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케미칼이 출범 이후 업황 악화를 보여 신동빈 회장의 글로벌 기업 청사진에 적신호가 켜지고 있다. 임준선 기자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지난 2009년 경영 전면에 나서면서 선포한 비전이었다. 하지만 유통과 함께 이 같은 비전 실현의 큰 축인 석유화학 사업이 극심한 침체기를 겪으면서 신 회장의 원대한 청사진에도 적신호가 켜지고 있다.
사실 롯데그룹은 국내 주요 재벌 가운데 최근 몇 년간 가장 큰 성장을 거둔 곳 중 하나다. 지난 2006년 롯데쇼핑 IPO(기업공개)를 통해 확보한 풍부한 현금 유동성을 바탕으로 공격적인 인수·합병(M&A)을 통해 그룹 덩치를 급격히 키워왔기 때문이다.
유통 중심의 보수적 내수 기업으로 인식되며 큰 주목을 끌기보다는 내실을 다지는 데 주력했던 롯데가 회사의 이미지를 바꾸게 된 결정적 터닝 포인트는 신동빈 회장의 등장이었다. 롯데가 ‘내수 중심 기업’에서 ‘글로벌 기업’으로 변신하겠다는 과감한 출사표를 던질 수 있었던 것은 노무라증권 런던지사 등에서 근무하면서 글로벌 실전 감각을 다져 온 신 회장의 결단 때문이었다는 게 롯데 측 설명이다.
신 회장이 지난 2011년 그룹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롯데의 글로벌 그룹 도약 행보는 더욱 가속화됐다. 국내보다는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인수합병에도 계속 박차를 가했다. 신 회장은 유럽발 재정 위기가 확산된 지난해 ‘비상 경영’을 선포한 와중에서도 10월 1조 2500억 원을 들여 하이마트를 인수해 가전양판점 사업 진출에 성공하는가 하면 12월엔 호남석유화학과 케이피케미칼을 합병해 ‘롯데케미칼’을 공식 출범시키기도 했다. 그동안 롯데그룹에서 석유화학 사업은 유통과 더불어 훌륭한 ‘캐시카우(현금창출원)’ 역할을 해 왔음에도 수십 년간 ‘롯데’라는 브랜드는 허락되지 않았다.
케미칼 공장 모습.
그러나 이 같은 신 회장의 기대와는 달리 롯데케미칼이 극심한 업황 악화 등의 난국을 맞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연결 기준, 롯데케미칼은 지난해 매출 15조 9028억 원, 영업이익 3717억 원, 순이익 3161억 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매출은 1.3% 늘어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지만, 영업이익은 74.6%, 순이익은 72.0% 급감했다. 2011년 영업이익 1조 4689억 원으로, 그룹 내 최대인 롯데쇼핑(1조 6948억 원)에 버금가는 실적을 올린 사실을 감안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질 정도다.
석유화학 산업이 경기변동에 민감한 업종이라 하더라도, 이 같은 실적은 실망스러운 수준이라는 업계의 분석이다. 게다가 지난 2010년 거액(1조 5200억 원)을 들여 야심차게 인수한 말레이시아 자회사 타이탄케미칼(현 롯데케미칼타이탄)이 인수 1년 만에 적자(-260억 원)로 돌아서면서 신 회장의 어깨를 무겁게 하고 있다.
이런 부진을 떨쳐 내고 ‘2018년 매출 40조 원’ 비전 달성을 위해 신 회장이 다시 꺼내 든 카드는 합작사 설립을 통한 사업 다각화다. 롯데케미칼은 지난 13일 롯데케미칼타이탄, 일본 우베흥산 및 미츠비시상사와 함께 말레이시아 조호바루에 폴리부타디엔 고무(BR)공장을 신설하고 합성고무 분야 신사업에 진출한다고 발표했다. 사업다각화를 통해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업계 관계자는 “업황 회복에 적어도 몇 년은 더 걸릴 것으로 예상 된다”며 “단기적으로 롯데가 수직 계열화를 통해 원가경쟁력은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빠르게 레드오션화 돼 가고 있는 이 시장에서 확실한 수요 예측과 탄탄한 기술력에 기반하지 못한 섣부른 사업 다각화는 추후 더 큰 화를 부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연호 기자 dew9012@ilyo.co.kr
새 정부 눈치보기
롯데가 지난해부터 의욕적으로 추진 중인 드러그스토어 사업 진출이 계속 지연되고 있다. 이에 업계에선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롯데그룹 측은 “애초 사업을 검토하고 있다는 것 외에 시기나 방법 등 사업과 관련한 어떤 것도 우리 측에서 공식 발표한 것은 없다”며 “사업 진출을 계속 검토하고 있으며 안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롯데는 현재 롯데경제연구소 출신 인사가 주축이 돼 서울 행당동 롯데슈퍼 본사 건물에서 사업 진출과 관련한 스터디를 진행 중이다. 일각에서는 롯데가 롯데슈퍼 산하에 태스크포스팀(TFT)을 꾸려 사업을 준비한다는 말도 나오고 있지만 롯데그룹 관계자는 “롯데슈퍼 건물에서 연구를 진행하고 있을 뿐 이 팀은 롯데슈퍼가 아닌 다른 계열사에 소속돼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드러그스토어 매장은 주로 골목이 아닌 대로변에 위치하고 품목도 골목 상인들이 취급하는 것들과는 많이 다르다”며 골목 상권 침해 논란을 일축했다.
하지만 재계 일각에서는 롯데의 사업 진출 지연을 새 정부 출범으로 인한 ‘경제민주화’ 이슈 부각과 연결시키려는 시각도 제기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최근 국세청이 전 정권 최대 수혜 기업 중 하나로 손꼽히는 롯데그룹의 롯데호텔에 대해 고강도 세무조사에 들어간 상황에서 롯데가 골목상권 침해 논란이 일고 있는 드러그스토어 사업 진출을 쉽사리 결정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평했다.
한편 롯데는 드러그스토어 시장 진출 방법으로 독자적 시장 개척 외에도 인수·합병(M&A)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롯데가 드러그스토어 브랜드 론칭을 앞두고 기존 드러그스토어 영업망 흡수를 통한 공격적인 매장 확대 계획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GS왓슨스’와 코오롱의 ‘W스토어’가 유력한 M&A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롯데그룹 관계자는 “상식적으로 M&A를 통한 시장 진출이 쉽긴 할 것”이라며 “일단 시장 분위기를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연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