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유업 대리점 업주가 본사 앞에서 1인 시위하는 모습. 작은 사진은 남양유업 관계자가 대리점 업주에게 보낸 문자 내용.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A 씨가 남양유업 대리점을 운영하기 시작한 건 2010년경. 불의의 사고로 한쪽 손을 잃은 A 씨는 새로운 일을 찾아보다가 지난 10년간 모은 자금으로 유통업을 시작하게 됐다. 그런데 대리점을 인수하면서 전 대리점 업주가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왜 많고 많은 회사 중에 남양을 들어왔느냐”는 것.
전 업주는 A 씨에게 “남양에서 절대 돈 못 번다. 나도 많이 손해 보고 나가는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A 씨는 이런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대리점 인수 후 4개월 만에 A 씨는 전 업주의 말을 실감하게 됐다고 한다. A 씨는 “둘째 달부터 밀어내기가 시작됐다. 정말 피를 빨아 먹는 것 같았다”며 “결국 2년 반 만에 (대리점에서) 손 털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A 씨가 말한 ‘밀어내기’란 본사에서 대리점에 제품을 필요 이상으로 대량 공급하는 것. A 씨는 ‘떠먹는 불가리스’를 하루에 10박스 공급 받았다고 한다. A 씨는 “하루에 10박스면 대리점이 감당하지 못하는 엄청난 양이다. 대형마트도 하루 최대 팔 수 있는 양이 5박스다. 한 달 내내 그런 식의 밀어내기를 한다”라고 밝혔다.
남양유업에게서 ‘밀어내기’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대리점 업주들은 한두 명이 아니었다. 또 다른 대리점 업주는 “제품 20박스를 주문하면 60박스가 오는 식이다. 1000만 원어치의 제품을 밀어놓고 30만 원을 디스카운트 해준다. 나머지 970만 원은 고스란히 대리점 부담으로 남는 셈”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기자가 직접 본 한 대리점의 냉동창고 안에는 납품하지 못한 물품이 박스째로 쌓여 있었다. 대리점 업주가 공개한 통화 녹취록에 따르면, 대리점 업주가 남양유업 관계자에게 “몇 박스야? 창고 쌓을 데도 없는데 200박스 가까이 밀면 어떡해? 이걸?”이라고 말하자, 남양유업 관계자는 “마지막이에요, 이제”라며 “저도 진짜, 저희 맨날 이렇게 해 가지고 진짜 지겨워요”라고 답하는 대목이 나오기도 했다.
제품 밀어내기가 계속되다보니 유통기한이 2~3일 임박했거나 심지어 당일자의 제품이 내려오는 경우도 있었다.
남양유업 대리점 피해자 연합회장 이창섭 씨는 “보통 유제품 유통업체에서는 상품 유통기간이 70% 이상이면 상품을 출고하지 않고 본사 자체에서 폐기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남양은 유통기한 임박 제품과 그 처리 비용을 대리점에게 모두 떠넘긴 셈”이라고 밝혔다.
냉동창고에 가득 쌓인 밀어내기 제품들.
이 씨의 주장에 따르면 떡값 금액은 대리점 규모에 따라 보통 10만 원에서 30만 원가량을 상납한다고 한다. 떡값을 거부하면 곧바로 제품 밀어내기 등 불이익이 따르기 때문에 영업을 하기 위해선 떡값을 낼 수밖에 없다는 게 이 씨의 설명이다.
이 씨는 “대리점 경영이 어려워 신용불량자가 되기 직전인 한 대리점 업주에게도 남양유업은 떡값 20만 원을 요구했다. 인간적인 모멸감을 이기지 못한 이 대리점 업주는 남양유업 본사 옥상에서 자살을 시도하려고도 했다”라고 전했다.
한편 남양유업은 이러한 사실을 전면 부인했다. 남양유업 관계자는 “경영적으로 어려워 본사에 불만을 갖고 있는 일부 대리점들의 주장인 것 같은데 전혀 사실무근”이라며 “주장에 허위사실들이 있어 몇몇 대리점 업주들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상태”라고 짤막하게 밝혔다.
현재 피해자 연합회는 남양유업을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한 상태다. 이 씨는 “떡값, 물품 강매뿐만 아니라 남양유업 파견 직원의 월급을 대리점 업주들에게 부담하게 한 점, 일방적인 계약해지, 발주 데이터 조작 등의 문제도 있다. 많은 대리점 업주들에게 피해 제보가 들어오는 상태”라고 밝혔다.
이번 사건을 접수한 공정위 관계자는 “현재 문서를 검토 중이다. 사실관계를 정확히 파악해야 하기 때문에 조사 여부는 알려줄 수 없다”고 밝혔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
남양유업-대리점 공방 과거에도… 곪은 상처 터졌다 남양유업과 대리점 사이에 마찰음이 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09년 대리점 업주 강 아무개 씨(43)는 “물품을 과도하게 공급해 피해를 봤다”며 남양유업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재판부는 “거래상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열등한 지위에 있는 대리점에 구입할 의사가 없는 유가공 제품을 구입하도록 강제하는 행위”라며 강 씨의 손을 들어줬다. 그보다 앞선 지난 2006년 남양유업은 대리점에 재고물량 떠넘기기로 공정위의 시정명령을 받은 바 있다. 지난 2012년에는 ‘제주 경제정의실천연합’에서 성명을 내고 남양유업의 ‘유기농우유 강매행위 중단’, ‘떡값 명목 금품수수 수사촉구’를 요구한 바 있다. 당시 제주 경실련은 대리점 업주들이 남양유업 제주지점 담당자에게 명절 떡값을 송금한 통장 거래내역까지 공개해 파문이 일었었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유제품 업체들이 자사 대리점에게 물건을 강매하는 건 공공연히 퍼져 있는 관행이긴 하지만 남양유업은 이중에서도 유별난 경우”라며 “떡값까지 요구한다는 얘기는 생소하기까지 하다”라고 전했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