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경기 안산에서 발생한 10대 아르바이트생 성폭행 사건에서 경찰은 이와 유사한 정황을 두고 혐의가 없다고 판단했고, 피해자는 불송치 결정 직후 억울함을 호소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리고 최근 공소청이 경찰 불송치 결정을 뒤집었다.

사건 당일 B 씨는 경찰에 성폭행 피해를 신고했다. 하지만 안산단원경찰서는 2026년 2월 증거 부족을 이유로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주점 내부 CC(폐쇄회로)TV에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걸어 다니거나 서로를 배웅하는 모습이 담겼다는 이유에서다. 경찰은 B 씨를 한 차례 대면 조사한 뒤 추가 조사 없이 사건을 종결했다.
B 씨는 불송치 통보 사흘 뒤인 2월 21일 숨졌다. 그의 휴대전화에는 성관계에 동의한 적이 없으며 수사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취지의 이의신청서가 남아 있었다. 시민단체 등의 규탄 기자회견이 열리는 등 반발이 커지자 경찰은 해당 문서를 정식 이의신청으로 간주,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검찰에서 사건을 넘겨받은 공소청은 CCTV 원본을 재분석해 A 씨가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B 씨를 부축해 사각지대로 데려가는 장면을 확인했다. 피해자의 혈액·소변 감정 결과와 의료 자문을 통해 복용 약물과 음주가 겹쳐 정상적인 신체 활동이 어려웠다는 결론을 내렸다.
두 사람의 휴대전화 분석과 참고인 조사도 이뤄졌다. 공소청은 사건 직후 B 씨가 지인에게 울면서 피해 사실을 알린 녹음파일 등을 확보해 합의에 따른 성관계가 아니었다고 판단했다.
쟁점은 형법 제299조가 규정한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다. 대법원은 2021년 2월 준강제추행 사건에서 술에 취한 피해자 C 씨가 스스로 걸을 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정상적인 판단 능력이 있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취지로 판시했다.
2017년 당시 18세였던 여성 C 씨는 20대 남성 D 씨와 함께 모텔 계단을 올라 객실로 이동했다. 항소심은 CCTV에서 피해자가 비틀거리거나 부축받는 모습이 확인되지 않는다는 점 등을 들어 무죄를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른바 '알코올 블랙아웃'으로 C 씨가 자신의 행동을 기억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그러나 대법원은 피해자의 음주량과 의식 상태, 피고인과의 관계, 사건 전후 행동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며 원심을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단순한 기억상실인 '블랙아웃'과 의식상실인 '패싱아웃'을 구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의식을 잃지 않았더라도 알코올의 영향으로 의사를 형성할 능력이나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에 맞설 저항력이 현저히 떨어졌다면 항거불능 상태에 해당해 준강간죄나 준강제추행죄가 성립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2023년 3월 대법원은 또 다른 준강간 사건에 대해서도 "피해자가 약물 등에 의해 일시적으로 의식을 잃은 상태 또는 완전히 의식을 잃지는 않았더라도 그와 같은 사유로 정상적인 판단 능력과 대응·조절 능력을 행사할 수 없는 상태에 있었다면 준강간죄에서의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에 해당한다"며 같은 법리를 재확인했다.

B 씨 유족은 당시 검찰의 보완수사 요구 이후 진료 기록과 약물 처방전, 통신 기록 등을 제출했는데도 경찰이 기존 판단을 유지했다고 주장한다. 경찰은 지난 4월 보완수사 결과를 검찰에 통보하면서도 '혐의없음' 판단을 바꾸지 않았다. 공소청은 CCTV 영상 재분석 결과와 의료 자문, 피해자가 남긴 녹음파일 등을 종합해 A 씨를 준강간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한편 이번 사건은 지난 10월 2일 공소청 출범으로 형사사법체계가 개편된 시점에 기소됐다. 개정 형사소송법에 따라 검사의 직접 보완수사는 원칙적으로 금지됐다. 다만 종전 수사 사건 가운데 일정 요건을 충족한 경우 최대 90일의 경과조치가 적용돼 이 기간 동안 종전 규정에 따라 수사를 계속할 수 있다.
또 경찰은 검사의 보완수사 요구를 받으면 원칙적으로 1개월 이내에 이행하고 결과를 통보해야 하며, 적절한 보완수사를 기대하기 어려운 경우 상급 수사관서나 다른 수사기관에 보완수사를 요구할 수 있도록 했다.
유족은 "공소청이 뒤늦게나마 아이(B 씨)가 요구했던 부분을 실제 수사에 반영해 준 것 같아 감사하다"면서 "딸은 이제 사과조차 받을 수 없는 상황인 만큼 재판에서 엄중한 처벌이 이뤄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수원지방공소청 안산지청 관계자는 "죄질에 상응하는 형이 선고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손우현 기자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