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정부조직법 개정안과 관련해 대국민담화를 발표했다. 이에 대해 여야가 협상 중인 사안을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풀려고 한다면 여당은 존재감을 잃게 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인수위사진기자단
“5년 전 이명박(MB) 정부 출범 때 정부조직 개편 논란과 지금을 비교해 보라. 5년 전엔 여야가 싸움박질할 만한 이유가 충분했다. 야당이 중요하게 여기는 통일부, 여성부를 MB가 다 없애버린다고 하니 싸움을 피할 수 있었겠나. 하지만 이번엔 뭔가. 뭐 그리 대단한 입장차가 있다고 이렇게 싸움이 커졌나. 야당 지도부가 대책 없는 강성 지도부인가?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처럼 합리적인 야당 지도자 만나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도 왜 이렇게 싸움이 커지기만 하나. 이유는 분명하다. 우리가 전략도 정치력도 없기 때문이다.”
이 의원의 주장을 ‘박근혜 시대’에 소외된 비주류 인사의 질투 어린 세평 정도로 치부하기는 어렵다. 야당 인사들뿐 아니라 중립적인 정치학자, 정치 전문가들 중 상당수가 이와 비슷한 진단을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조직 개편 논란 와중에 박 대통령의 정무라인이 얼마나 취약한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3월 4일 박 대통령의 대국민담화는 새누리당 의원들에게도 적잖은 충격을 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정부조직 개편안 처리 지연을 비판하는 박 대통령이 상상 이상으로 격앙된 모습을 보여준 탓도 있지만, 그보다는 이 담화를 통해 박 대통령이 미래창조과학부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지가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새누리당 친박계의 한 초선의원은 “대국민담화 내용을 요약하면 ‘다른 건 몰라도 미래창조과학부만큼은 양보할 수 없다. 미래창조과학부야말로 박근혜 정부의 요체’라는 것”이라며 “담화를 지켜보면서 ‘왜 우리 당 원내 지도부가 대통령이 저렇게도 애지중지하는 미래창조과학부 하나 지키지 못했을까’ 하는 의문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미래창조과학부를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면 야당과의 협상 때 다른 것을 양보하고라도 미래창조과학부는 반드시 ‘원안 사수’를 관철했어야 했다는 얘기였다. 이 의원의 의문은 계속 이어졌다. “대국민담화 발표 이전에 당내에서 ‘야당에 너무 많이 양보했다’는 얘기가 나왔다. 심지어 협상이 깨지자 ‘차라리 잘 됐다’는 반응이 나올 정도였다. 그렇게 많이 양보를 해줬는데도 미래창조과학부를 못 지켰다는 건 뭔가. 협상을 잘못했다는 것 아닌가?”
얼핏 보면 이 의원의 말은 원내 지도부의 협상력 부재를 질타하는 것 같지만 방점은 다른 쪽에 찍혀 있었다. 애초부터 청와대가 정부조직 개편안 협상과 관련해 여당에 정확한 지침을 주지 않은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당청 간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는 바람에 서로 사인이 맞지 않았고, 그 결과 당은 당대로 협상하느라 고생하고 청와대는 청와대대로 협상 결과에 불만을 갖게 된 것 아니냐는 얘기다.
한 청와대 실무자는 같은 맥락에서 “협상 과정에서 ‘외나무다리’를 잘못 설치했다”고 설명했다. 이 실무자는 “미래창조과학부를 꼭 원안대로 지켜야 한다면 협상 과정에서 다른 사안이 최종 쟁점으로 남도록 몰아갔어야 했는데, 결과적으로 이번 협상은 미래창조과학부가 외나무다리가 된 셈”이라며 “외나무다리에서 떨어지는 쪽은 죽는 건데, 하필 대통령이 가장 애지중지하는 미래창조과학부를 놓고 죽느냐 사느냐의 싸움을 벌이게 된 것”이라고 꼬집었다.
결국 여권이 이렇다 할 전략 없이 정부조직 개편안 협상에 나섰던 게 여야 충돌의 원인이 됐다는 진단이다. 이와 관련해 박 대통령 주변 참모들을 탓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대통령 주변에 정국을 주도할 만한 ‘전략가’가 없다는 것이다.
청와대와 당에서 풍부한 경험을 쌓은 한 새누리당 관계자는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정무적인 면에서 뒷받침해 줘야 할 사람은 비서실장과 정무수석, 홍보수석, 대변인 정도인데 박 대통령이 짜놓은 라인업을 보면 이런 자리에 기용된 사람 중 정무통, 전략가라고 부를 만한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허태열 비서실장은 말 그대로 ‘관리형’이고 이정현 정무수석은 전략가형 참모라기보다는 충성심 강한 ‘돌쇠형 참모’에 가깝다”며 “이남기 홍보수석과 윤창중·김행 대변인 등은 모두 ‘초보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대통령이 대국민담화라는 형식을 통해 국민들 앞에서 야당을 격하게 비판한 것 역시 청와대의 전략 부재를 보여주는 증거라는 비난을 사고 있다.
이철희 두문정치연구소장은 “원래 정쟁은 여당과 야당이 하고 대통령은 제삼자의 입장에서 양측 모두를 아우르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며 “박 대통령은 대국민담화를 통해 자신이 야당과 충돌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말았다”고 꼬집었다. 또 다른 정치평론가도 “국가를 대표하는 대통령이 정쟁의 한가운데로 뛰어들어 야당과 ‘맞짱 뜨는’ 격”이라며 “대통령이 나서면 여당이 존재감을 잃고, 이는 정치 실종을 낳고, 정치 실종은 결국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발목 잡는 요인이 되는 악순환을 피할 수 없게 된다”고 지적했다.
민주통합당 지도부의 한 인사도 “야당이 ‘여당은 필요 없고 대통령이 나와라’고 하며 담판을 요구하면 대통령은 ‘정치는 여야가 하는 것이니, 여당과 얘기하라’고 말하는 게 일반적인 모습이었다”라며 “이번엔 대통령이 야당을 향해 ‘영수회담 하자’고 매달리고 야당 지도부가 ‘대통령은 빠지고, 여당에게 재량권을 달라’고 거절하는 이상한 모양새가 연출되고 있다”고 말했다. “국회를 믿고 국회에 맡겨 달라. 그게 대통령을 위해서도 좋다”는 문희상 위원장의 말이 빈말이 아니라는 얘기다.
일각에선 박 대통령이 일반적인 정치인들과는 전혀 다른 스타일임을 감안하면 이 같은 정무라인의 취약은 두고두고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박 대통령은 정치 공학적 계산보다는 원칙과 신뢰를, 적극적인 소통보다는 철통보안을 중시하는 스타일이다. 이 때문에 지속적으로 불통 논란이 제기돼왔다.
새누리당에서 ‘탈박(원래 친박이었으나 소외되면서 이탈한 세력)’으로 분류되는 한 중진급 전직 의원은 “소통에 약한 대통령의 약점을 보완해 줄 수 있는 참모가 눈에 띄지 않는다”며 “이런 체제라면 앞으로도 불통으로 인한 잡음에 끊임없이 시달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공헌 언론인
청와대 비서관 인선 난맥상 넣었다 뺐다…대체 원칙이 뭐요? 지난 3월 8일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이 오전 수석비서관 회의 결과 브리핑 말미에 이같이 말하자 춘추관(기자실)에서는 혀를 차는 소리가 이어졌다. “취임 며칠 만이냐”는 질문과 함께 “이제 각종 ‘썰(설, 說) 기사’는 안 써도 되겠네”라는 자조 섞인 농담도 오갔다. 반응은 다양했지만 새 정부 출범 2주일이 다 가도록 ‘친박과 신박(새롭게 등장한 친박) 권력 암투설’, ‘친박 내부 권력 암투설’ 등 끊임없는 음모론과 의혹을 낳았던 청와대 인선 논란이 이제야 종지부를 찍게 됐다는 안도의 기운이 느껴졌다. 사실 박근혜 대통령 당선 이후 이때까지 청와대 비서관 인선 과정은 끊임없이 많은 비판이 제기됐던 사안이다. 그럼에도 청와대에서 이처럼 방어를 못한 사안은 없었다. 내각 인선 당시에도 부적격자 논란, ‘성시경(성균관대·고시·경기고), 위성미(위스콘신대·성균관대·국가미래연구원)’ 등 인사 편중 논란 등이 제기된 바 있다. 일부 인사가 낙마하는 와중에도 박 대통령 측은 야당과 언론의 인사 검증에 대해 ‘신상털기, 인격 말살’ 등 거친 단어를 동원해가며 반박했다. 하지만 청와대 비서관 인선에 대해 끊임없이 비판과 의혹이 제기될 때 청와대에서 내놓은 반응은 “최종 인선이 이뤄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내정자를 교체한 걸 왜 시비 삼느냐”는 정도였다. 소극적 방어에 머물렀던 것이다. 이는 제대로 반박하기 어려울 만큼 비서관 인선이 난맥상을 보였다는 의미로도 읽힌다. 실제로 ‘밀봉 인사’라는 비판 속에도 박 대통령이 견지했던 철통 보안, 조용한 인사 원칙은 청와대 비서관 인선 과정에서 무색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40명(국가안보실 3명 포함)에 불과한 청와대 비서관 인선 과정에서 가장 많은 잡음과 의혹이 제기된 자리는 민정비서관이었다. 논란의 시작은 이중희 인천지검 부장검사가 민정비서관에 내정됐다가 취소됐다는 소문이 돌면서부터였다. 내정이 취소된 이유가 ‘현역 검사 청와대 파견 금지’라는 박 대통령의 대선공약 때문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오자 일각에서 “그게 이유가 될 수 있느냐”며 이른바 권력 암투설이 제기됐다. 대선 때부터 박 대통령을 도운 인사가 당초 민정비서관으로 유력했는데 ‘신박’으로 분류되는 곽상도 민정수석이 이중희 검사를 강력 추천하는 바람에 민정비서관이 뒤바뀌게 됐고, 이에 화가 난 친박이 대선공약을 이유 삼아 이중희 검사를 밀어냈다는 내용이었다. 내정됐다 취소된 것으로 알려졌던 이중희 검사가 결국 민정비서관에 내정돼 청와대로 출근하고 있지만, 권력 암투설에 대해선 어느 누구도 가타부타 해명하지 않았다. 미스터리로 남게 된 것이다. 더욱이 결과적으로 박 대통령이 자신의 약속을 저버리고 현역 검사를 민정비서관에 기용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민정비서관만이 아니다. 홍보기획비서관에는 당초 이종원 전 <조선일보> 부국장이 내정돼 출근까지 했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 전 부국장은 돌연 자취를 감춰버렸다. 청와대 인사들도 “이 전 부국장 내정이 취소됐다”는 말만 전할 뿐 그 이유에 대해선 누구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해, 이 역시 음모론을 낳고 있다. 보건복지비서관과 사회안전비서관은 이른바 ‘블록 맞추기’ 논란이 제기된 자리다. 당초 보건복지비서관에는 김원종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이 내정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김 정책관은 뚜렷한 이유 없이 선임행정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대신 대선 당시 박 대통령을 도왔던 장옥주 전 한국노인인력개발원장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친박 챙기기’라는 분석과 함께 뒤늦은 ‘여성 챙기기’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사회안전비서관은 당초 김귀찬 치안감이 내정돼 출근까지 했다가 강신명 경북경찰청장으로 바뀐 것으로 알려졌다. 김 치안감이 성균관대 법학과 출신이어서 ‘성시경 논란’의 유탄을 맞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청와대 비서진 인선과 관련해 연령과 과거 경력 면에서 전반적인 ‘인플레’ 경향이 나타나는 가운데 일부는 이와 무관하게 비서관으로 기용돼 논란이 일고 있기도 하다. 박 대통령이 국회의원 시절 보좌진으로 일해 이른바 ‘문고리 권력’으로 불리는 이재만 전 보좌관은 총무비서관, 정호성 전 비서관은 제1부속비서관, 안봉근 전 비서관은 제2부속비서관에 기용됐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 관계자는 “국장급 당직자도 행정관에 기용되는 마당에 나이도 많지 않은 의원실 비서관 출신까지 청와대 비서관을 달아줬다는 것은 형평에 어긋나는 인선”이라고 지적했다. 박공헌 언론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