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리그 우승을 바라보고 있는 신치용 감독과 이정철 감독. 두 감독은 성균관대 선후배이기도 하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 1위팀 감독으로 사는 법
신치용(신): 이 감독! 요즘 얼굴 보기 힘드네. 잘나간다고 전화도 잘 안 받고. IBK가 대단하긴 대단해.
이정철(이): 어휴, 형님! 왜 그러세요. 훈련 때문에 전화를 못 받은 거지, 설마 일부러 형님 전화를 안 받았겠어요? 제가 현장을 떠나 있을 때는 형님이 콜 했을 때 무조건 달려갔잖아요. 그래도 형님 도움 덕분에 제가 지도자로서 조금씩 인정을 받고 있는 것 같아요.
신: 창단팀을 2년 만에 1위에 올려 놓은 건 엄청난 일이야. 아직 우승이 확정되진 않았지만 거의 우승권에 접어 들었다고 할 수 있잖아. 하여튼 미리 축하하네.
이: 형님이야 워낙 우승을 많이 해보셔서 노하우가 많으시잖아요. 전 지금 ‘우승’이란 단어를 거론하는 게 많이 부담스러워요. 우승을 확정하기 전까진 늘 조심스럽기만 하고요. 그래도 이런 기회가 자주 오는 것도 아니고, 왔을 때 잡아야 하잖아요. 주위에선 천천히 올라가도 된다고 조언을 해주는데 전 기회가 오면 무조건 잡고 올라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신: 당연하지. 그 좋은 기회를 못 잡는 게 이상한 사람이지. 주위의 그런 조언은 이 감독을 질투해서 엉뚱한 얘기를 해주는 거라고. 숙소도, 전용체육관도 없는 IBK가 지금과 같은 성적을 낼 수 있는 데 대해선 다른 팀들이 많이 반성해야 할 거야.
이: 회사에서 지원을 잘해주고 있어요. 아파트 생활도 처음에만 힘들었지 선수들도 지낼 만하다고 하고요. 전용체육관은 선수들 숙소 근처 (수원시) 장안구청 내 체력단련장을 쓰고 있어 괜찮아요.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잖아요. 어려운 여건을 이기고 좋은 결과를 얻는다면 더 큰 보람이 있다고 봐요.
# 우승? 시즌 전엔 ‘택’도 없었다!
이: 형님, 삼성화재는 선수가 없다 없다 해도 시즌 끝날 때쯤 되면 매번 1등을 하고 있어요. 이번 시즌에도 새로운 선수들이 많이 들어오면서 기존 선수들과의 호흡이 문제였는데, 잘해주고 있잖아요. 도대체 비결이 뭡니까?
신: 우린 고희진 여오현 석진욱 빼놓고는 대부분 연습생이거나 실업팀 출신 선수들이야. 처음엔 정말 막막했다고. 새로운 외국인 선수 레오도 덜 만들어진 상태였고. 박철우도 매번 ‘뻘짓’만 하니까 누굴 믿고 내보내겠어. 그런데 정말 연습만이 그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해 주는 것 같아.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선수들을 뺑뺑 돌렸는데, ‘삼성 문화’ 때문인지 선수들이 잘 따라와 주더라고. 지금의 성적은 우리 실력이 아닌 연습 덕분이야.
이: 연습해서 1등할 수 있다면 모든 팀들이 연습만 하겠네요. 연습 외에 뭔가가 더 있으니까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거죠. 배구계에선 ‘삼성 문화’라는 말을 많이들 하는데, 삼성화재에는 새로 들어간 선수들도 그 문화에 금세 적응하는 것 같아요. 형님이 그 문화를 만드셨잖아요.
신: 처음엔 힘든 훈련 때문에 도망친 선수들도 많았는데 요즘엔 그런 선수들이 없어서 재미없어(웃음). 이 감독도 시즌 전에는 우승을 예상 못했지?
이: 그럼요. 우리가 지난해 3위랑 승점 1점 차이로 4위를 했거든요. 그때 자신감을 얻긴 했습니다. 그러나 박정아 김희진 등 젊은 피와 이효희 남지연 윤혜숙 등 베테랑들의 희생과 노력이 잘 어우러져 성적으로 나타난 것 같아요. 돌이켜보면 제가 한 건 별로 없어요.
신: 당연히 없겠지. 이 감독은 코트에서 ‘레이저’만 쏴댔으니까(웃음). 우리도 오현이, 진욱이 등 연식이 오랜 선수들이 많아 회복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려. 세월 앞에 장사 없더라고. 그래도 그들은 중요한 순간에 한 방씩 해주거든. 젊은 선수들이 하지 못하는 노련미가 코트에서 발휘되기 때문에 고참들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해져. 다행히 요즘 레오는 물론 박철우가 살아나고 있어 조금씩 틀이 잡히는 것 같아. 이렇게 계속 가다보면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겠어?
# 만약 우리 팀이 우승을 한다면?
신: 3년 전인가? 삼성화재가 우승했을 때 반짝이 의상 입고 체육관에서 ‘영일만 친구’를 부른 적이 있었어. 그게 나름 히트를 쳤는데, 반짝이 의상이 너무 강렬해서인지 다른 세리머니가 떠오르질 않아. 어떤 걸 준비해야 할 지 고민이야.
이: 지난 번 프로축구 보니까 FC서울 최용수 감독이 우승 세리머니로 진짜 말을 타고 그 위에서 춤을 추더라고요. 대단하신 분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형님도 멋진 세리머니 준비하세요.
신: 이번엔 이 감독이 반짝이 의상 입고 노래 한 곡 불러봐. 여자 선수들 쓰러질 거야. 난 레오랑 말춤이나 출까(웃음)?
사진촬영을 하던 사진기자가 두 감독에게 살짝 미소를 지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신 감독이 “원래 생긴 게 이런데 어떡해. 그냥 찍어”라고 말했고, 이 감독은 “주위에서 나한테 경기 중 레이저 좀 그만 쏘라고 말해요. 꼭 조폭 같다면서요”라며 한술 더 뜬다.
친한 선후배가 정규리그 1위를 달리고 있으니 서로에게 전하는 덕담이 재미있을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우승 확정시 두 감독이 어떤 세리머니를 보여줄지 인터뷰가 끝나자 더 궁금해졌다.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