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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그룹으로부터 2백억원의 비자금을 받은 혐 의로 구속수감된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 임준 선 기자 | ||
그러나 권 전 고문측은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과 김영완씨의 ‘배달사고’라며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는 상태. 마찬가지로 박지원 전 실장측 역시 이익치-김영완이 공모한 ‘배달사고’일 수 있다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권 전 고문의 혐의는 일차적으로 고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과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의 진술에 따른 것. 이 전 회장은 2000년 총선 한 달여 전 권 전 고문의 ‘요청’으로 비자금 2백억원을 조성한 뒤 김영완씨를 통해 전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김씨에게로 간 2백억원이 권 전 고문에게 전달된 구체적인 경로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핵심 인물인 김씨가 지난 2월 출국한 뒤 국내로 돌아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자칭 ‘정치자금의 정거장’임을 자처해왔던 권 전 고문의 구속을 몰고 온 이번 사건의 의혹을 둘러싼 의문점을 짚어봤다.
▶미반환금 30억원 누구 돈?
권노갑 전 고문은 자신의 혐의를 강력 부인하는 한편 총선 당시 김영완씨의 돈 10억원을 포함해 지인으로부터 모두 1백10억원의 자금을 빌려, 민주당에 지원했다고 진술했다. 또 35억원에 달하는 자금을 주선, 당 후원회에 입금토록 했다고 진술했다. 권 전 고문은 빌린 1백10억원 가운데 80억원은 이미 당에서 갚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총선 때 사무총장을 지낸 김옥두 의원은 이에 대해 “정상적으로 조달된 당의 자금이므로 일부를 당에서 변제해줬다”며 권씨측의 ‘80억원 반환’ 주장을 뒷받침했다.
그러나 김 의원의 해명은 총선이 끝나고 3년여가 지난 현재까지 반환되지 않은 30억원의 전주(錢主)가 누구냐에 대한 의구심을 낳았다.
이훈평 의원의 해명에 따르면 반환되지 않은 30억원 가운데 10억원의 주인은 김영완씨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나머지 20억원의 전주가 누구냐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만약 이 돈이 정상적인 차입금이라면 당연히 당에서 갚아야 할 채무. 하지만 민주당은 이 돈을 아직 변제하지 않고 있다. 이상수 총장도 ‘빚’ 30억원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고 밝혔다.
3년째 30억원이란 돈이 묶여 있음에도 채권자와 채무자 모두 ‘무관심’ 상태인 것. 거꾸로 보면 이 자금은 당이 크게 부담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성격의 돈인 셈이다. 이 때문에 권 전 고문이 조달했다는 자금의 출처는 또 다른 의문으로 남아 있다.
▶그 돈이 그 돈?
박지원 전 실장과 권노갑 전 고문이 현대측으로부터 자금을 수수하는 과정에는 공교롭게도 모두 무기중개상 김영완씨가 등장한다.
검찰조사에 따르면, 김씨는 박 전 실장이 이익치 전 회장으로부터 받은 1백50억원의 CD를 사채시장에서 세탁한 것으로 돼 있다. 또 김씨는 정몽헌 회장이 조성한 2백억원의 현금을 직접 받아, 권노갑 전 고문에게 전달한 인물로 지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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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완씨 | ||
그리고 2년 뒤인 2002년 두 차례에 걸쳐 김영완씨의 평창동 집에 ‘떼강도’가 들어 보관중이던 1백억원대에 이르는 현금과 채권 등을 강탈당한다.
과연 시차를 두고 김씨에게 ‘머물렀던’ 이 거액의 돈들은 아무 상관관계가 없는 것일까. 이와 관련, 주목할 만한 대목은 최근 검찰 일각에서 흘러나온 ‘맞바꿔치기’설. 2000년 4월 김영완씨가 박지원 전 실장으로부터 CD의 세탁을 부탁받았을 당시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현금을 먼저 지급해주고, 나중에 CD로 돌려 받는 ‘맞바꿔치기’가 이뤄졌다는 얘기다.
만약 그렇다면 김씨는 1백50억원에 이르는 거액의 현금을 어디에서 구했던 걸까. 시점과 정황으로 볼 때 한 달 전 현대측으로부터 ‘수령’한 현금 2백억원 가운데 상당액이 박 전 실장에게 건네졌을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이럴 경우 총선에 즈음해 권 전 고문에게 현대 비자금 2백억원이 통째로 흘러들어 갔을 개연성은 그만큼 낮아지게 된다. 또한 2백억원의 성격 역시 총선 자금용이 아닐 가능성도 짙어진다.
과연 그 돈이 그 돈인 걸까.
▶이익치가 거짓말하고 있다?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은 권 전 고문에게 거액이 건너간 비교적 ‘구체적’ 정황을 검찰에서 진술한 것으로 알려진다. 그는 권 전 고문과 정몽헌 회장, 그리고 자신이 잘 아는 사이로 여러 차례 함께 만난 적이 있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그러나 권 전 고문은 이 전 회장과 정 회장을 한 차례 정도 만난 적이 있을 뿐 전혀 친분이 있는 사이가 아니라고 밝혔다.
이렇게 양측의 주장이 엇갈리는 가운데 이 전 회장의 ‘병문안’에 관한 진술이 논란을 불렀다. 이 전 회장은 지난 99년 정몽헌 회장과 함께 병원에 입원해 있는 권 전 고문을 두 차례 문병했다고 검찰에서 진술한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권 전 고문측에서 입·퇴원 기록을 검찰에 제출함으로써 두 차례 병문안을 통해 권 전 고문을 면담했다는 이 전 회장 진술의 신빙성은 낮아졌다. 이 전 회장이 두 차례에 걸쳐 병문안을 했다는 시점에 권 전 고문이 며칠간에 걸쳐 입원한 기록이 없었기 때문이다.
과연 이 전 회장의 병문안 진술은 의도된 거짓말일까, 아니면 이 전 회장이 착각을 한 것일까.
이런 의문들에 대한 ‘진실의 키’를 쥐고 있는 인물은 현대 비자금의 매개자 역할을 한 김영완씨다. 하지만 지난 2월 쫓기듯 출국한 김씨는 계속 미국에 머무르며 검찰과 ‘딜’을 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검찰 또한 가장 중요한 사건 관련자인 김씨를 조사하기 위해 ‘불구속 수사’ 카드까지 제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상황이 이런 만큼 만에 하나 김씨가 귀국하거나 서면을 통해 조사에 응한다 하더라도 또 하나의 의문은 끝까지 따라다닐 것으로 보인다. 과연 김씨가 진짜 ‘진실’을 말하고 있는가라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