교과부의 감사가 특별감사가 아닌 민원제기로 인해 시작된 것이란 주장과 함께 민원인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까지 떠돌고 있는 것. 여기에 유명 국회의원도 함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의대가 없는 특정 대학과 연관 깊은 해당 국회의원이 서남대의 의대 정원(49)을 끌어오기 위해 민원을 제기했다는 것이다.
서남대 의대 관계자는 “지목된 대학은 20여 년간 의대 설립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보건복지부가 관리하는 ‘총 정원’ 때문에 여의치 않은 부분이 많았다. 만약 우리 학교 의대가 폐지된다면 이를 두고 상당한 권력 다툼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