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대통령은 “선명한 주장이나 선언이 아니라 실행을 통한 결과로 증명해야 한다는 생각에 민생, 개혁, 통합의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갈등과 아픔에 충분히 공감하지 못했다”고 했다. 이어 “좀 더 과감하고 통쾌한 개혁을 원하는 분들과 소통하며 함께 가는 길을 찾는 데 인색했던 것은 아닌지도 돌아봤다”고 말했다. 이는 검찰 보완수사권 완전 폐지 등을 원했던 이른바 ‘민주당 코어 지지층’을 향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범여권 지지층이 둘로 쪼개져 혐오 발언을 주고받는 사태에 대해서는 “저로 인해 생긴 측면이 없지 않다”며 “볼 때마다 너무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우리 안의 차이가 아무리 커도 우리가 이겨내야 될 그 상대와의 거리만큼 멀지는 않다”며 “좀 부족하고 조금 화나는 게 있더라도 우리가 원래 가지고 있던 지향과 가치를 향해서 조금은 눈감아주고 조금은 포용하면서 같이 갈 길을 찾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이 대통령의 기자회견 발언은 그동안 범여권에서 이뤄진 ‘중도 확장이냐, 지지층 결집이냐’는 논쟁과 맞닿아 있다. 진보 진영에서 ‘올드 민주당’이라고 불리는 세력은 이 대통령과 친명계의 중도 확장 노선이 전통적 민주당 지지층 이탈을 불러왔다고 주장한다. 개혁을 요구해 온 핵심 지지층이 등을 돌리면서 이 대통령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다는 논리다.
친명계는 2028년 총선 승리와 정권 재창출을 위해선 중도·보수층으로 외연을 넓혀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 대통령 역시 취임 이후 통합과 실용을 강조하며 보수정당 출신 인사들을 잇달아 기용했다. 중도 확장을 통해 정치지형을 바꾸는, 이른바 ‘유권자 재정렬’ 전략을 염두에 두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 과정에서 이 대통령의 실용·성과 중심 국정 운영에 호응해 새롭게 유입된 중도·보수 성향 지지층을 일컫는 ‘뉴이재명’이라는 표현도 등장했다.
양측 간 갈등의 골은 정청래 의원이 당권을 잡은 2025년 8월 전당대회 이후 ‘명청 갈등’ 국면을 거치며 깊어졌다. 1인 1표제, 검찰 보완수사권 존치 논쟁 등 개혁의 속도와 방향을 놓고 충돌이 이어졌다. 6·3 지방선거에서는 경기 평택을 패배를 두고 양측이 거센 책임 공방을 벌였다. 지난 7월에는 X(옛 트위터)에서 한 지지자가 이 대통령 당무개입 의혹을 거론했고, 이를 이 대통령이 반박하면서 대통령과 지지자가 설전을 벌이는 사건까지 벌어졌다.

지지율 하락세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이 대통령을 직접 겨냥한 비판도 나왔다. 유시민 작가는 8월 24일 유튜브 채널 ‘저널리스트’에서 “윤석열이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를 쫓아내는 등 자신의 집권 기반을 스스로 해체하는 걸 보며 비극적 결과를 낳을 것이라 예측했다”면서 “이 대통령도 자신의 집권 연합을 스스로 해체하고 있다. 지금 이미 반 넘게 해체했다. 굉장히 불안정한 국면으로 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관련기사 40% 방어선 붕괴…이재명 대통령 지지율 추락에 비상 걸린 여권).
조국혁신당은 범진보 진영의 연대 방식을 두고 민주당과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조국 혁신정책연구원장은 여권의 ‘레드팀’을 자처하며 정부의 노동·부동산 정책 등에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이 대통령의 공소취소 추진에도 반대 입장을 밝히며 친명계와 각을 세웠다. 혁신당은 민주당과의 통합 문제에서도 흡수합당에는 선을 그으며 독자 노선을 강조하고 있다.
민주당에서는 추미애 경기지사 발언을 계기로 노선 갈등이 표면화됐다. 추미애 경기도지사는 9월 12일 김지용 중수청장 후보자 내정을 비판하며 “대통령은 이들 세력을 징벌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왜 이들 세력에 업혀서 전전긍긍하는 것인가”라며 이 대통령을 겨냥했다.
친명계는 발끈했다. 김민석 대표는 “밖에 있는 사람들이 그러는 건 그러려니 하겠는데 이건 좀 황당하게 느껴진다”면서 “노무현 대통령 첫 1년 안착(해야 할 시점)에 안팎의 세력들이 힘을 합쳐 탄핵하려 했던 전조와 비슷하게 가는 것 아니냐”고 했다(관련기사 ‘X맨 본색’ 어게인? 추미애 경기지사, 이재명 대통령 겨냥 ‘강경 발언’ 후폭풍).
민주당 안팎에서는 이 대통령 지지율 하락이 전당대회 이후 잠잠했던 여권 내 주도권 경쟁에 불을 지피고 있다는 분석이다. 김민석 대표에 패했던 비명 진영이 반격을 노리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이재명 지도부 2기나 대선, 그리고 지지율이 높을 때 지금 반기를 드는 사람들이 공개적으로 비판의 목소리를 낸 적 없었다”며 “대통령 힘이 약해지니 다들 자기 정치에 돌입한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 기자회견 이후에도 여진은 계속되고 있다. 유시민 작가는 9월 20일 유튜브 방송 ‘탁현민의 더뷰티플’에서 멸칭을 사용하는 지지층을 ‘신발 속 돌멩이’에 빗대며 “(신발 속 돌멩이가) 대통령을 몹시 고통스럽게 만들고 정치적으로 고립시켜 왔는데, 지난 1년 넘는 세월 동안 대통령이 이 진단을 있는 그대로 하지는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유 작가는 “(이 대통령이) 계속 발바닥에 작은 돌멩이들이 있는 채 걸어가실 것 같다”고 말했다.

익명을 원한 여권 관계자는 “(X 글 공유는) 이 대통령이 해오던 방식이다. 역풍이 심하고, 지지율 떨어지고, 민심이 사나우니까 지웠다고 본다. 해프닝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지지층 내부 갈등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다 다르겠지만, (기자회견) 메시지 자체만 놓고 욕하는 사람은 없는 것으로 안다. 이제 (지지자들이) 어디까지 신뢰하고 믿을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청와대에 달렸다. 김지용 중수청장이라든지 민정수석과 비서실장 자리라든지. 향후 인사가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지 지켜봐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정치권에서는 이 대통령이 이러한 내분 사태를 털고 가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조국혁신당과의 관계 설정, 호르무즈 파병 등 지지층 사이에서도 이견을 나타내는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는 점도 이 대통령에겐 부담이다.
박원석 전 정의당 의원은 “대통령이 (갈등 봉합에 대한) 인식을 내비치고 통합의 메시지를 냈으면 호응을 해야 한다”며 “그런데 신발 속 돌멩이 이야기는 백기 투항을 요구하는 메시지 아닌가. 여권이 이견을 봉합하고 새로운 전기로 가려면 (반대쪽도) 적당히 해야 하는데 적당히가 안 되는 것 같다”고 했다.
박 전 의원은 “(올드 민주당 쪽은) 불평등, 산업 구조 전환, 인구 구조 개혁 등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거나 이견을 제시해야 하는데, 오로지 검찰 개혁”이라며 “그냥 수단일 뿐이다. 결국 자신들이 주류로서의 권한을 행사하겠다. 대통령이 비주류면 비주류답게 굴어라 이런 메시지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이강원 기자 2000won@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