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3월 19일 열린 효성중공업 주총에서 이사 정원을 3~16명 이내에서 3~9명 이내로 축소하는 정관 변경안이 올라왔으나 국민연금의 반대로 부결됐다. 국민연금은 효성중공업의 지분 10.26%를 가지고 있는 2대주주다.
효성중공업이 이번 정관 변경안을 두고 개정 상법으로 강화된 집중투표제를 무력화하기 위한 조치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지배주주 입장에서 이사수가 많으면 집중투표제 시 표가 분산돼 원하는 이사를 선임하는 데 난도가 오른다.
국민연금 측은 “정관으로 이사 수 상한을 축소해 일반주주의 권리를 제한할 우려가 있으며 정관 변경 없이도 적정 이사회 운영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양한 경력과 능력을 가진 이사를 선임하는 것을 제한하므로 반대하고, 정당한 사유 없이 사외이사의 임기를 단축하거나 연장해 반대한다”고 덧붙였다.
국민연금이 반대 의견을 표명한 것은 효성중공업뿐 아니다. 농심, 롯데칠성음료, 호텔신라, DB손해보험 등의 주총에서도 일부 안건에 반대 의견을 피력하면서 주주로서의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상법 개정 취지를 적극적으로 반영해 주주가치를 제고하고 기금 수익성 증대를 추구했다”고 설명했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758회 주총에 참석해 3122안건에 대한 의결권을 행사했는데, 이 가운데 721건은 반대표를 행사했다. 약 23.09%는 반대표를 행사한 것이다. 이는 전년 20.79%보다 2.3%포인트 오른 수준이다.
국민연금뿐 아니라 소액주주들도 자신들의 권리 찾기에 분주한 모습이다. 가장 주목받고 있는 기업은 DB하이텍이다. DB하이텍 소액주주들은 3월 24일 열리는 주총에서 △공정거래 특별조사 신설의 건 △내부거래위원회 신설의 건 △위장 계열사 부당 거래 진상 규명을 위한 법원검사인 선임 신청 권고의 건 등을 주주제안으로 올렸다.
DB하이텍의 소액주주들은 김준기 DB그룹 창업회장의 은닉한 것으로 의심되는 지분 전량에 대해 강제 처분 명령을 내려달라고 지난 3월 18일 금융감독원에 진정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는 DB그룹이 다수의 회사를 위장계열사로 운영하며 장기간 기업집단 지정을 피해왔다며 검찰에 고발한 바 있다.
오스코텍은 이사진과 소액주주 간 극적 합의 수순을 밟아 눈길을 끌었다. 오스코텍의 소액주주는 정관 변경을 통해 위원회 설치 조항 신설과 이사·감사 선임 등을 요구하면서 사측과 갈등 조짐을 보였으나 오는 30일 열리는 주총을 앞두고 갈등이 봉합됐다. 오스코텍이 소액주주들의 요구를 수용하기로 한 것이다.
오스코텍 소액주주 측은 “회사와의 협의를 통해 주주제안이 회사 안건에 반영됐다”며 “이번 주주총회에서 상정된 모든 안건에 찬성하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오스코텍 관계자는 “주주가치 제고를 가장 중요한 책무 가운데 하나로 생각한다”며 “오스코텍을 둘러싼 모든 이해관계자가 신뢰할 수 있는 기업이 되겠다”고 말했다.
행동주의 펀드도 강화된 주주 권리를 기반으로 기존 지배주주의 입김이 강한 이사회를 압박하고 있다. 가장 주목받는 행동주의 펀드는 얼라인자산운용이다. 얼라인은 코웨이, DB손해보험, 솔루엠, 덴티움, 에이플러스에셋, 가비아 등을 대상으로 주주제안에 나섰다.
성과도 있었다. 솔루엠이 얼라인 측과 조율을 통해 지배구조 선진화 조치에 나서기로 합의했다. 솔루엠은 3월 31일 열리는 주총에서 △이사회 과반을 독립이사로 구성하고 △전원 독립이사로 구성된 내부거래위원회, 독립이사 후보추천위원회 및 평가보상위원회를 설치하는 내용을 담은 정관 변경을 추진한다.

차파트너스자산운용은 삼영전자공업을 대상으로 감사 선임 및 자사주 취득을 요구하는 내용의 주주제안을 제기해 3월 27일 열리는 주총에서 표 대결을 앞두고 있다. 차파트너스 관계자는 “삼영전자공업은 오랜 기간 순현금이 시가총액을 크게 웃도는 극도의 저평가가 지속됐다”고 지적했다.
김윤진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간사는 “일부 상장사는 상법 개정 도입 의도를 우회하려는 시도를 보이는 것 같다”면서 “상법 개정 도입 후 첫 주총 시즌이다 보니 많은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창민 한양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상법 개정안 도입 이후) 기업들의 불합리한 관행에 대해 국민연금, 기관 등이 반대 의사를 표하고 있지만 실제로 표 대결에서 이겨야 지배 구조가 투명해지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개정안 핵심 내용은? 개미들 '자사주 소각' 대환영
정부가 추진해 온 ‘기업 밸류업’의 법적 기반인 상법 개정이 세 차례에 걸쳐 마무리됐다. 지난해부터 올해 초까지 단행된 이번 개정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목표로 도입된 제도적 장치다.
1차 상법 개정의 핵심은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다. 기존 이사가 ‘회사’를 위해서만 직무를 수행하도록 규정한 대목에 ‘주주’를 명시함으로써 이사의 보호 대상을 총주주로 넓혔다. 해당 조항은 지난해 7월 22일 공포와 동시에 즉시 시행에 들어갔다. 물적분할이나 합병 과정에서 소액 주주가 소외됐던 관행에 제동을 걸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2차 상법 개정안에서는 지배구조 선진화를 위한 실질적인 견제 장치도 강화됐다. 자산 2조 원 이상 대형 상장사에 대해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하고, 감사위원 선임 시 대주주 의결권을 제한하는 ‘3% 룰’을 사외이사 여부와 관계없이 강화 적용했다. 기업들의 정관 변경 등 준비 기간을 고려해 공포 후 1년의 유예기간을 두었으며, 이에 따라 오는 9월 10일부터 본격 시행될 예정이다.
3차 상법 개정안에는 주주 환원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자사주 소각 의무화 내용이 추가됐다. 기업이 취득한 자사주를 1년 내에 반드시 소각하도록 규정해 자사주가 대주주의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악용되는 사례를 차단했다. 해당 법안은 지난 3월 6일 공포와 함께 즉시 시행됐다.
박호민 기자 donkyi@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