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이 격앙된 모습으로 담화문을 발표해 지켜보던 관계자들마저 긴장시켰다. 최준필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생식기 발언’을 해 파문을 일으켰던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그는 대선 과정에서 적나라한 표현으로 큰 논란을 일으킨 뒤 사실상의 ‘묵언시위’에 들어갔다. 그런 그가 <일요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다시 현실세계로 돌아왔다.
그는 “개인적으로 박 대통령에 대해 호불호가 없다는 점을 확실히 해두고 싶다. 그 분이 대통령이 되길 바라진 않았지만, 당선 후에는 대통령으로서 잘해주길 바라는 마음도 컸다. 때문에 대중이 그 분의 행동에 선입견을 갖지 않도록 지난 몇 개월간 박 대통령의 심리, 행동 등에 대해 코멘트를 하지 않았다”며 그간의 ‘절언’ 이유를 털어놓으며 문제점을 지적해나갔다.
먼저 황 교수는 박근혜 대통령의 ‘앵그리 담화문 발표’를 통해 현재 그의 심리상태를 분석했다. 그는 이에 대해 “‘너희들은 다 나의 신민이다, 내가 보살펴주고 잘해줄 건데 왜 말을 안 듣느냐’는 심리가 깔려 있다. ‘내 원칙은 국민을 위해서 하는 것’이라고 ‘포장’하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담화에서 가장 많이 나온 표현이 바로 ‘국민을 위해서’다. 그런데 국민이 미래창조과학부를 만들어 달라고 요청을 했었나. 그 분이 언급한 국민은 누구를 말하는 걸까. 이런 공감 부분에 대해선 물음표다. ‘안보위기’, ‘북의 연이은 도발’이란 서문을 보자. 일종의 안보 협박이다. 훗날 까딱하면 양치기 소년이 돼버릴 수 있어 염려스럽다.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라는 부분도 마찬가지다. 높은 자리에 있는 전형적인 정치인이 하는 상투적인 표현으로 느껴졌다. ICT 산업을 강조하는 것도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때 사고다. 이제 대한민국은 특정산업을 육성해서 그걸로 먹여 살리는 시대는 지났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문광부 지원 하에서 나온 게 아닌 것처럼…”이라고 말했다.
황 교수는 인터뷰 내내 박 대통령을 ‘그 분’, ‘여왕 폐하’, ‘공주님’, ‘박 대통령’ 등 다양한 지칭어를 사용해 표현했다. 그러면서 황 교수는 박 대통령이 그동안 감추고 자제해온 자신의 사적인 감정을 이제는 한국의 최고 지도자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것으로 해석했다. 그는 이에 대해 “박 대통령이 그동안 원하는 게 이뤄지지 않았을 때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생각해보자. 박 대통령은 권위나 위계 관계에서 자신보다 더 높은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대부분 인정하고 수용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이를테면 MB 정부 때 미디어법, 4대강 이슈 등과 관련해서도 자신보다 서열이 높은 대통령의 의견을 대체로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제는 본인이 대통령이 됐기 때문에 ‘모든 이는 내 말에 따라야 하고 내가 옳다’는 심리 상태로 자연스럽게 간 것이다. 그래서 그런 격한 감정 상태가 여과되지 않고 그대로 국민들에게 쏟아내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황 교수는 야당인 민주통합당에 대해서도 “박 대통령은 ‘그동안 나도 최고지도자를 존중했으니 너희도 그렇게 해야 한다’는 심리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아닌지”라고 지적했다. 그는 “박 대통령의 입장에서 볼 때 요즘 민주통합당은 아주 ‘망나니’ 같은 짓을 하는 거나 마찬가지일 거다. 덕분에 이번 담화를 보고 그 분에게 ‘민주사회’는 심리적으로 무엇을 의미할지, 의문도 들었다”고 말했다.
특히 황 교수는 박 대통령의 담화문 발표가 국민들이 애써 외면해온 부정적 이미지의 박근혜 대통령을 떠올리게 하는 좋지 않은 효과도 있었다고 지적한다. 그는 “박 대통령은 이번 담화문 발표만은 하지 않았어야 했다. 이번 담화를 보고 고 박정희 대통령 시절 이뤄졌던 비상시국, 계엄선언이나 그와 관련한 수차례의 담화를 연상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아졌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했다.
황 교수의 이런 분석에 대해 다른 전문가들도 비슷한 견해를 보이고 있다. 노해정 인문학 연구가는 이에 대해 “아버지가 경제발전을 이룬 대통령이라는 측면을 주목해보면 답이 나온다. 자신도 아버지처럼 세계금융위기에 빠진 조국에게 또 다른 한강의 기적을 선사하고 싶은 강박증이 상당히 강할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심리적으로 무언가를 신속하게 성취해 내고자하는 욕구가 강한 상태다. 그런데 실제로는 어떠한가. 인선과정 등에서 잡음이 끊이지 않고 심지어는 회심의 카드였던 김종훈 씨마저 사퇴했다. 그 분노가 심각할 수밖에 없다. 잘하고자는 의욕에 비해서 현실은 다르니까 그것에 대한 분노가 굉장할 거다”라고 말했다.
한편 정신과 전문의 A 씨는 이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의 아버지는 군인이다. 군인의 딸들은 기본적으로 룰을 잘 지켜야 한다는 것을 배우고 자랐다. 그런데 자신이 믿고 의지해왔던 그 룰들이 타인에 의해 흔들릴 때 굉장한 분노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더욱이 현재 자신의 위치가 군인으로 치면 서열 1위 아닌가. 서열상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내 의지가 제대로 관철되지 않는 이 상황이 심리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첩첩산중이다. 분노가 겹겹이 쌓여 언제 터질지 모르겠다”라고 분석했다.
또한 정신과 전문의 B 씨는 “박 대통령은 권력욕이 없는 사람이다. 유년시절 권력을 누리고 자랐다. 원래 부자였던 사람은 다른 사람의 벤츠를 부러워하지 않듯이 박 대통령 또한 그렇다. 다만 잃어버렸던 고향집(청와대)과 비명횡사하신 아버지(대통령)를 되찾고자 하는 욕구는 강할 수밖에 없다. 즉 대통령이 된 현재의 자신은 박근혜이기보다는 아버지 박정희일 가능성이 적지 않다. 자신이 되찾고 싶었던 아버지가 드디어 ‘부활’하셨는데 야당이 말을 듣지 않으니 얼마나 괴로울까. 그것에 대한 실망감이 이번 담화에서 드러난 것 같다”라고 분석했다.
김포그니 기자 patronus@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