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당선인의 육군참모총장 출신 경호실장 내정을 두고 ‘서열과 체계를 중시하는 군 조직 문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인수위사진기자단
박흥렬 경호실장 내정자는 김관진 현 국방부 장관, 김병관 차기 국방부 장관 내정자와 함께 육사 28기 트로이카로 꼽히는 인물이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5년 전 차관급으로 격하됐던 경호처장 직을 장관급 경호실장직으로 격상했다. 박 당선인이 자체 권한이 많이 축소됐던 경호실에 다시 힘을 실어주고 있다는 의미다.
일각에서는 부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재임시절 직접 경호실을 창설했고 이를 무소불위의 권력 조직으로 이용했다는 점에서 박 당선인의 태도에 대해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한동안 위상이 추락했던 경호실이 다시금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박정희 정권 말미, 경호실 차장을 지낸 성우회 고명승 회장(예비역 대장)은 이를 두고 박근혜 당선인 개인의 문제가 자연스레 투영된 결과라고 지적했다. 그는 “박근혜 당선인 개인의 지난 과거 감정적 문제가 내재해 있다. 박 당선인은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저격을 당해 잃었다. 이는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아픈 기억일 것이다. 당연히 개인적으로 안전 문제가 수반될 수밖에 없다. 경호실 격상 문제는 이러한 배경 속에 박 당선인 스스로 판단한 것이다. 단순히 대통령 경호실이 과거의 무소불위 권력기관으로 회귀한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박흥렬 경호실장 내정자
이 때문에 박 당선인이 선택한 첫 번째 경호실장으로 육군참모총장 출신인 박흥렬 내정자를 지명했다는 것은 격상된 경호실의 위치만큼이나 큰 의미가 있다. 앞서의 고명승 회장은 “반포대교를 놓고 보자. 반포대교를 설계하고 건설하는 자리에 예술인이나 의사를 앉혔다고 생각해보자. 그것이 맞나. 아니다. 경호실은 그야말로 순간적 상황판단과 목숨 건 책임이 동반되는 곳이다. 상황판단, 책임감, 역량, 경험을 따져볼 때 경호실장직에 군 출신 인사를 임명하는 것은 당연한 거다”고 설명했다. 한동안 축소된 위치만큼이나 침체한 경호실 조직문화에 군 출신 카드라는 정공법을 통해 조직 본연의 색깔을 되찾겠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군과 일부 예비역 장성들은 이번 인사를 두고 내심 불편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무엇보다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대장급 인사가 경호실장에 내정된 것은 지극히 민감한 군의 ‘자존심’을 건드린 것이라는 해석 때문이다. “도대체 군을 뭘로 보고 그런 인사를 하느냐”며 흥분하는 예비역들도 많다.
이동흡 전 헌법재판소장 내정자와 김용준 전 국무총리 내정자의 잇따른 사퇴로 차기 정부 조직 인선에 난항을 겪고 있는 박근혜 당선인으로서는 분명 부담되는 대목이다. 인수위 업무의 가장 기본적인 인사 시스템의 오작동으로 큰 비판을 받고 있는 박 당선인에게 이번 경호실장 인선은 ‘서열과 체계를 중시하는 군 조직 문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쏟아질 수 있다.
이를 의식했는지는 모르지만, 박흥렬 내정자와 통화한 한 측근에 따르면 박 내정자 역시 처음 제의를 받았을 때 한 차례 거절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본인도 분명 군 내부의 민감한 분위기를 의식한 결과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박근혜 당선인의 거듭된 요청에 따라 박 내정자는 어쩔 수 없이 이를 받아들인 것으로 알려진다.
이러한 논란에 대해 군 예비역 장성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는 고명승 회장은 “물론 육군참모총장 출신이 경호실장으로 내정됐다는 것에 대해 불만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부모 모두 피격당한 박 당선인에게 있어서 ‘신뢰성’이 가장 중요했을 것이다. 분명 심사숙고하고 택한 결과라고 본다. 어찌 됐건 인사는 임명권자 고유 권한 아닌가”라고 항변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박종규가 벌벌 떤 진짜 이유 영부인 앞에만 서면 ‘도살장 소’ 박정희 정권 당시 절대 권력을 휘둘렀던 박종규에게도 ‘임자’는 따로 있었다. 그가 가장 무서워했던 사람은 충성경쟁을 벌였던 김형욱이나 이후락도 아니었고 자신이 모시던 주군 박정희도 아니었다. 그가 정작 가장 무서워했던 사람은 바로 영부인 육영수 여사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당시 청와대 경호실은 중앙정보부와 함께 박정희 전 대통령의 ‘채홍사’(조선시대 왕에게 여자와 준마를 대던 벼슬아치) 역할을 도맡아 했었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의 여자 문제는 알게 모르게 문제가 되고 있었다. 삼일에 한 번꼴로 ‘안가’를 찾아 여성들을 불러 ‘연회’를 열었다고 하니 영부인의 속은 검게 타들어 갈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육영수 여사는 독자적인 ‘정보라인’이 있었다. 바로 당시 5선을 지냈던 오빠 육인수 전 의원이 주요 소식통이었다. 박정희의 여자 문제와 관련한 정보는 어떻게 해서든지 육 여사 귀로 들어갔다. 그때마다 곤경에 처한 것은 ‘채홍사’ 역할을 가장 열심히 한 박종규였다. 육영수 여사는 문제가 있을 때마다 박종규를 불러 이를 심하게 따졌다. 심지어 그의 면전에 “각하를 망칠 작정인가”라며 굴욕을 주기도 하고, 어린아이 타이르듯 좋은 말로 충고도 했다고 한다. 불같은 성격을 자랑하는 그도 육 여사 앞에서는 꿀 먹은 벙어리였다. 박종규는 육 여사에게 끌려가는 날이면 자신의 측근에게 “오늘 도살장 끌려간다”며 푸념을 하곤 했다. 당시 경호실은 대통령의 신변을 보호하는 게 주 임무였지만 밤의 주연도 담당하는 ‘심기경호’에도 열성적이었던 셈이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
박종규-차지철 ‘무한권력’ 비스토리 “네 배엔 철판 깔았나” 박, 김형욱에 총부리 평소 옆구리에 권총을 차고 다녀 ‘피스톨 박’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박종규 전 경호실장(사격에 일가견이 있었던 그는 훗날 대한사격연맹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그는 육영수 여사 피살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난 1974년 8월까지 장장 10년 3개월간 권력을 누렸다. 그는 부사관 시절부터 박정희의 고약한 술시중까지 들었던 측근 중 측근이었다. 박종규의 위세와 관련한 에피소드 중에서는 당대 라이벌이었던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과 얽힌 이야기가 유독 많다. 당시 경호실과 중앙정보부는 박정희 정권을 뒷받침하는 양대 권력기구였지만, 두 수장의 사이는 무척 안 좋았다. 당시 ‘피스톨과 돈까스(김형욱의 별명)의 전쟁’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한번은 요정에서 둘 사이에 시비가 붙어 몸싸움이 벌어졌는데, 박종규의 뛰어난 격술 탓에 김형욱 전 부장은 ‘샌드백’마냥 흠씬 두들겨 맞는 일까지 있었다고 한다. 박종규는 유도, 합기도, 가라테, 태권도 유단자였으며 알아주는 통뼈에 완력도 대단했던 인물이다. 1968년 동백림사건 때는 박종규의 여비서가 간첩 혐의로 중앙정보부에 체포된 일이 있었다. 당시 김형욱은 워낙 사건이 중해 박 전 실장에 아무런 고지를 하지 않고 막무가내로 그의 여비서를 체포했다. 그런데 그것이 ‘피스톨 박’의 굳센 자존심을 건드렸다. 분을 참지 못한 박종규는 그날 밤 남산으로 향했고, 김형욱에게 실탄을 장전한 권총을 들이밀며 “네 배때기엔 철판 깔았느냐”라며 소란을 피웠다. 결국 겁을 덜컥 먹은 김형욱은 문제의 여비서를 그 자리에서 풀어줄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박종규가 버티고 있던 경호실의 권력은 당대 최고의 권력기관이었던 중앙정보부와 자웅을 겨룰 정도였다. 당시 경호실은 중앙정보부와는 별개로 사설 정보대를 운영하며 ‘정보전’에서도 결코 밀리지 않았다. 그의 뒤를 이은 차지철 전 경호실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 거의 편집증 수준의 무지막지한 충성심을 보여줬다. 그는 ‘각하의 경호목적’에 반하는 그 어떤 행위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 번은 박 전 대통령이 전라북도를 시찰하는 자리에서 담배를 피우려던 중 옆에 있던 이춘성 당시 전북지사가 담뱃불을 붙여준 일이 있었다. 그런데 실수로 이춘성 지사의 라이터에서 ‘화염’이 솟아올랐다. 박 전 대통령은 뜻밖의 화염에 깜짝 놀라 고개를 뒤로 젖혔다. 이를 눈여겨본 차지철은 ‘경호’에 반한다는 이유 단 하나만으로 이춘성 지사를 끌고 가 무지막지하게 폭행한 일이 있었다. 훗날 이춘성 지사가 박 전 대통령에게 이를 항의했지만 박 전 대통령은 “나에게 맞은 셈 치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한 차지철은 곰같이 생긴 겉모습과 달리 ‘여우’같이 세심하고 교활한 구석도 있었다. 장관들의 결재서류가 박 전 대통령에 올라가기 전 차지철은 종이 한 장 한 장을 일일이 들춰보며 확인했다. 서류에 독약을 발라 놓을 경우, 박 전 대통령이 침을 묻혀 종이를 넘기다 독살당할 수 있다는 명목에서였다. 하지만 정작 그의 목적은 대통령에 올라가는 세세한 정보를 사전에 숙지하기 위해 그 같은 일을 벌인 것이었다. 그만큼 그는 ‘처신’ 면에서 뛰어난 인물이었다. 전두환 정권의 2인자였던 장세동 전 경호실장 등 수많은 후배들이 박종규-차지철의 뒤를 이었지만, 그들만큼 무소불위를 권력을 휘두르며 정국을 주물렀던 경호실장은 다시 찾아볼 수 없었다. 박종규와 차지철로 이어지는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의 경호실은 한마디로 ‘국가 권력 속의 또 다른 국가’였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