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탁구의 영원한 국가대표 선수이자 동갑내기인 오상은(36·KDB대우증권)과 김경아(36·대한항공)가 만났다. 평소 대표팀에서 자주 보는 얼굴이지만 이렇게 외부에서 인터뷰를 위해 따로 만난 건 처음이라고 한다. 대표팀의 ‘맏형’ ‘맏언니’ 역할을 맡아 올림픽과 세계선수권대회를 주름 잡았던 그들은 이제 선수와 코치로 각자의 삶을 살게 된다. 김경아가 지난 런던올림픽 이후 선수 생활을 접고 대한항공 막내 코치로 지도자의 길을 걷게 된 것. 오상은은 고1 때부터, 김경아는 27세부터 태릉선수촌 생활을 시작했다. 각각 20년, 10년 동안 태극마크를 달고 국위선양을 위해 헌신과 봉사를 마다하지 않았던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 선수와 코치의 차이
김경아는 지난 18일 막을 내린 국가대표 상비군 선발전에서 후배 김정현의 전담 코치로 나선 끝에 28세의 적지 않은 나이의 김정현을 대표팀에 합류시키는 데 성공했다. 당시 오상은은 모친상으로 자리를 비운 대우증권 김택수 감독 대신 후배 정영식을 위해 벤치를 담당했다. 오상은 코치가 아닌 선배의 자격이었지만 두 사람이 경기가 아닌 벤치에 앉아 후배들을 독려하는 모습은 탁구팬들의 관심을 모으기에 충분했다.
김경아(김): 올림픽이 끝난 후 3개월을 쉬다가 지난 11월에 코치로 복귀했다. 그런데 짧은 시간 동안 가장 큰 깨달음은 선수 입장과 지도자의 입장이 천양지차라는 사실이다. 벤치에서 보는 상대 선수는 허점이 많은, 이길 수 있는 방법이 700가지도 넘을 것 같은데 우리 선수는 그 허점 많은 상대 선수를 공략하지 못한다. 대표선발전 동안 벤치에 앉으면서 다크서클이 진하게 내려 앉을 정도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 쉬운 길이 아니라는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어려운 자리인 줄 몰랐다.
오상은(오): 난 아직 선수 신분이라 그런지 후배가 지는 데 대해 큰 스트레스는 없었다. 물론 이기길 바라지만, 져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 부분이 아마 코치와 선수의 큰 차이점일 것이다. 지금은 일단 대표팀에서만 은퇴할 생각이고, 소속팀 선수로는 계속 뛸 예정이라 경아랑은 입장이 조금 다르다.
김: 만약 내가 여자가 아닌 남자 선수였다면 계속 선수 생활을 이어나갔을 것이다. 여자이고, 임신을 해야 하는 목표가 있다 보니 이 나이에 현역 생활에 대한 욕심을 내세울 수 없었다. 그런 부분에선 상은 오빠가 부럽다.
두 사람은 77년생 동갑내기인데 호칭이 ‘오빠’와 ‘경아’다. 오상은이 학교를 한 해 일찍 들어가는 바람에 김경아는 오상은에게 ‘오빠’라고 불렀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동갑이었다는 것. 호칭을 바꿀 수도 없어 계속 ‘오빠’라 부른다고 한다.
# 대표팀과의 인연
오: 난 시대를 잘 타고 태어난 편이다. 내 위에 유남규, 김택수, 이철승 선생님들이 계셨지만 나이 차이가 있다 보니 고1 때부터 대표팀에 발탁돼 태릉 생활을 시작했다. 만약 바로 위의 선배들 중 실력이 뛰어난 분들이 많았다면 나도 20년의 대표팀 경력을 갖기 어려웠을 것이다.
김: 상은 오빠랑은 반대로 내 위에는 선배들이 정말 많았다. 그렇다보니 대표선발전에서 꼭 마지막 문턱을 넘지 못하고 바로 밑에서 주저앉곤 했다. 대표팀 5명을 뽑으면 6위에 머물렀고 4명을 뽑을 때는 5위를 차지했다. 그렇게 기회를 놓치다 27세에 처음 대표팀에 뽑혔고 28세에 아테네올림픽에 출전한 것이다. 그때는 그게 마지막 올림픽인 줄 알았는데 그 후 두 번의 올림픽을 더 치르고 여기까지 왔다. 그런데 10년의 대표팀 경력도 힘에 부친데 상은 오빠는 무려 20년이다. 정말 대단한 커리어다.
# 나에게 올림픽이란?
오: 선수들한테 올림픽은 세계선수권대회보다 몇 십 배의 부담과 스트레스를 안겨주는 대회다. 잘하면 ‘대박’이고 못하면 ‘쪽박’인 무대다. 그래서 모든 선수들이 메달을 따려고 미친듯이 달려든다. 그런데 메달도 금메달을 따야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금메달의 주인공들을 보면 그걸 땄다고 해서 인생이 뒤바뀌진 않더라. 잠시의 기쁨은 존재하겠지만…. 그래도 나의 마지막 올림픽이었던 런던에서의 단체전 은메달로 대표팀 생활을 마무리한 데 대해 만족한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부터 4차례의 올림픽을 치르는 동안 동메달과 은메달을 차지했는데, 아쉬운 부분이라면 그 메달이 모두 개인전이 아닌 단체전에서 나왔다는 사실이다. 반면에 경아는 개인전 올림픽 메달을 갖고 있다. 많이 부럽다(웃음).
김: 부럽긴요, 오빠는 은메달도 따봤잖아요^^. 처음 태극마크 달고 출전한 아테네올림픽에서 개인전 동메달을 획득했다. 당시 수비수 출신의 선수가 메달을 딴 건 올림픽 사상 처음이라고 하더라. 중국이 8강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좋은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그 후엔 개인전 메달 자체가 언감생심이었다. 중국의 벽은 물론 일본마저도 힘겨웠다. 그때부터 나의 ‘마지막’ 올림픽 출전이 시작됐다. 아테네가 마지막이라며 출전했다가 베이징에서도 마지막이라 하다 런던까지 뛰었다. 이번엔 진짜 마지막이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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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테네 올림픽의 추억. 복식조로 뛴 오상은과 그의 “오른팔” 주세혁. 오른쪽 사진은 김경아가 개인전에서 동메달을 따고 현정화 당시 코치와 포옹하는 모습. 김경아는 현 감독에 대해 “영원히 모셔야 할 선배”하고 말한다. 사진공동취재단 |
# 탁구의 ‘김연아’ 어디 없나요?
오: 탁구선수들한테 중국은 ‘넘사벽’이다. 중국은 계속해서 세대교체를 이루며 좋은 선수들이 성장하고 세계 탁구계를 주름잡는다. 솔직히 지금의 우리 선수들로는 중국을 이기기 힘들다. 그런 점에서 유남규, 현정화 감독님과 승민이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건 엄청난 ‘사건’이었다. 승민이 때는 당시 중국의 1, 2위권 선수들이 탈락한 게 중요 요인이었지만 그렇게 대단한 선수들도 탈락할 수 있는 무대가 올림픽이란 걸 떠올리면 승민이는 엄청난 배짱과 운을 타고 난 것이다. 정말로 중국을 이기고 싶다면 어린 선수들이 기초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김: 그래도 남자들은 여자보다 자원이 많은 편이다. 여자 선수들을 생각하면 좀 암담하다. 여자 탁구에도 김연아 같은 선수가 나와야 한다. 한두 번은 중국을 이길 수도 있지만 월등한 실력을 뽐내지 않는 한 중국은 영원히 ‘벽’으로만 존재할 것이다. 유승민 같은 후배가 여자 선수들한테서도 배출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 내 인생의 슬럼프
오: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준비하면서 어깨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 재활하는 과정에서 참으로 견뎌내기 어려운 고통의 시간들이 존재했다. 더 이상 선수로 뛸 수 없다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이렇게 끝나는구나 하는 생각에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다. 그러나 올림픽 때문에 마냥 좌절만 하고 있을 순 없었다. 올림픽을 떠올리며 마음을 가다듬고 목표를 제대로 세운 후 3개월 속성으로 끔찍한 재활 훈련을 소화했다. 가장 위기라고 생각했던 시간들이 나한테는 열정을 다해 훈련을 했던 최고의 시간이 되었다.
김: 수비탁구만을 하다 보니 항상 공격에 대한 문제가 대두되었다. 그걸 보완하기 위해 지독히 훈련을 했고, 2011년 3월까지 조금씩 빛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3월 이후부터 세계랭킹 4위였던 성적이 21위로 급락했다. 주위에선 나이와 체력을 들먹이며 나를 은퇴까지 시키려 들었다. 3개월가량 아예 라켓조차 잡지 않고 놀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렇게 은퇴한다는 게 아쉽고 억울했다. 그래서 다시 탁구대 앞에 서게 됐고 바닥을 헤매던 성적이 서서히 올라가기 시작해서 런던올림픽까지 치르게 된 것이다. 마지막에 메달을 못 따 많이 아쉬웠지만, 그래도 후회는 없다. 정말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오상은은 인터뷰 말미에 김경아에 대해 이런 아쉬움을 나타냈다.
“경아는 한국 여자 탁구의 대들보나 마찬가지다. 대표팀에서 최선을 다했고,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몸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 선수가 선수 생활에서 은퇴를 한다면 제대로 된 은퇴식을 열어줘야 하는 게 아닌가. 그래야 어린 선수들이 멋진 은퇴식을 치르는 선배를 보며 더욱 큰 자부심과 용기도 얻을 게 아닌가. 소속팀에선 당연히 준비하고 있겠지만, 탁구협회에서도 경아의 은퇴식을 염두에 뒀으면 한다.”
오상은의 얘기를 듣고 있던 김경아는 크게 공감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상은은 단체전 파트너였던 주세혁과 유승민을 가리켜 ‘오른팔’과 ‘왼팔’이라고 불렀고, 김경아는 대표팀에서 만난 현정화 감독을 향해 ‘영원히 모셔야 할 선배’라고 정리했다. 주세혁과 유승민은 오상은과 함께 런던올림픽을 끝으로 대표팀 은퇴를 시사했고, 현 감독은 지금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유학 중이다.
조양호 탁구협회장의 김경아 사랑
임신작전 총력 지원중
2007년, 체육교사로 재직 중인 박명규 씨와 결혼식을 올린 김경아. 결혼 5년차를 넘긴 이 커플들한테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바로 ‘임신’ 때문이다. 아직 아이가 없는 김경아는 최근 탁구협회장인 대한항공 조양호 회장으로부터 ‘임신 특명’을 받았다. 조 회장이 관계자들을 시켜 김경아의 임신이 성공할 때까지 체육관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말게 하라는 얘기를 전해 들었던 것.
“대기업 회장님께서 선수의 임신에까지 신경 써주신다니 기분은 좋은데, 조금 부담스럽기도 하다. 임신이 훈련하는 것처럼 노력한다고 되는 게 아니지 않나. 잘 안 되면 인공수정이라도 받을 수 있게 지원하라고 말씀하셨다는데 하루 빨리 아기를 가져야만 할 것 같다. 회장님을 위해서라도(웃음).”
대한항공 소속이다 보니 김경아는 항공권과 관련해선 전혀 걱정이 없다. 남편은 물론 직계 가족까지 모두 항공권요금의 10%만 내면 비행기를 탈 수 있어 해외 여행을 할 경우 엄청난 혜택을 받게 된다.
“그러나 그 좋은 혜택을 쓸 수 있는 시간이 없다. 아프리카 여행을 가더라도 요금의 10%만 내면 되는데 그럴 여유가 없다보니 ‘그림의 떡’이나 마찬가지다. 단, 대한항공 선수들은 은퇴 후에도 모두 정식 직원으로 발령난다. 은퇴 후 실업자로 내몰리는 선수들도 있는데 반해 우린 든든한 미래가 보장돼 있어 회사 생각만 하면 절로 애사심이 생길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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