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이 떠난 자리에는 유족들이 해결해야 할 ‘업무상 질병 입증’이라는 과제가 남겨졌다. 죽음의 원인을 증명하기 위해 고인의 차량 블랙박스를 뒤지고, 블로그 타임라인의 흔적을 쫓으며, 일기장의 한 줄을 단서로 삼아야 하는 유족들의 시간은 고인이 멈춘 그날에 머물러 있다.
#비협조적인 사업장…‘증거수집’ 벽에 막힌 유족들

배 씨는 “형부가 남긴 일기에는 회사 사람들과 관계가 쉽지 않고, 회사에 가기가 두렵다는 말이 적혀 있었다. ‘조직에서 필요 없는 사람’이라는 낙인과 압박이 형부를 옥죄었던 것 같다”고 했다. A 씨의 아내에 따르면 A 씨는 죽기 전 이불을 뒤집어쓰고 ‘회사 가기 싫다’고 토로하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가족을 잃은 슬픔을 추스를 새도 없이 시작되는 산재 증거 수집 과정은 유족들에게 또 다른 시련이다. 배 씨에 따르면 A 씨가 다녔던 회사는 법적 의무가 없다는 이유로 출근 기록조차 제대로 주지 않았다고 한다. 회사는 산재 신청 기간 내내 방어적인 태도를 취했고, 아무런 자료도 제공하지 않았다. 고인이 왜 죽었는지 알기 위해 유족들이 직접 고인의 행적을 추적할 수밖에 없었다.
배 씨는 “12년 동안 간호사로 일하다 보니 직장 내 괴롭힘이나 교대 근무의 고충을 많이 경험했다. 주변에 일하다 극단적 선택을 하는 동료도 있었고, 쓰러지는 의사도 봤다. 그래서 무조건 산재 신청 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처음에는 절차를 하나도 몰랐기 때문에 무작정 아는 인맥을 총동원해 어떻게 산재 신청을 해야 하는지 묻고 다니기 시작했고 주변에서 한 노무사가 산재 관련 자료를 사측에 빼돌렸다는 소문을 들어 아무도 믿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최대한 사업장과 멀리 떨어진 곳에 가서 노무사를 선임했고 가자마자 ‘산재 인정은 어렵다’는 말을 들었다. 불안했지만 해야 했다. 여러 사람들의 도움도 받았다”며 “통화 기록을 조회해 형부 동료들에게 전화를 돌렸지만 대부분 증언해주지 않았는데 퇴사자 한 분이 기꺼이 나서주셨다. 이 분은 이후 회사 측에 명예훼손으로 고소까지 당했다. ‘내가 똑같은 상황이면 이 사람처럼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너무 감사했다”고 했다.

배 씨는 산재 신청을 염두에 둘 경우 초기 대응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배 씨는 “과로사로 인한 산재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초기 대응이 중요하다. 경찰 조사부터 시작되는 일련의 과정에서 죽음과 업무 연관성을 끊임없이 생각하고 자료를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아들 지키지 못해’ 죄책감 탓에 산재 신청 꺼리기도
B 씨의 여동생 김설 씨(33)는 “오빠가 죽은 시점은 2019년 3월 초였고, 사망하기 약 3~4개월 전부터 매일 야근을 오래하며 장기간 회사에 머물렀다. 가족 단체 대화방이 있었기 때문에 이를 정확히 기억하고, 한 달에 한 번 쉬고 모두 출근할 정도로 격무에 시달렸다”며 “몸의 피로도는 쌓이고 업무에 집중이 점점 안 되니 오빠는 스스로 더 자책하게 된 것 같다. 살면서 처음으로 엄마에게 울면서 ‘너무 힘들다’고 전화를 한 것도 이때였다”고 회상했다.
이어 김 씨는 “하지만 엄마는 ‘이번 프로젝트까지만 끝낸 뒤 바로 퇴사하자’고 조언했고, 오빠 본인도 자신이 매우 심각한 상태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엄마의 조언을 받아들였다”면서 “정신과도 다니지 않던 오빠가 갑자기 죽었단 소식을 들었을 때 가족 모두 충격에 휩싸였다. 오빠는 평소에 지병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충동적인 성격도 아니었다. 당황한 것은 회사 동료들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B 씨는 3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김설 씨가 오빠의 산재 신청을 결심한 것은 오빠가 죽고 4년이 지난 뒤였다. 김 씨는 “부모님은 죄책감 때문에 오빠의 죽음을 알리는 것을 원치 않으셨다. 혹시 엄마가 오빠를 따라갈까봐 걱정돼 엄마가 일상으로 돌아올 때까지 옆에서 지켰다. 가족을 챙기면서 산재 신청까지 병행하기는 어렵단 생각도 들었다”면서 “이후 ‘아예 안 하면 후회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산재를 신청하기로 했다. 오빠가 과로자살이었단 것을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김 씨는 “너무 늦게 증거를 수집하다 보니 회사 측에서 협조하지 않아 오빠의 대중교통 이용 기록, 블랙박스 기록을 뒤졌다. 오빠의 동료들에게도 뒤늦게 연락했지만 대부분 자세히 기억하지 못했다”면서 “유서에는 동료들에게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죄송하다. 제가 부족하다’라고 적혀 있었다. 일이 힘들었단 내용은 없었다. 나중에 블로그를 살펴보니 ‘오늘도 야근’이라는 식의 일기가 조각조각 남아 있었다”고 했다.

부랴부랴 준비한 산재 신청은 끝내 불승인 판정을 받았다. 김 씨는 이후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재심을 신청하는 방법도 있지만, 유족들은 산재 재심사위를 거치기보다 행정소송으로 직행하는 경향이 높다. 의료계 의원이 중심이 된 근로복지공단 산하 위원회에서 1심과 같은 잣대로 받기보다 법원에서 법률적 인과관계를 판단받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 씨는 행정소송에서도 패소했다.
김 씨는 “법원에서 무작위로 대학병원 의사들에게 질병 감정 의뢰서를 보내 소견을 받는다. 오빠의 죽음에 대해서도 정신과 소견이 나왔는데 ‘이 정도 스트레스는 운동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하더라”면서 “오빠의 죽음을 대하는 그 의사에게 노동 감수성이 없고 너무 주관적 판단이었다고 생각한다. 질적 과로가 심화되는 현실을 외면한 판결”이라고 주장했다.
#“청년들, 과로에 대한 경각심 가져야”
유족들은 청년들이 과로사의 위험성에 대한 경각심을 가질 것을 당부했다. 배고은 씨는 “우리는 예측하지 못한 경험을 했기 때문에 ‘여기서 멈춰야지’라는 생각을 하지만, 그렇지 않은 청년들은 계속 달려나가고 있다”며 “청년들이 과로를 대하는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에너지 총량의 법칙이 있다고 한다. 젊다고 에너지를 모두 소진해버리는 게 아니라 지속 가능하게 일을 해야 한다”고 했다.
김설 씨는 “평소 과로사에 대한 문제 의식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면 스스로 멈추는 방법을 모를 수 있다. 공황장애가 와서 숨이 안 쉬어질 때까지 본인은 모른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겠지?’ 이렇게 생각하다가 사고가 터질 수 있다”고 말했다.
강민정 씨는 “청년들이 본인 스스로를 지키면서 일을 해나갔으면 한다. 젊은 나이에 일하다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어렵겠지만, 그럴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다”며 “여러 청년들의 죽음을 목격하면서, ‘적정한 선을 넘어서는 일을 하지 않아야 된다’는 삶의 원칙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조언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같은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109 또는 SNS상담 마들랜(www.129.go.kr/109/etc/madlan)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손우현 기자 woohyeon1996@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