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은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과 관련 원세훈 전 원장 고발에 대해서도 계파 간 의견이 분분하다. 사진은 3월 21일 열린 민주당 고위정책회의.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우리 정당사에 완전한 의미의 계파 청산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불문율에 가깝다. 오히려 당 안에서 견제와 균형의 관점에서 볼 때 그 필요성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있다. 문제는 당 내 전원이 힘을 합해야 하는 사안에서도 계파가 걸림돌로 작동할 때인데, 지금 전당대회를 앞둔 민주통합당이 꼭 그렇다.
먼저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의혹에 관한 일치된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지난 1일 민주당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검찰에 고발하면서 대검찰청을 직접 방문해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 동시에 ‘원세훈 게이트 진상조사특위’를 만들어 전 방위 압박 태세를 갖추기도 했다. 하지만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안에서는 다른 목소리가 들린다. 당내 비주류로 분류되는 의원실 보좌관들은 “이번 원세훈 전 원장 폭로 건은 진선미 의원 개인 역할이 커서 공을 가로채는 느낌이 있다”, “당 차원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다”라는 미온적인 반응이었다.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을 놓고 친노 혹은 범주류에서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반면 비주류에서 소극적이라는 인상도 지울 수 없다. 친노 성향의 한 초선 의원은 2일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일단 당에서는 검찰 조사를 기다려보자는 입장이다. 여야 합의를 통한 국정조사 카드도 여전히 남아 있어 그리 급할 것이 없다는 반응”이라면서 “뚜렷한 증거가 나왔을 때 비대위 차원에서 정부를 강하게 압박하지 않았던 것이 아쉽다”라고 말했다. 이 의원 측은 “비대위원장이 종합편성채널에 나와 대통령이 예쁘다는 이야기나 하고 있으니 원…”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전날(1일) 민주통합당은 종편 출연을 금지했던 당론을 폐지했다.
결국 주류들의 불만은 당 대표에 가장 근접한 김한길 의원으로 향하는 분위기다. 주류에 속하는 한 의원은 “야권에서 국정원 이슈에 대해 유독 말을 아끼는 두 유력자가 있다. 하나는 안철수 노원병 후보고, 다른 한 명은 김한길 의원이다. 김 의원은 이동섭 지역위원장의 불출마, 류현진 선수 메이저리그 등판과 같은 일에 대한 언급은 빼놓지 않으면서 정작 당의 중요한 일에는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라고 일갈했다. 이에 김한길 의원 측은 “당 대표 출마선언 이후 주로 지방으로 다니는 등 바빠 챙기지 못하고 있다”며 “앞으로 입장을 내겠다”라고 전했다.
지난해 12월 12일 민주당 당직자들이 ‘비방 댓글 의혹’의 국정원 여직원이 거주하는 오피스텔을 지키고 있는 모습. 임준선 기자
이런 지적에 비노 또는 비주류 측도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주류에서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을 키우면서 대선 패배로부터 자유로워지고 당내 입지를 구축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한 비노계 의원 보좌관은 “국정원 의혹에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수개표 청원에 귀 기울이는 것이 장기적으로 옳은 일인지는 잘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비주류의 한 초선 의원은 “퇴임한 원세훈 원장을 압박하는 것이 국정원 개혁에 도움이 되는 일인지 모르겠다”며 “그런 건 국회 안에서 논의하는 게 빠르지 않나 싶기도 하다”라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지난 3월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출국을 막기 위해 일부 의원들이 인천공항 게이트를 지킨 것에 대해서도 뒷말이 나온다. 이는 당 차원의 공통 의견이라기보다 즉흥적인 발상으로 대선 때 국정원 여직원 오피스텔을 급습한 것과 비슷한 인상을 준다는 것이다. 앞서의 비노계 의원 보좌관은 “원세훈 전 원장이 미국 샌프란시스코가 아닌 도쿄 나리타행 항공권을 예약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지 않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한편 전대를 앞두고 노선 투쟁도 본격화될 전망이다.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이 “민주통합당은 중도개혁의 노선을 지향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 화근이 됐다. 최근 당 내 원로그룹에 속하는 인사들이 회동을 갖고 “이번에는 김한길 의원이 당을 맡는 것이 맞겠다”는데 의견을 모으고 있는 것으로도 알려지고 있다.
이에 맞서 486 의원들과 초선그룹은 아예 당 대표 후보자를 초청해 직접 검증하겠다고 맞서고 있다. 486에 속하는 진성준 의원은 “당내에서 중도·진보 노선 논쟁이 본격화되면 단호하게 맞설 것”이라고 천명했다. 반면 비노계 한 초선 의원은 “민주통합당은 원래 중도개혁세력에서 출발했는데 너무 좌클릭 됐다. 원로들이 이를 인식하고 고언을 하는 것인데 일부에서 곡해하고 있다”고 전했다.
민주당의 한 젊은 당직자는 “노선 변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보니 당이 무능력해진 것 같다”며 “종편 출연만 해도 그렇다. 종편이 새누리당에게 얼마나 우호적인지 알면서 힘 한 번 쓰지 못하고 굴복한 것 아니냐”라고 일갈했다. 전대가 다가올수록 당내 가치 연대는 사라지고 계파 갈등만 두드러지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