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순길 전 교정국장 | ||
법무부 교정국장을 지낸 이순길 동국대학교 대학원 겸임교수가 최근 전직 대통령들을 비롯한 역대 거물급 인사들의 과거 ‘수감생활’을 공개해 화제다.
박정희 정권 말기부터 김대중 정권에 이르기까지 그가 교도 행정에 몸담고 있는 동안 보고 들은 거물급 수감자들의 ‘옥중 비화’를, 교정공무원의 애환 등과 함께 엮어 책으로 내놓은 것. 제목은 <교도소 사람들>(도서출판 찬섬). 이 책의 주요 내용과 이 교수의 인터뷰를 통해 역사 속에 묻힌 역대 권력자들의 ‘감옥 속 뒷모습’을 들여다봤다.
이 교수는 전두환, 노태우씨의 옥중 모습에 대해 먼저 “두 전직 대통령의 성격이 크게 다르더라”고 밝힌다. 전씨가 칼날 같은 성격이었던 반면 노씨는 소심한 편이었다는 것. 이렇듯 다른 성격은 곧 이들의 수감 생활에서도 묻어났다고 한다.
수감 생활 초기 가장 눈에 띄는 전·노씨의 차이는 바로 식사량이었다고 한다. 이 교수는 “담대한 성격의 전 전 대통령은 수감 초기부터 꿋꿋한 모습을 보였고 식사도 많이 하고 운동도 즐겼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은 수감 초기에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식사량도 다른 수감자들의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들 두 전직 대통령의 차이는 ‘면회’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났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교도소에서 면회는 하루에 한 번 허용되며 면회시간은 30분으로 제한된다고 한다. 하지만 교도소장의 재량에 따라 조정이 가능한데 전·노씨의 경우는 친지는 물론 고위 공직을 지낸 인사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아 면회 일정 조정이 불가피했다고. 면회 신청자가 너무 많아 하루 전에 리스트를 만들어 전씨와 노씨에게 미리 가져다 줄 정도였다는 것.
면회 시간에서도 두 사람은 극명한 대조를 이루었다. 전씨는 면회 제한 시간 30분이 지나면 “시간 됐으니 돌아가라”고 단호하게 말했다고 한다. 측근들은 물론이고 가족들에게조차 이 같은 ‘30분 원칙’은 예외가 없었다는 것. 그러나 노씨는 30분 제한 시간을 넘어 1시간을 초과하기 일쑤였다고 한다. 하지만 교도소장 재량에 따라 시간은 조정할 수 있었고 단독사옥을 사용했기 때문에 교도소 행정에 차질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고 한다.
이 교수는 “노 전 대통령은 세심하고 정이 많았다. 면회 온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시간이 제법 많이 흐르면 교도관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표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온화한 성격의 노씨가 교도관들과 얼굴을 붉힌 일이 딱 한 번 있었다고 한다. 노씨가 법정에 나간 사이 교도관들이 감방 안을 점검했는데 그만 뒷마무리가 엉성하게 된 것. 가지런히 놓여있던 소지품들이 흐트러져 있자 노씨는 교도관들에게 역정을 냈다고 한다.
이 교수는 “원래 수감자가 감방을 비웠을 때 감방 점검(검방)을 하게 돼 있다”며 “노 전 대통령이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은 것을 보면 못 참는 성격이라 화를 냈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노씨는 이내 화를 누그러뜨렸고 이후부터는 교도관들과 마찰을 일으키지 않았다고 한다.
이 교수는 두 전직 대통령의 호칭에 관한 비화도 소개했다. 전씨와 노씨가 각각 수감됐을 때 교도관들은 다소 난감했다고 한다. 대하기 어려운 사람들인 것은 둘째 치고 당장 호칭 사용에 대한 부담이 따랐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죄를 지었다 해도 대통령을 지낸 분들에게 수인번호를 호칭으로 사용하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그렇다고 각하라 부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결국 교도관들은 회의 끝에 ‘호칭을 아예 안 쓰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어차피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굳이 호칭을 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결국 교도관들의 ‘무(無)호칭’ 시책은 아무런 탈 없이 잘 진행됐다고 한다.
▲ 장세동 전 안기부장 | ||
전씨는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 제법 운동을 많이 했다고 한다. 반면 노씨는 운동보다는 책을 읽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이 교수는 “노 전 대통령이 독서를 너무 좋아해서 자정이 돼서야 잠들기 일쑤였다”고 떠올렸다. 원래 교도소 수감자들은 10시에 취침을 하는 게 원칙이라고 한다. 그러니 노씨는 다른 수감자들에 비해 ‘늦게’ 잠들 수 있는 특혜(?)를 누렸던 셈이다.
이 교수는 전씨와 노씨에 대해 “모두 모범수였다”고 밝혔다. 두 사람 다 오랜 군 생활로 인해 규율과 규칙적인 생활이 몸에 배어있던 탓이었다. 수감생활 초기 다소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던 노씨도 시간이 좀 지나면서 어느새 ‘제자리’를 찾았다고 한다.
이 교수는 특히 기억에 남는 인물로 전직 대통령들보다 장세동 전 안기부장을 먼저 꼽았다. 절도 있고 흐트러짐 없는 생활로 재소자들은 물론 교도관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는 것. 이 교수는 “(장 전 부장은) 교도관들에게 꼬박꼬박 말을 높이는 등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일부 으스대기 좋아하는 고위공직자 출신 재소자들과 너무나도 비교되는 사람이었다”고 덧붙였다.
지난 97년 12월 당시 법무부 교정심의관이었던 이 교수는 5공 관료 출신 수감자들을 구치소에서 한꺼번에 만나게 해주는 일종의 ‘티타임’ 자리를 마련했다고 한다.
장 전 부장을 비롯해 10명에 이르렀던 이들 5공 인사들은 당시 모두 형이 확정돼 각 교도소로 뿔뿔이 흩어지기 직전이라 마지막 인사를 나눌 시간을 준 것. 이 교수는 “당시 장 전 부장이 너무나도 고마워하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며 “훗날 출소 뒤에 ‘그동안 고마웠다’는 말을 전한 사람은 장 전 부장뿐이었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시해한 혐의로 사형을 당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에 대한 비화도 소개했다. ‘장군님’으로 불리길 좋아했던 김 전 부장은 마지막 순간까지 당당한 모습을 보이려 했다고 한다. 그러나 형장을 몇m 앞에 두고 정신을 잃어 교도관들에게 부축을 받으며 가야 했다고 한다. 유신의 심장을 쏜 ‘강심장’도 죽음 앞에서 잠시 비틀거렸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