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운영 스타일이 MB 정부 때와 정반대의 모습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공동취재단
다소 우스갯소리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이 같은 평가를 전혀 근거 없는 것으로 치부하긴 어렵다. 사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박 대통령은 이전의 여당 대선후보들과 달리 전임 대통령과의 차별화를 시도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지난 1987년 민주화 이후 대통령이 퇴임 때까지 여당에서 탈당하지 않은 사례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유일하다. 하지만 대선 이후에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박 대통령이 마치 이 전 대통령의 흔적을 모두 지워버리려는 듯 MB 정부 때와 정반대로 움직이는 사례는 너무도 많다.
최근 들어 ABMB라는 말이 나온 것은 박 대통령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정부 및 청와대 조직 개편안을 마련했을 때부터다. 박 대통령은 MB 정부의 15부 체제를 17부 체제로 바꿨는데, 미래창조과학부와 해양수산부 신설로 2개 부처를 늘린 것이다. 이는 이 전 대통령이 정부조직 개편을 통해 없애버렸던 정보통신부, 해양수산부를 다시 부활시키는 의미를 갖는다.
또 박 대통령은 청와대 조직과 관련해서도 대통령실을 대통령 비서실로 바꿨다. 이 역시 MB 정부 이전 노무현 정부 청와대와 비슷해진 것이다. 박 대통령은 특히 수석비서관과 비서관 사이에 기획관을 두는 등 이 전 대통령 시절 방대해졌던 청와대 조직을 대폭 축소한 데 이어 청와대의 기능도 철저히 대통령을 보좌하는 데 초점을 맞추도록 했다.
이 같은 박 대통령의 ABMB 경향은 주요 인사 과정에서도 다시 한 번 확인됐다. 박 대통령의 ABMB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고려대 출신의 숫자다. 국무총리와 장·차관, 처장, 외청장 등 60명에 육박하는 정부 주요 인선 결과가 발표됐지만 이 중 고려대 출신은 류길재 통일부 장관이 유일하다. 부처 차관과 차관급 처장, 외청장 등에선 고려대 출신이 단 한 명도 포함되지 않았다.
청와대의 경우도 고려대 출신은 37명의 비서관 중 5명(김선동 정무, 이중희 민정, 윤창중 대변인, 최수규 중소기업,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을 차지했지만 이보다 급이 높은 3실장(비서실장, 국가안보실장, 경호실장)과 9수석비서관 중에는 단 한 명도 포함되지 못했다. 이명박 정부 첫 인사 당시 장관 및 청와대 수석에만 6명의 고려대 출신이 포진했다. 당시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내각’이라는 비판까지 나왔던 점을 감안하면 고려대 출신은 박근혜 정부에선 그야말로 ‘아! 옛날이여’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박 대통령은 지난 3월 11일 새 정부 들어 처음으로 국무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 “각 부처 산하기관과 공공기관에 대해 앞으로 인사가 많을 텐데, 새 정부의 국정철학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임명할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각 부처 장관들에게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산하기관 인사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셈이다.
이는 인수위 단계에서 “낙하산은 없다”, “논공행상도 없다”던 박 대통령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방심하고 있었던 ‘MB의 사람들’에겐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다. ‘정권연장’에 성공한 상황에서 당시 박 대통령의 발언은 ‘임기가 남은 기관장들을 인위적으로 교체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읽힌 까닭에서다. 각 부처 산하기관 및 공공기관에서 대통령이 인사권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는 140곳 정도다.
김행 청와대 대변인은 “박근혜 정부의 인사 원칙은 내부 신망과 전문성이 우선이고 낙하산 인사는 없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이미 외청장 인사에서 법적으로 임기가 1년도 더 남은 김기용 전 경찰청장을 이성한 전 부산지방경찰청장으로 교체했다. 박 대통령이 대선 기간에 “경찰청장 임기를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던 터라 충격은 더 컸다.
정책부문 역시 ABMB의 예외지대가 아니다. 박 대통령은 각 부처에 예산 낭비 사례가 없도록 일제 점검을 지시하면서 4대강 사업을 입에 올렸다. 4대강 사업은 MB 정부 5년의 핵심 사업이자 가장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아킬레스건과도 같은 사안이다.
이밖에 박 대통령의 개인적인 스타일과 캐릭터에서도 ABMB 경향이 짙게 묻어난다는 평가도 나온다. 우선 여론 동향에 민감하게 반응했던 이 전 대통령과 달리 박 대통령은 원칙과 소신을 지키기를 고집하는 쪽이다. 취임도 하기 전부터 ‘불통 스타일’이라는 비판이 무수히 쏟아졌지만 박 대통령은 좀처럼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고 있다.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둘러싸고 야당과 대치하는 와중에 이만섭 전 국회의장까지 나서서 “대통령이 양보하시라”고 권유했지만 박 대통령의 답변은 “이것만큼은 양보할 수 없다”였다.
언론과의 관계에서도 ‘프레스 프렌들리’를 내세우고 언론을 통한 사전 검증 과정 등을 중시했던 이 전 대통령과 달리 박 대통령은 그야말로 ‘철통 보안’을 강조했다. 인사 과정에서 언론에 등장했던 사람은 쓰지 않는다는 게 정설로 여겨질 정도였다. 이 때문에 청와대 출입기자들 사이에선 “마음에 드는 사람은 비판하는 기사를 쓰고, 반대로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은 칭찬하는 기사를 써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오갈 정도다.
MB 정부 첫 해였던 지난 2008년 11월에도 ABMB라는 용어가 언론지상에 등장했던 적이 있었다. 당시 한나라당 차명진 대변인이 이 전 대통령의 정책에 사사건건 제동을 걸고, 심지어 청와대 회동까지 거부한 민주당을 비판하면서 ABMB라는 용어를 동원했다. ‘MB에 대한 야당의 막무가내식 반대’를 의미했던 ABMB가 불과 5년 만에 여권 내부의 차별화를 지칭하는 용어가 된 셈이다.
박공헌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