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새롭게 둥지를 튼 윤빛가람이 재기의 각오를 다지고 있다.
불과 며칠 전, 김포공항에서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을 때만 해도 윤빛가람의 심경은 착잡하기 그지없었다. 비행기를 타야만 갈 수 있는 제주유나이티드로 트레이드된 상황이 반갑기도 하지만, 새로운 팀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현실이 부담으로 작용했다. 2010년 경남 FC에서 시작한 프로 인생이 2012년 성남 일화로 팀을 갈아탔고, 불과 1년 만에 다시 제주 유니폼을 입게 된다. ‘적응’이란 단어와 유난히 인연이 많은 그로선 자신이 가고 있는 길이 제대로 가는 길인지 의문이 들 정도였단다.
“어느 선수들보다 내가 낯가림이 심한 편이다. 그래서 새로운 팀에 들어가면 선수들과 친해지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성남에서 그런 부분 때문에 마음 고생을 많이 했는데, 제주에서 다시 또 적응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제주로 가는 발걸음이 경쾌하지만은 않았다. 그러나 막상 이곳에 와 보니까,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축구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이고, 클럽하우스와 훈련장 시설이 굉장히 좋다. 무엇보다 박경훈 감독님이 나를 신뢰하고 믿어주시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그동안 꼬였던 내 축구인생이 제 궤도를 걸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2011년 올림픽팀에서 뛸 때의 모습. 홍명보 감독의 지시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어떤 문제가 불거졌을 때 내가 좀 더 적극적으로 해명하고, 감독님과의 대화를 원했더라면 상황이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그런데 그 당시엔 자꾸 날 이상한 선수로 몰아가시는 부분이 서운했다. 내 마음의 짐들, 고민들로 인해 그라운드에서의 내 모습이 태업하는 양 비춰졌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라운드 안에선 ‘일부러’ 축구를 게을리한 적이 없었다. 단, 자꾸 자신감이 떨어지면서 위축되고, 공이 나한테 올까봐 두려워하는 마음이 앞섰던 게 오해의 시선으로 이어진 것 같다. 그때 심리치료라도 받았더라면 하는 후회가 된다. 혼자 모든 걸 떠안고 끙끙거리고 고민하며 잠 못 이뤘던 날들로 인해 고통스럽기만 했다.”
윤빛가람의 태업 논란은 지난해 한국에서 열린 피스컵대회, 함부르크와의 경기 후 신태용 전 감독의 입을 통해 처음 나왔다. 윤빛가람의 플레이에 실망한 신 전 감독은 윤빛가람이 태업성 플레이를 한 것 같다며 언론을 통해 비난을 가했다. 그 후 윤빛가람은 2군으로 내려갔고, 그토록 소원했던 런던올림픽 엔트리에서 제외되는 수모를 겪었다.
“내 인생이 평탄치 않은 것 같다. 뭔가를 해보려고 하면 일이 꼬이곤 한다. 태업 논란이 불거졌을 당시 슬기롭게 풀었어야 했다. 나 또한 감독님의 발언에 섭섭했고, 마음의 문을 닫았던 게 여러 가지 안 좋은 일을 가져다줬다. 그런데 태업보다 더 억울했던 건 ‘멘탈’ 운운했던 부분이었다.”
포털사이트에 윤빛가람을 검색하면 ‘태업’과 ‘멘탈’이 가장 먼저 연관 검색어로 뜬다. 그만큼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는 걸 반증한다. 윤빛가람의 멘탈에 문제가 있다는 얘기 또한 신 전 감독을 통해 흘러 나왔다. 신 전 감독은 최근 인터뷰에서도 제자의 멘탈을 거론하며 안타까운 반응을 나타냈다. 상황이 이렇게 흐르자, 신 전 감독의 바톤을 이어 받아 성남 일화 사령탑에 오른 안익수 감독도 윤빛가람에 대한 선입견을 가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윤빛가람은 새로운 감독 체제 하에서도 몸이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2군 전지훈련에 합류하게 된다.
“사연 많은 시즌이 끝나고 한 달여 간의 휴가가 주어졌다. 딱히 할 일도 없고, 올 시즌을 미리 준비하겠다는 마음에 탄천운동장에서 개인 훈련에 돌입했다. 나름 몸도 잘 만들고, 어느 정도 마음의 병을 떨쳤다고 생각했는데, 안익수 감독님이나 코치님들께선 내 몸 상태가 덜 만들어졌다고 판단하신 것 같다. 그래서 1군이 아닌 2군 전훈에 합류했다. 그러나 크게 실망하진 않았다. 워낙 오해를 많이 받은 터라 그 정도의 시선들에는 익숙했고, 극복할 자신도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제주로 트레이드가 단행된 것이다.”
윤빛가람은 차가운 영하의 날씨에 운동장에서 혼자 뛰고 달리며 몸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 외로웠다고 말한다. 체감온도보다 마음의 시리고 차가움이 더 크게 느껴졌다는 것. 그래도 꿋꿋하게 견뎌낸 이유는 자신을 변화시키고 싶은 간절함 때문이었다.
인터뷰를 하다가 윤빛가람이 ‘박주영’이란 이름을 꺼냈다.
“지난해 주영이 형 생각을 많이 했다. 그 형도 속내 드러내지 못하는 성격 탓에 오해와 비난의 시선들 속에서 생활하지 않았나. 실제 선수들 사이에서 주영이 형에 대한 평가는 굉장히 좋다. 후배들한테 친절하고 농담도 잘하고 잘 웃는 등 언론을 통해 드러난 형의 이미지와는 천양지차다. 나도 선수들과는 잘 지내지만, 이상하게 성남 시절 지도자분들과 또 언론과도 친해지지 못한 것 같다. 이 또한 바꾸려고 노력하는 부분이다.”
성남 시절 훈련 모습. 각종 오해로 마음고생이 심했다고.
“어쩌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해외진출설이 자주 나온 게 내 발목을 잡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또한 내 입에서 나온 얘기가 아니다. 기자분들이 쓰신 기사일 뿐이다. 해외진출 얘기가 계속 불거지니까 감독님들 보시기엔 내가 팀에서 마음이 떠난 것처럼 보이셨던 모양이다. 그 또한 오해들이었을 뿐인데…. 참으로 오해들이 많다(웃음).”
조광래 전 감독이 대표팀을 맡을 당시만 해도 윤빛가람은 ‘황태자’ 칭호를 받으며 승승장구했다. 조 감독이 이끈 경남 FC에서도, 또 대표팀에서도. 그러나 K리그에서의 거듭된 부침이 대표팀으로 이어졌고, 그는 약 10개월가량 태극마크를 달지 못했다. 그러다 지난해 9월, 우즈베키스탄과의 2014 브라질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3차전에 나설 대표팀 명단에 이름을 올린 그는 최강희 감독과 처음 호흡을 맞추게 된다.
“솔직히 내가 대표팀에 다시 합류하게 될 줄은 상상조차 못했다. 의외였다. 그 당시에도 2군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상황이 안 좋았기 때문에 내가 대표팀에 발탁된 데 대해 뒷말이 나올 정도였다. 경기 후반 10분을 남겨 놓고 교체 투입됐는데 마치 무인도에 혼자 고립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볼이 오면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인 것 같다. 감독님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경기력으로 나타내지 못했다. 많이 아쉽고 미련이 남는 시간들이다.”
이제 윤빛가람은 제주유나이티드 소속 선수다. 시련의 계절을 진하게 겪은 덕분에 새로운 팀에서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각오가 새로울 수밖에 없다. K리그 개막 일주일 전에 합류했기 때문에 이미 완성된 전력에서 그는 자신의 자리를 잡기 위해 기존의 선수들과 경쟁을 벌여야 한다. 그래서 그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기분”이라고 각오를 다진다.
“제주에서 잃어버린 한쪽 날개를 되찾고 싶다. 그 날개를 찾은 후 제대로 날아서 윤빛가람의 존재감을 보여주는 게 내 목표다. 그런 기회가 주어졌고, 이 기회를 놓지 않고 잘 살려가는 게 나한테 주어진 숙제라고 생각한다. 그래야 나한테 등을 돌린 팬들이 돌아오지 않겠나.”
제주와 계약 후에도 마음을 잡지 못했다는 윤빛가람. 힘들 때는 연예인들의 자살 소식이 남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는 말도 덧붙인다. 눈 뜰 때부터 눈을 감을 때까지 ‘축구를 그만두고 싶다’는 유혹에 빠지기도 했다는 그는 이제 모든 번민과 갈등을 내려놓고 그의 말 대로 훨훨 날 준비를 하고 있다. 제주와의 인연이 악연이 안 되는 것, 그 또한 윤빛가람의 몫이다.
제주=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