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핵 실험이 금융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사진은 김정은 위원장. 로이터/뉴시스
정부와 금융당국의 발 빠른 대처가 무색하게(?) CDS 프리미엄은 북한 핵 실험 전날인 11일 69bp(1bp=0.01%)에서 12일 68bp로, 오히려 1bp 하락했다. 코스피지수는 핵 실험 당일이었던 12일에 전 거래일(8일)보다 5.11포인트(0.26%) 떨어지는 데 그쳤다. 코스피지수는 다음 날인 13일에는 전날보다 30.28포인트(1.56%)나 오른 1976.07로 장을 마감해 핵 실험 전보다 오히려 올랐다. 특히 외국인은 12일 1353억 원, 13일 843억 원치 주식을 사 모았다. 외환시장도 안정된 흐름을 보였다. 원-달러 환율은 핵 실험이 있었던 12일에 전 거래일(8일)보다 4.9원 내렸고, 13일에도 4.0원 하락하는 등 내림세를 이어갔다.
이처럼 북한의 도발이 우리나라 금융시장에 그다지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특히 북한 리스크의 영향력은 최근 들어 더욱 약해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CDS 프리미엄 추이를 보면 분명하게 나타난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북한이 지난 2006년 7월 5일 함경북도 화대군 무수단리 발사장에서 장거리 미사일인 ‘대포동 2호’를 발사하자 CDS 프리미엄은 1주일 사이에 2bp 상승했다. CDS 프리미엄이 이전 수준으로 돌아오는 데 12일이 걸렸다. 같은 해 10월 9일 북한이 1차 핵실험을 감행하자 CDS 프리미엄은 1주일 동안 4bp 올랐다. 다만 CDS 프리미엄이 핵실험 전 수준으로 회복되는 데는 1개월이 소요됐다. 회복시간이 좀 걸렸을 뿐 큰 문제는 없었던 셈이다.
CDS 프리미엄은 2009년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인 ‘은하 2호’를 발사(4월 5일)하고, 2차 핵실험(5월 25일)을 강행했을 때는 더욱 안정된 흐름을 보였다. 은하 2호 발사 당시 오른 CDS 프리미엄은 7일 만에 원상 회복됐고, 2차 실험 때는 오히려 CDS 프리미엄이 하락했다. 당시 CDS 프리미엄은 핵 실험 후 1주일 사이에 13bp나 떨어졌다.
2012년 4월 13일 장거리 미사일인 ‘은하 3호(1호기)’를 발사했을 당시(궤도 진입 실패)에는 CDS 프리미엄은 아무런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같은 해 12월 12일에 ‘은하 3호(2호기)’를 발사했을 때는 CDS 프리미엄은 오히려 2bp 하락했다. 북한의 핵 실험이나 미사일 발사가 금융시장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한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에도 우리나라 CDS 프리미엄이 그다지 큰 변화를 보이지 않는 것은 북한이 핵 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지속적으로 공언해온 때문”이라며 “북한은 항상 핵 실험이나 미사일 발사를 사전에 대대적으로 선전한다. 이로 인해 북한 발 리스크가 사전에 우리나라 CDS 프리미엄에 반영되어 있다 보니 핵 실험이나 미사일 발사에도 큰 변화가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과거 북한의 도발이 갑작스레 발생했을 때 CDS 프리미엄은 크게 요동쳤다. 2010년 천안함 침몰(3월 26일)과 연평도 포격(11월 23일)이 연이어 터졌을 때 CDS 프리미엄은 사건 당일 각각 6bp, 21bp 상승했다. 이 CDS 프리미엄이 사건 이전으로 돌아가는 데 각각 8일과 16일이 걸렸다. 연평도 포격의 충격이 컸던 것은 북한이 민간 지역에 포격을 가하면서 한반도에 전쟁위험도가 높아졌던 때문이다. 김정일 사망(2011년 12월 19일) 당일 CDS 프리미엄은 9bp 상승했고,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는데 11일이 소요됐다.
우리나라 CDS 프리미엄은 북한의 도발보다는 국내 사정이나 해외 발 악재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국제금융센터 조사에 따르면 한국 부도 위험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건은 미국의 ‘더블 딥(경기가 회복세를 보이는 듯하다가 다시 침체로 접어드는 현상)’ 우려가 불거졌을 때와 이명박 대통령이 천안함 관련 담화문을 발표했을 때였다.
미국 중앙은행인 Fed(연방준비제도)가 2011년 9월 22일 시중에 돈을 공급하는, 일종의 양적완화 정책인 ‘오퍼레이션 트위스트’를 발표하자 우리나라 CDS 프리미엄은 32bp나 급등했다. 미국이 더블 딥에 빠져들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높아진 탓이었다. 2010년 5월 20일 이명박 대통령이 전쟁기념관에서 천안함 관련 담화문을 발표했을 당시에도 CDS 프리미엄은 29bp나 뛰어올랐다. 이는 이명박 대통령이 천안함 사건을 북한의 소행으로 규정짓고 단호한 대처를 공언하면서 지정학적 위험도가 높아졌던 때문이다.
해외 발 악재도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S&P(스탠더드 앤 푸어스)가 미국 신용등급을 강등한 2011년 8월 8일 우리나라 CDS 프리미엄은 18bp 올랐고, 같은 해 9월 21일 이탈리아의 국가신용등급이 하향조정되자 14bp 상승했다. 지난해 1월에는 유럽 재정위기로 EU(유럽연합) 3위 경제국인 프랑스의 국가신용등급 하향조정 루머가 퍼지자 15bp 오르기도 했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경제가 가장 싫어하는 것을 불확실성인데 이미 예견된 북한 리스크는 CDS 프리미엄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면서 “반면 미국 신용등급 하락과 같은 악재나 정부의 대북 강경책 공언 등 시장에서 예견하지 못한 것이어서 CDS 프리미엄을 요동치게 했다”고 설명했다.
이준겸 언론인
Tip - CDS 프리미엄은? CDS(Credit Default Swap·신용부도스와프) 프리미엄은 부도가 났을 때 손실을 보상해주는 파생상품의 보험료를 의미한다. 즉 채권을 발행한 국가나 기업이 부도났을 때 손실을 보상해주는 상품이 CDS이며, 이 CDS에 붙는 일종의 보험료가 프리미엄인 것이다. A 은행이 한국에서 발행한 외화표시채권(5년물 기준)을 샀다고 치자. A 은행은 부도 시 채권 금액을 받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B 은행과 CDS 계약을 맺는다. 그때 A 은행은 B 은행에게 일종의 보험료인 프리미엄을 지급한다. 이후 한국이 부도가 나서 채권을 매입할 수 없게 되면 B 은행이 대신 채권 금액을 A 은행에 지급하게 된다. 부도가 나지 않으면 A 은행은 프리미엄만큼만 손실을 보게 된다. 한국의 부도 위험이 높다면 보험료인 프리미엄도 그만큼 올라가게 된다. 따라서 CDS 프리미엄이 상승했다는 것은 국가 부도위험이 높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제 금융시장에서 거래되는 채권 등의 금액이 크기 때문에 CDS 프리미엄은 bp(베이시스 포인트)로 표시되는데 1bp는 0.01%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