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은 내고향축구단 우승 소식을 대대적으로 알렸다. 북한 조선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5월 27일 “2025-2026년 아시아축구연맹 여자선수권보유자 연맹전에서 1위를 쟁취한 내고향팀 선수들이 5월 26일 귀국했다”고 보도했다. 노동신문은 “조선사람의 기상과 본때를 다시 한 번 힘 있게 과시했다”고 평가했다.
노동신문 보도에 따르면 내고향축구단 선수들은 평양 시내에서 퍼레이드를 진행하며 시민들과 학생, 어린이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사실상 ‘인민 영웅’ 대우를 받고 있는 셈이다.
노동신문은 내고향축구단이 경기를 펼친 장소를 일절 소개하지 않았다. 준결승에서 이긴 상대팀은 ‘한국 수원 팀’으로 표현했다. 수원에서 시민단체들이 꾸린 남북 공동응원단과 관련해서도 북측 매체는 함구했다. 내고향축구단 우승 사실을 선전하면서도, 남북 협력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는 여지는 완전히 차단하는 양상이다.
AFC 여자챔피언스리그는 아시아축구연맹이 주관하는 여자 축구 클럽 대항전이다. 2019년 AFC 여자클럽챔피언십이라는 이름으로 첫 발을 뗀 이 대회는 2024-2025시즌 개편됐다. 아시아축구연맹 가입국 최상위리그를 우승한 여자 프로 축구단이 자웅을 겨루는 대회로 예선 격인 그룹 라운드에선 12개 구단이 8강행 티켓을 놓고 조별리그를 펼쳤다.
그룹라운드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4개 팀은 8강전을 홈그라운드에서 펼치는 이점을 안았다. 우한 쟝다 위민 FC(중국), 멜버른 시티 FC(호주), 도쿄 베르디 베레자(일본) 등은 각자의 홈구장에서 8강전을 펼쳤다. 멜버른과 도쿄 팀은 홈 이점을 등에 업고 4강행 티켓을 확보한 가운데, 우한은 수원 FC 위민에 덜미를 잡혀 탈락했다.
그룹 라운드 상위 4개 팀 안에 들었던 내고향축구단은 8강전을 홈에서 치르지 않았다. 내고향축구단은 중립지인 라오스 비엔티엔에 있는 라오내셔널스타디움에서 호찌민 시티 위민 FC를 맞이했다. 중립지에서 펼쳐지는 이유에 대해 AFC나 북한 측은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았다.
한 대북 소식통은 “북한과 AFC 모두에게 평양에서 경기를 치르기 어려운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면서 “북한에서 경기를 치르게 되면 홈팀 명목 관중 수익금 등이 발생하게 되는데, 이 수익금들은 유엔 대북제재 등에 따라 북한 쪽에 배분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이 소식통은 “외국팀 선수단이나 심판, 중계진의 입국 및 이동 문제도 주요한 이슈이며 평양에 있는 경기장이 AFC 주관 경기를 치를 수 있는 경기 운영 및 방송, 보안 등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을 것”이라면서 “북한은 남자축구단을 AFC 챔피언스리그에 출전시키지 않는 가운데, 자신들이 경쟁력이 있는 여자축구단만을 AFC 주관 대회에 출전시키고 있기 때문에 홈경기를 치르는 것 자체가 낯설고 각종 제약 사항도 많다”고 했다.
내고향축구단은 8강에서 홈 어드밴티지를 포기하고도 호찌민을 상대로 3 대 0 완승을 거뒀다. 2025-2026시즌 AFC 여자 챔피언스리그 4강부터 결승까지 경기는 대한민국 수원에서 일괄적으로 펼쳐지는 일정이었다. 내고향축구단은 4강에선 개최지를 홈으로 두고 있는 수원 FC 위민을 만나게 됐다. 남북대결이 성사되며 큰 관심을 모았다. 수원 FC 위민을 꺾은 내고향축구단은 결승에서도 승리하며 대회를 마무리했다.

리 감독은 한국에서 보낸 시간이 어땠는지를 묻는 질문에 “아시아축구연맹 조치로 우리가 이번에 여기(한국)와 경기했다”면서 “저는 물론 우리 선수들 모두 오늘 승리를 위해 분과 초를 아껴가면서 노력했다. 기타 이런저런 일을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고 했다.
한국 취재진이 ‘북측 여자축구가 과거부터 수준이 높다’라는 말로 질문을 시작하자 리 감독은 통역관을 통해 “국호를 바르게 해달라”며 격앙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이후 리 감독은 자리를 박차고 기자회견장을 나갔다. 리 감독은 과거 북한 여자축구대표팀 감독으로 국제대회 출전했을 때도 ‘국호 이슈’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 바 있다.
내고향축구단은 이번 대회 우승으로 100만 달러 규모 상금의 주인공이 됐다. 그러나 상금은 내고향축구단에 전달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2017년 채택한 결의안 2375호와 2397호는 북한 관련 기업 및 단체에 현금을 전달해선 안 된다고 규정한다.
내고향축구단이 획득한 상금은 우선 FIFA와 AFC가 ‘지급 보류’ 상태로 국제기구 금고에 보관할 가능성이 크다. 현금을 직접 지급하는 대신, 향후 다른 국제대회에서 발생하는 경비를 상금으로 차감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내고향축구단은 우승을 했음에도, 상금을 직접 수령하지 못하고 ‘바우처 형태’로 활용해야 하는 처지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당시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FIFA는 본선 진출국에 지급하는 90억 원 규모 배당금을 북한에 송금하는 것을 거부했다. FIFA는 배당금을 장기간 동결한 뒤 북한 유소년 축구 발전 기금 및 국제대회 참가비용 등으로 간접 지급했다.

2020년부터 김정은은 공식석상에서 내고향담배공장에서 제조한 ‘아침’이란 브랜드 담배를 피워 왔다. 내고향무역회사 전신 격인 내고향담배공장은 2000년대 초반 국가보위부 소속 외화벌이 기업으로 첫 발을 뗀 곳이다.
2012년 김정은 체제 출범 이후 신설된 국가체육지도위원회 주도로 체육용품 전문 업체인 내고향합작회사가 출범했다. 당시 국가체육지도위원장은 김정은 고모부이자 실권자였던 장성택이었다. 이후 내고향담배공장과 내고향합작회사 등은 내고향무역회사라는 지붕 아래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