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전 후보가 신당 창당 결심을 굳힌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은 안 전 후보가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 지지 유세를 펼치는 모습.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안철수 전 후보는 대선이 치러지던 당일 미국으로 떠난 이후 단 한 번도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안 전 후보를 만나고 돌아온 측근들을 통해서만 간접적으로 그의 소식을 들을 수 있을 뿐이었다. 그럴수록 지난해 대선에서 신드롬을 일으켰던 안 전 후보 의 향후 행보에 대한 궁금증은 증폭됐다.
안 전 후보가 대선 과정에서 “정치를 업으로 삼겠다”고 천명한 만큼 언젠가는 다시 정치권으로 돌아와 ‘안풍’을 재현할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안 전 후보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머물면서 외부 일정보다는 휴식을 취하며 향후 정치 행보를 놓고 장고를 거듭했다는 후문이다.
그런데 설 연휴 직전 안 전 후보가 지난 대선에서 자신을 도왔던 몇몇 지인들에게 “조만간 국내로 돌아갈 것”이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알려지면서 그의 정치 구상이 마무리단계에 접어든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대선 때 ‘안철수 캠프’에 몸 담았던 한 관계자는 최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안 전 후보가 2월 말 혹은 3월 초 쯤에 들어올 것이라고 전해왔다. 지금 미국에서의 생활을 정리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그동안 정치권에서는 안 전 후보 정치 스탠스와 관련해 신당 창당, 민주당 입당, 정책연구소 설립 및 재단사업, 강연활동 등 다양한 시나리오들이 제기된 바 있다. <일요신문>이 안 전 후보의 핵심 측근들을 수차례 접촉한 결과 이 중 신당 창당 쪽으로 가닥이 잡힌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사실 대선이 끝난 후 안 전 후보 측에선 신당 창당을 통한 정치권 진입을 주장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안 전 후보가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은 채 미국으로 떠나면서 이러한 논의는 잠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상황이었다. 이런 와중에 안 전 후보가 측근들에게 ‘OK’ 사인을 내리면서 신당 창당 작업에 가속도가 붙고 있는 모습이다.
정치권에서는 ‘안철수 신당’에 대해 비관적인 전망이 팽배한 것도 현실이다. 안 전 후보 측 일각에서도 신당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가 존재한다. 이재광 정치컨설턴트는 “이인제의 국민신당, 정몽준의 국민통합21, 문국현의 창조한국당의 공통점은 지역이 아닌 인물에 기반을 둔 정당이라는 것이다. 인물이 사라지면 정당은 무너진다. 옳고 그름을 떠나 한국 정치에서 지역적 연고가 없는 정당은 실패한다는 게 정설”이라면서 “안 전 후보의 지지율이 흔들리면 신당은 순식간에 와해될 것이라는 게 정치 전문가들의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안 전 후보가 정당을 만들어 기존 제도권에 들어올 경우 다음 대선까지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감도 ‘신당 불가론’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 전 후보는 왜 신당을 만들기로 결심한 것일까. 이에 대해 안 전 후보의 핵심 측근은 “안 전 후보가 정공법을 택하기로 한 것 같다. 새로운 정치판을 짜고 싶어 한다. 이왕 정치를 할 거면 정당을 만들어 국민들에게 제대로 평가를 받고 싶다는 취지의 말도 했다”면서 “지난 대선에서 조직의 역부족을 절실히 깨달았던 것도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미국을 방문해 안 전 후보를 만나고 온 금태섭 변호사도 지난 2월 중순경 <JTBC>와의 인터뷰에서 “정당의 중요성을 공감한다. 지난 대선에선 시간이 부족해 만들지 못했다”며 조만간 신당을 만들 것임을 내비친 바 있다.
25일 취임한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역대 대통령들의 취임 전후 기록 중 최저 수준이라는 점도 신당 추진에 적잖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안 전 후보가 지난 대선에서 급부상할 수 있었던 것은 어떻게 보면 박 대통령의 공(?)이 컸다. 당시 부동의 지지율 1위였던 박 대통령을 꺾기 위한 대항마로 안 전 후보가 급부상했기 때문이다. 만약 지금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면 안 전 후보가 설 자리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재광 정치컨설턴트는 “박 대통령이 지지율 하락을 면치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가장 생각나는 사람이 바로 안철수다. 안 전 후보가 박 대통령에 맞서는 야당 정치인이라고 각인될 경우 ‘안철수 신당’은 의외로 연착륙할 수 있다. 안 전 후보 역시 거물 정치인으로 확고한 입지를 구축하기 위해선 집권 여당 및 현직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민주통합당이 제1야당으로서의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도 안철수 신당의 동력이 되고 있다. 대선 패배 후 지리멸렬하면서 책임 공방만 거듭할 뿐 쇄신은 뒷전인 민주통합당 대신 안 전 후보가 그 대안 세력으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신당을 겨냥해 가장 강력한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곳은 바로 민주통합당이다. 또 그 중에서도 친노(친 노무현) 세력이 안철수 신당에 대해 강한 우려감을 표하고 있다. 야권이 분열될 수 있을 뿐 아니라 신당의 성공 가능성이 낮다는 이유에서다.
이러한 반대 목소리는 역으로 안철수 신당의 파괴력을 방증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민주통합당의 한 중진 의원은 최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오프’를 전제로 “호남 지역에서 인기가 높은 안 전 후보가 신당을 창당할 경우 우리는 이곳에서 힘든 싸움을 할 수밖에 없다. 자칫 지역 기반을 잃을 수도 있다. 특히 비노(비 노무현) 세력이 신당에 대거 합류한다면 친노는 고립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힘들다”고 토로한 바 있다.
현재 안 전 후보로부터 신당 창당 ‘밀명’을 받은 핵심 측근들은 지난 대선 때 가동됐던 각 지역 조직의 재정비에 힘을 쏟고 있다고 한다. 지난 대선 캠프에서 전략 및 조직 업무를 맡은 일부 인사들이 전국을 순회하며 조직 책임자들을 만나고 있는 정황도 속속 포착되고 있다. 경남 지역에서 활동 중인 안 전 후보 정책포럼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안 전 후보가 조만간 신당을 세울 것이라며 착실하게 내실을 다지라는 말을 듣고 흩어졌던 동지들을 다시 부르고 있다”고 귀띔했다.
안 전 후보 사재 출연으로 세워진 ‘안철수 재단’과 정책 연구소 등 외곽 그룹의 지원 사격도 준비 중이다. 특히 정책 연구소엔 안 전 후보의 자문단들이 대거 합류할 것으로 보여 향후 싱크탱크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안 전 후보의 핵심 측근은 “안 전 후보가 본격적으로 닻을 올리면 일제히 가세할 전국 네트워크를 세우고 있는 게 맞다. 신당 규모에 대해 많은 걱정을 하고 있지만 민주통합당의 이탈세력과 시민사회, 범야권 인사들, 기존의 안 전 후보 지지계층 등이 모이면 그 어떤 정당보다 힘이 셀 것”이라고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다만, 신당의 출범 시기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결론을 내리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4월과 10월 치러지는 재·보궐 선거, 5월 4일로 예정된 민주통합당 전당대회 등 다양한 변수들을 고려해 안 전 후보가 결단을 내릴 것으로만 추측될 뿐이다. 그러나 신당이 내년 6월 지방선거를 목표로 할 것이 유력한 만큼 10월 재보선이 끝나고 난 뒤인 11월 또는 12월경에 창당될 것이란 관측이 설득력 있게 나돌고 있다. 올해는 넘기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취재 과정에서 접한 안 전 후보의 상당수 측근들 역시 신당 창당 ‘디데이’를 올 연말로 잡고 있었다.
지난 대선에서 특유의 ‘타이밍 정치’를 선보였던 안 전 후보가 언제, 어떤 형태의 신당을 선보일지 새정부 출범과 맞물려 정가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신당 합류는 얼마나… “아무나 안 받는다” 민주당 이탈자들 선별 안 전 후보가 신당을 원활하게 출범시키기 위한 첫 번째 전제 조건은 바로 4월과 10월에 치러지는 재보선에서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입증하는 것이다. 안 전 후보가 이 두 번의 선거에서 지난해 대선 당시 기록했던 지지율만큼의 파워를 보여준다면 신당의 기세는 파죽지세가 될 가능성이 높다. 재보선이 안 전 후보의 ‘정치 재기’ 시험무대인 셈이다. 정치권 일각에선 “올해 치러지는 재보선에서 안 전 후보 측 인사들이 승리할 경우 민주통합당엔 아마 친노 직계만 남고, 나머지는 모두 신당으로 합류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지금까지 안 전 후보는 두 차례의 선거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다. 지난 2011년 서울시장 선거에서는 ‘아름다운 양보’를 하며 박원순 시장을 지지했고, 지난해 대선에선 문재인 후보와의 단일화 과정에서 중도 사퇴한 바 있다. 두 번 모두 안 전 후보가 ‘양보’했고, 그 결과는 1승 1패다. 이 결과만으로는 안 전 후보의 정치력을 평가하기엔 부족하다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정치권 인사들이 미래가 불확실한 신당에 합류하는 것을 망설이는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따라서 안 전 후보가 재보선에 직접 출마하지는 않겠지만 지원 사격만은 ‘화끈하게’ 나설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또한 민주통합당 전당대회(5월 4일)도 신당의 중대 변수로 꼽힌다. 친노와 비노 중 어느 세력이 승리하느냐에 따라 신당의 성격 및 탄생시기 등에 적잖은 영향을 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선 안 전 후보 측과 사이가 소원한 친노가 당권을 잡으면 신당은 급물살을 탈 수 있다. 안 전 후보가 친노를 제외한 나머지 야권 세력을 흡수할 수 있는 여지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반면, 비노가 당의 주류로 등장하면 신당 논의는 잠시 주춤해질 수도 있다. 비노가 안 전 후보를 향해 적극적인 ‘러브콜’을 보낼 것으로 점쳐지기 때문이다. 이 경우 안 전 후보 측은 일단 신당을 만든 뒤 민주통합당과의 연대 또는 통합을 모색하는 시나리오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정치권에서는 안 전 후보가 신당을 출범시킬 경우 민주통합당의 이탈 세력 규모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탈 범위에 따라 야권의 판도가 재편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정치권 일각에선 신당에 합류할 민주통합당 의원들의 구체적인 명단까지 나돌고 있지만 대부분 ‘카더라’에 불과하다는 게 민주통합당과 안 전 후보 측의 공통된 인식이다. 이번에 당권 도전에 나선 비노 주자 김한길 전 최고위원과 그를 지지한 의원들이 친노 주자에게 패하면 ‘안철수 신당’에 가세할 것이란 얘기도 나돌고 있다. 하지만 김 전 위원 측은 “허무맹랑한 얘기”라며 일축하고 있다. 이와는 별개로 안 전 후보 측이 신당을 창당하더라도 민주통합당 의원들을 무조건 다 받아들이지는 않겠다는 내부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져 관심이 쏠리고 있다. 선별적 수용론으로 기존 정당과의 차별화를 꾀하는 동시에 안철수 신당의 가치를 각인시키겠다는 복안으로 풀이된다. 이와 관련 안 전 후보의 핵심 측근은 “신당 규모도 중요하지만 새로운 정치를 하겠다는 안 전 후보의 뜻에 동조하는 사람만이 우리와 함께 할 수 있다. 그래야 국민들도 지지를 보내주실 것”이라면서 “지난 대선 과정에서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의원들을 비롯해 몇몇 인사들은 신당에 합류하기를 원해도 우리 쪽에서 거부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