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월 18일 조선일보 1면 톱기사였다. 죽음의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왜 죽었을까. 기사들은 노환으로 비관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었다. 기사를 보면서 어렴풋이 떠오르는 장면이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한 김재규가 군사재판을 받을 당시 나는 수도권의 법무장교였다. 나는 전두환의 심복인 이학봉 중령으로부터 이런 얘기를 들었다.
“김재규를 영웅시하는 여론이 퍼지고 재판은 한없이 지연되는 거야. 시위의 움직임이 있었어. 우리는 겁이 났지. 그래서 내가 담당 대법관을 찾아갔어. 사건을 잘 처리해 주시면 나중에 그 신세를 잊지 않겠다고 했어.”

1995년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내란죄 재판 때였다. 나는 하루 8시간씩 30일 동안 그 재판을 보면서 기록했다. 국제적인 시사 잡지에서 나의 방청기를 요청했다. 재판이 끝난 후 나는 초안을 법조 출입 기자들에게 공개했다. 바로 담당 재판장이 나를 찾아왔다. 내가 발표한 초안을 손에 들고 있었다.
“법정에서 내가 말하지 않은 부분이 있어서 그걸 빼달라고 하기 위해서 왔어요.”
나는 메모한 공책을 꺼내어 살펴보았다. 분명히 그가 한 말이었다.
“저는 뺄 수 없습니다. 분명히 들었습니다. 그리고 쓰는 건 저의 일입니다.”
그 무렵 나는 민정비서관을 지낸 사람으로부터 청와대에서 재판장에게 사형선고를 주문했다는 말을 전해 들었었다. 정치재판을 맡은 재판장은 예민해져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뇌물죄를 심리하는 법정이었다. 나는 뇌물을 준 혐의로 기소된 국가정보원장의 변호인이었다. 국정원 예산 일부가 청와대로 간 걸 나는 뇌물로 보지 않았다. 최후 변론에서 나는 재판장을 향해 이런 말을 했다.
“독일에서는 판사가 법령을 의도적으로 왜곡해서 적용했을 경우 그 판사가 7년 이하의 징역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판사는 성역이었다. 청와대와 거래해도, 판결의 방향을 조정해도, 개인적 출세를 위해 법을 왜곡해도 막을 방법이 없었다.
“이 재판이 후일 흔들리지 않는 법치의 닻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담당 재판장이 무거운 표정이었다. 1·2심의 판사들은 모두 뇌물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관은 달랐다. 나는 대법관이라고 천부적인 능력이나 통찰력을 가지고 있다고 보지 않는다. 그런데 대법관만 전혀 다른 판단을 할 때가 있었다. 그런 때면 권력과 거래한다는 의심이 들었다.
40년 가까이 변호사 생활을 해 오면서 법의 밥을 먹어왔다. 얼마 전 나와 친한 한 대법관 출신은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이제 판사도 재판 잘못하면 벌 받아야 할 것 같아. 너무 엉터리 판결이 많아.”
진지한 얼굴이었다. 깊은 경험에서 나온 무게 있는 말이었다.
이번에 ‘법왜곡죄’가 국회를 통과했다. 고의로 법을 왜곡해 판결을 한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되어 있다. 고양이 목에 방울이 걸렸다. 나는 형법 조문 하나가 이 나라 사법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본다. 권력에 영합하면 높은 자리로 갈 수 있었다. 그러나 바닥없는 지옥으로 떨어질 위험성도 생겼다. 그럴 때 판사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
지금 윤석열 전 대통령이 내란죄로 재판을 받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도 기소되어 있다. 담당 판사들은 재판을 똑바로 하지 않으면 훗날 법왜곡죄로 고발당할 걸 걱정할 것이다. 법왜곡죄의 조문은 판사들이 똑바로 하라는 경고 메시지다. 사법의 독립은 어떤 판결을 하든 무풍지대에 살라는 보호막이 아니다. 법왜곡죄가 무서운 판사는 법관 자격이 없다. 옷을 벗어야 할 것이다.
※외부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엄상익 변호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