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의원총회에 참석한 우원식 수석부대표, 박기춘 원내대표,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 정부조직법 처리 지연과 관련 야당의 발목잡기 비판 여론이 거세다. 이종현 기자
당내에서는 강경파와 온건파 모두에서 지도부의 협상력 자체를 문제 삼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온건파는 ‘방송 장악 의도를 저지한다’는 민주당 논리가 크게 공감을 얻지 못하는 상황에서 대여 공격의 타깃을 잘못 설정했고, 이로 인해 스스로 발목잡기 프레임에 갇혀버렸다고 비판한다.
반면 강경파는 오히려 지도부가 초반부터 너무 쉽게 양보했다고 비난한다. 여기에 4월 재보선 출마를 통한 안철수 전 서울대 교수의 공격이 가시화하면서 민주당은 그나마 남은 존재감마저 잃을 위기에 처해있다. 여론 악화, 당내 반발, 안철수 변수라는 ‘트리플 딥’ 속에서 갑갑한 처지에 빠진 것이다.
정부조직법 처리 지연과 이에 따른 국정 공백에 대해 여론은 대통령과 여당, 야당 모두의 책임을 묻고 있다. 그러나 ‘누가 더 잘못하고 있느냐’는 면을 따지고 들어가면 야당에 대해 비우호적 여론이 더 높다는 것이 다수의 조사에서 나타나는 현실이다. <조선일보>가 지난 6일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여당이 일방적으로 야당을 압박하며 정부 조직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는 민주통합당의 주장에 대해 ‘공감한다’는 답변은 28.6%에 불과했다. 반면 ‘공감하지 않는다’는 답변은 절반을 넘는 51.8%에 달했다. 그 이전에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 결과도 비슷했다.
민주당이 정부의 방송 장악에 대한 우려를 들어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 인허가권 및 법령 제·개정권을 반드시 방송통신위원회에 존치시켜야 한다고 주장한 데 대해서도 당내 일각에서는 “민생과 무관한 문제를 꺼내든 자체가 패착”이라는 비판론이 일고 있다. 대선 패배 이후 달라진 야당, 대안 야당을 외쳐놓고는 국민의 피부에 와 닿지 않는 사안에 집착해 명분을 상실했다는 지적이다.
민주당은 정부조직 개편과 관련해 처음에는 외교통상부에서 통상 기능을 떼어내 산업통상자원부로 보내는 문제, 중소기업청을 중소기업부로 승격시키지 않는 문제 등을 강력히 비판했다. 그러나 협상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민주당은 초점을 방송 정책에 맞추고 나머지 문제들을 사실상 양보했다. 초기에는 방송 관련 정책을 모두 방송통신위원회에 존치시켜야 한다는 입장을 폈지만, 나중에는 인터넷TV(IPTV) 인·허가권은 미래창조과학부로 넘기기로 양보하고 SO 문제만 쟁점으로 남겼다.
그러고도 SO 인·허가권은 방통위에, 법령 제·개정권은 미래창조과학부에 두자는 새누리당과 법령 제·개정권도 방통위에 두자는 작은 차이에서 민주당은 여당의 양보를 얻어내지 못했다. 이어 박기춘 원내대표가 6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조직법 원안 처리를 위한 3대 조건을 제안하며 박근혜 대통령의 수용을 요구했다. 내용은 △공영방송 이사 추천시 방송통신위 재적위원 3분의 2의 찬성으로 의결 △언론청문회 실시 △MBC 김재철 사장 사퇴 등을 박 대통령이 받아들이면 SO 관련 업무까지 미래창조과학부로 이관하는 데 동의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거부당하며 민주당은 스타일만 구겼다.
끊임없이 양보하고도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오히려 발목잡기 프레임에 빠져버린 데 대해 당내에서는 비판 목소리가 높다. 민주언론시민연합 출신 비례대표 최민희 의원을 비롯한 강경파들은 방송의 공공성과 중립성 담보마저 양보하느냐고 비난했다. 반대로 비주류 쪽에서는 “밀봉 인사로 박 대통령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었는데 이런 불통의 문제와 유신시대를 상기시키는 태도를 지속적으로 공격하고 나갔어야 한다”며 “국민 보기에 중요하지도 않은 문제를 갖고 정부 출범 자체를 막은 것은 실책”이란 비판에 직면했다. 급기야 8일에는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마저 박 원내대표의 양보안을 새누리당 이한구 원내대표의 ‘정부조직법 여야 합의로 직권상정’ 제안을 싸잡아 비판하기에 이르렀다.
민주당을 더 다급하게 만드는 것은 ‘안풍(安風)’이 다시 불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안철수 전 서울대 교수는 11일 귀국, 본격적으로 4월 재보선 채비에 나섰다. 민주당이 박 대통령의 견제세력으로서 국민의 지지를 얻고 있는 상태라면 걱정할 게 없지만, 전당대회를 둘러싼 주류·비주류 간 권력 암투 속에 쇄신의 성공이 멀어져가는 상황에서는 마음이 조급해질 수밖에 없다. 강한 야당으로 존재감을 찾으려 한다면 안 전 교수가 ‘협력할 것은 협력한다’는 대안 야당의 위치를 파고들 게 분명하다.
이미 안 전 교수 측 송호창 무소속 의원은 지난 5일 “안 전 교수와 우리는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과 국회에 대한 태도에 우려를 가지고 있다. 거대 여권에 대한 야권의 견제도 반드시 필요하다”면서 “귀국과 동시에 안 전 교수는 국민들이 열망하는 새로운 정치를 다시 시작하기 위해 서울 노원병 보궐선거에 출마하기로 밝힌 바 있다”고 말했다. 새로운 정치의 의미는 “새로운 비전과 대안으로 경쟁하고 국민에게 선택받아 신뢰받는 정치세력을 만드는 것”이라고도 했다.
박 대통령을 견제할 세력은 민주당이 아닌 안철수라고 선언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반 박근혜, 비 민주당’ 노선을 천명한 것이다.
안 전 교수 측은 민주당과의 연대에도 일단 부정적 견해를 밝히고 있다. 송 의원은 “지금까지 야권은 대안과 비전이 아닌 반여 후보 단일화에 모든 것을 건, 반대의 연합을 통해 유권자의 선택을 요구했다”며 “이러한 방식으로는 더 이상 새로운 정치도, 거대 여당을 뛰어넘는 대안세력의 성장도 가능하지 않다”고 단언했다.
안철수 캠프 정치혁신포럼에서 활동했던 정연정 배재대 교수도 6일 “야권은 이제까지 기계적 단일화에 많이 매몰돼 있었다”며 “그런 단일화를 다시 거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결국 한편으로는 박 대통령과, 다른 한편으로는 안 전 교수 측과 경쟁해서 살아남아야 하는 민주당으로선 부활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는 데 고민이 있다.
문신일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