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불통 이미지를 씻으려 노력하고 있지만 소통하는 방법을 제대로 모른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왼쪽은 윤창중 대변인.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이런 소통 노력은 대언론 관계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4월 들어 대변인의 백브리핑(비공식 추가 설명)이 사실상 정례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대변인뿐 아니라 조원동 경제수석도 지난 3월 28일 경제정책조정회의를 거치면서 수시로 기자실로 찾아와 백브리핑을 하기 시작했다. 거의 매일 기자실을 찾아오는 통에 조 수석은 청와대 기자들 사이에서 ‘또 와 수석’이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새누리당에서 10년여 인연을 쌓은 기자들의 전화도 받지 않는 등 철저한 언론 기피로 원성을 샀던 허태열 비서실장 역시 4월 4일 중앙 방송사 기자들과의 오찬 간담회를 필두로 출입기자들과의 릴레이 접촉 일정에 들어갔다. 박 대통령도 조만간 출입기자들과 오찬 간담회를 열기로 하고 구체적인 일정을 협의하고 있다.
청와대가 이처럼 불통 이미지를 씻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음에도 언론을 만족시키기까지는 갈 길이 멀어 보인다. 기자들 사이에서는 청와대가 진정성 있게 소통하려 하는지, 소통하는 방법을 제대로 알고 있는지 등에 대해 여전히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4월 3일 오전에 있었던 윤창중 대변인의 백브리핑은 이처럼 ‘소통하려 노력은 하되 소통은 안 되는’ 청와대의 어정쩡한 현주소를 제대로 보여줬다. 발췌해 옮겨보면 이렇다.
(기자) 북한이 개성공단 통행을 차단했는데,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
(윤 대변인) 국가안보실을 중심으로 면밀하게 움직이고 있다. 통일부에서 발표가 있을 것이다.
(기자) 대통령께는 언제 보고됐나.
(윤 대변인) 즉각 보고된 것으로 안다.
(기자) 대통령은 뭐라고 하셨나.
(윤 대변인) 통일부에서 발표할 것이다.
(기자) 북한의 다른 동향은 없나.
(윤 대변인) 외교안보 문제에 관한 한 한 목소리를 내기로 했다. 원 보이스(One Voice). 통일부에서 상세히 발표할 것이다.
(기자) 통행 차단 관련해 정보를 파악하거나 연락받은 게 있나.
(윤 대변인) 그건 말씀을 아끼겠다.
김행 대변인
방송사 카메라가 촬영하는 가운데 마이크를 잡고 하는 공식 브리핑과 달리 백브리핑은 그야말로 기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배경설명을 하는 자리다. 공개적으로 얘기할 수 없는 안보나 외교 관련 사안, 또는 시장에 엄청난 영향을 줄 수 있는 경제 현안 등에 대해 흐름을 파악할 수 있도록 특별히 마련하는 자리다. 등록된 출입기자가 아니면 백브리핑 자리에 들어올 수도 없기 때문에 보도금지(오프 더 레코드), 보도유예(엠바고) 요구가 충분히 관철될 수 있다. 하지만 윤 대변인의 이날 백브리핑은 마치 공식 브리핑을 연상케 했다.
같은 날 오후 김행 대변인의 백브리핑 역시 소통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기자 여러분들께 드릴 편지를 써 왔다”고 말문을 연 그는 그동안 기자들이 많이 협조해 줘 고마웠고, 자신이 부족했던 점이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김 대변인의 표정과 목소리는 왈칵 눈물을 쏟아낼 것 같았다.
하지만 편지의 결론은 이른바 ‘관계자 기사’를 자제해 달라는 요구였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에 따르면’, ‘청와대 고위 관계자에 따르면’으로 시작하는 기사들 때문에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떨어지고 있다는 얘기였다. 김 대변인은 그러면서 궁금한 사항을 얘기하면 대변인이 대신 취재해 성심껏 답변하겠다고 약속했다.
상당히 에둘러 표현한 것이었지만 이미 윤 대변인이 오전에 ‘관계자 기사의 관계자는 거의 기자들이 만들어 낸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으로 기자들의 ‘염장을 지른’ 터라, 김 대변인의 발언 역시 반발을 사기에 충분했다. 기자들 사이에서는 “상황을 파악하고 흐름을 읽을 수 있는, 제대로 된 정보는 내놓지도 않으면서 입단속만 하겠다는 것 아니냐” “청와대 기사는 쓰지 말라는 얘기 아니냐”는 불만들이 오갔다.
일련의 소통 노력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과 청와대가 불통의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박 대통령을 잘 아는 여권 인사들이 내리는 진단은 박 대통령이 생각하는 소통과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소통이 다른 것 같다는 것이다. 단적으로 박 대통령은 일단 자신이 결정을 내린 뒤 이해를 구하는 ‘사후 소통’만 중요시할 뿐 결정 이전의 ‘사전 소통’은 불필요한 과정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새누리당 친박계 의원의 한 보좌관은 “19대 총선 공천심사위원회 명단이 유출됐을 당시 당비상대책위원장이었던 박 대통령이 ‘촉새가 나불거려서…’라고 말했던 것은 ‘박근혜식 소통’이 뭔지를 극적으로 보여줬다”고 설명했다. 그는 “박 대통령은 최종 결정이 내려지기 전에 이런저런 소문이 나거나 언론에 보도가 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며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출범 시부터 인수위법까지 들먹여가며 단단히 입단속을 시켰던 것도 이 때문”이라고 보탰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생각은 한편으로는 맞는 얘기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틀린 얘기라는 게 많은 사람들의 지적이다. 사전 소통 과정을 불필요하거나 국민의 혼선만 유발하는 나쁜 과정으로 치부할 경우 ‘잘못된 결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새누리당 한 중진 의원은 “대통령의 주장이 틀렸다는 건 이번 인사참사에서 다 드러났다”며 “사전에 여론을 통한 검증 과정을 거쳤다면 그런 참사가 왜 발생했겠느냐”고 말했다.
사전 소통을 경시할 경우 ‘결정 이후’의 정치적 부담을 대통령이 모두 져야 한다는 점 역시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대통령이 결정한 사안에 대해 야당이나 많은 국민들이 반대할 경우, 대통령이 계속해서 갈등의 최전선에 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인사참사의 여파가 결과적으로 박 대통령에게 엄청난 부담을 안긴 게 단적인 증거다.
더 큰 문제는 박 대통령이 이런저런 비판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소통 스타일을 바꿀 의지를 별로 보여주지 못하는 데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인사참사 이후 박 대통령 지지율이 떨어진 것에 대해 “참모들은 걱정하고 있지만 대통령은 지지율에 신경 쓰지 않는 분”이라며 “대통령은 ‘열심히 하면 결국 국민이 이해해줄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정치적 시련을 거치면서 체득한 처세술이겠지만 이 같은 박 대통령의 소통 스타일은 결국 국민과의 소통에 큰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박공헌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