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개발 조감도.
지난 13일 오전 6시 용산 국제업무지구 개발 추진 회사인 드림허브프로젝트금융투자(드림허브)의 홍보담당자는 긴박하게 이런 문자를 기자에게 보내왔다. 우정사업본부로부터 받은 손해배상 청구소송 승소금으로 12일 마감인 자산담보부기업어음(ABCP)의 이자를 조달하려 했으나 실패했다는 것이다. 결국 드림허브는 13일 새벽 52억 원의 이자를 내지 못해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했다. 사업비 30조 원의 단군 이래 최대 개발 사업이 단돈(?) 52억 원에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이제 용산 사업은 어찌되는 것일까.
디폴트 선언 이틀째인 15일 코레일은 드림허브 30개 출자사가 모두 모이는 긴급총회를 소집해 정상화 방안을 발표했다. 이날 현장에서 처음 뿌려진 8장짜리 ‘용산사업 정상화를 위한 제안’ 자료를 받아든 민간출자사들은 경악했다.
코레일은 당장 급한 ABCP, 자산담보부증권(ABS) 원금 해결책으로 드림허브가 다른 증권사나 금융권에서 차환(Refunding) 발행으로 자금을 마련해 해결하고 이에 대한 반환 확약을 제공하겠다고 했다. 이와 함께 연말까지 필요한 사업자금을 2600억 원 규모로 CB(전환사채)를 발행해 지원하겠다고 했다. 이에 대한 대가로 민간출자사에 기존 주주 간 협약, 정관, 사업 협약 등 모든 계약을 파기하고, 시공권 등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라는 게 요지였다. 코레일이 드림허브와 용산역세권개발(주)의 경영권을 가져가 사업계획을 다시 짜겠다는 것이다.
출자사들은 말 그대로 ‘멘붕’에 빠졌다. 코레일의 요구를 따르자니 손해가 너무 컸다. 그렇다고 무시하자니 결국 사업이 파국을 맞을 것이 뻔했다. 코레일은 사업을 백지상태에서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4조 2000억 원짜리 111층 랜드마크 빌딩 선매입 계약을 취소한 게 그 대목이다. 이 계약이 취소되면 드림허브가 이미 짜놓은 자금 조달 계획은 모두 무의미해진다. 드림허브는 원래 랜드마크 빌딩의 선매입 계약과 분양계획을 통해 3조 1000억 원 규모의 자산유동화증권을 발행하려고 했다.
이렇게 마련한 돈으로 서부이촌동 2200여 가구에 대한 토지보상을 실시하고 해당 지역 땅을 확보해 그 땅을 담보로 돈을 빌려 첫 번째 분양 프로젝트인 랜드마크 빌딩 지역의 토지에 걸려 있는 가압류를 풀어 착공에 들어가려던 것이다. 착공을 하면 바로 분양을 할 수 있고 현금이 들어온다. 그렇게 마련한 돈으로 또 옆의 땅의 가압류를 풀어 분양을 하는 순차적 방식으로 사업을 진행하려는 게 당초 드림허브의 계획이었다. 그런데 그 첫 ‘불쏘시개’ 역할을 하는 랜드마크 빌딩 선매입 계약이 취소될 경우 사업은 출발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코레일 관계자는 “랜드마크 자금 유동화보다 출자사들이 현재 1조 원인 자본금을 5조 원으로 늘리고 새로운 투자자를 모집하는 식으로 자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코레일은 이런 안을 내놓고 4월 2일 주주총회까지 최종 의견을 내놓으라고 민간출자사에게 최후통첩을 한 상태다. 민간이 코레일의 정상화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당장 6월 7일까지 해결해야 하는 1조 1000억여 원의 ABCP의 차환에 대한 보증을 서지 않겠다고 했다. 이렇게 되면 진짜 부도사태가 벌어진다.
서울 광화문 드림허브 본사에 설치된 용산개발 건축 모형. 전영기 기자
실제로 출자사이면서 땅 주인인 코레일은 8조 원 땅값을 챙기는 게 최우선 목표다. 만약 투자금과 수익이 같아 개발이익이 전혀 생기지 않는다고 해도 코레일은 이 땅을 처음 팔 때 최저 입찰가(5조 8000억 원)보다 비싸게 땅값을 우선 회수하므로 큰 이익이다. 반면 민간출자사의 입장은 조금 다르다. 투자한 돈과 번 돈이 같을 경우 건설사는 시공 수익, 금융 투자사는 일부 금융거래 수수료를 챙길 수 있지만, 재무적 투자자는 아무런 수익이 없다.
만약 자본금인 1조 원 이상 적자가 난다면 민간출자사는 개발이익은커녕 자본금까지 날린다. 물론 시공이익이나 금융거래 수수료 등으로 일부 보전할 수 있지만 대부분 손실이 불가피하다. 반면 코레일은 3조~4조 원 정도까지 적자가 나도 여전히 손익계산서 상에는 이익이다. 코레일의 철도정비창 땅값은 장부가로 8000억 원, 최저 입찰가는 5조 8000억 원 정도다.
민간출자사들은 따라서 코레일이 드림허브 경영권을 가져가 보수적으로 운영하면서 혹시 적자사업을 만들지 않을까 우려한다. 한 출자사 관계자는 “코레일이 땅값 회수만을 목표로 경영을 한다면 민간은 손실이 불가피하다”며 “민간출자사의 수익을 보장해 줄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민간출자사가 코레일의 정상화 방안을 받아들이지 않고 결국 파산한다면 어떻게 될까. 1, 2대 주주의 타격이 가장 크다. 코레일은 8조 원 땅값을 기대할 수 없다. 반환 확약 계약에 따라 코레일은 올해 안에 2조 4167억 원의 ABCP와 ABS 원금을 드림허브 대신 마련해야 한다. 물론 땅을 돌려받지만 이 땅을 다시 감정할 경우 8조 원까지 평가액이 나올 리 만무다. 현재 경기 상황에서 감정평가액은 3조 원대로 다시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코레일은 이미 받은 땅값 2조 6000억 원을 도로 내놔야 한다. 당장 5조 원 규모의 자본금 부담이 생긴다. 이런 이유로 사업이 붕괴되면 자본 잠식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따라서 코레일은 결코 파산까지 가도록 민간출자사를 밀어붙이진 않을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민간출자사는 적게는 수십억 원에서 많게는 수천억 원의 자본금을 잃는다. 특히 롯데관광개발은 1700억여 원의 자본금을 날리면서 회사 존립이 어려워진다.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사업이 파산할 경우 가장 큰 부담은 코레일과 롯데관광개발인 셈이다. 이들이 적극적으로 사업을 살릴 방안을 궁리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일단 이달 6월까지 드림허브의 최종 부도는 시간이 남아 있다. 그때까지 코레일과 민간출자사 간 극적 합의점을 찾기 위한 시도는 이어질 전망이다. 큰 변수 중 하나는 박근혜 정부가 대대적인 물갈이를 추진하겠다고 밝힌 공기업 인사다. 만약 현재 사업 추진 계획을 밀어붙이는 정창영 사장이 퇴진할 경우 상황은 또 급변할 수 있다.
박일한 헤럴드경제 기자 2013002@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