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장자연 씨 사건을 배경으로 한 영화 <노리개>의 스틸사진.
이 같은 수치는 지난 2010년 국가인권위원회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 의뢰해 여성 연기자 111명과 지망생 약 240명, 연예산업 관계자 11명 등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다. 여성 연기자의 절반 이상이 성상납 제안을 받았다는 사실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특히 일부 여성 연예인들은 직접 대중들에게 ‘연예계 성상납’ 실태를 폭로하기도 했다. 연예인들이 폭로한 발언을 바탕으로 베일에 가려진 ‘연예계 성상납’ 실체를 들여다봤다.
# 성상납·술시중 제안 주요 타깃은 신인
연예인들이 성상납 제안을 받은 시절로 가장 많이 언급하는 시기는 바로 신인 때다. 연예계에서 기반이 약한 신인일수록 성상납 유혹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배우 김현아는 2011년 자신의 트위터에 신인시절 자신이 성상납 제안을 받고 미니홈피에 올렸던 글을 최근 다시 게재했다. 2005년 데뷔한 김현아는 “아는 매니저에게서 연락이 와 스폰서를 붙여주겠다고 했다. ‘애인이 되는 조건이냐’고 물었더니 당연히 포함된다고 해 거절했다”고 적었다. 김현아는 과거 글을 올리며 “당시에는 스폰서를 거절해서 한 단계 못 올라가는 것인가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신념을 지키고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다”고 전했다.
신인배우 장경아 역시 2012년 12월 자신의 트위터에 “성을 팔아 배역을 얻는 배우가 있다. 내가 관여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언급한 뒤 “브라운관 속의 그녀를 부러워하며 나와 내 매니저를 질책하는 엄마”라고 서러운 마음을 표현했다.
레이싱 모델 최혜영도 2005년 성상납 제안을 받고 연예계에 환멸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최혜영은 “열아홉 살 때 잡지모델로 활동하다 가수로 데뷔시켜주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그런데 가수가 되기 위해선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술자리뿐 아니라 잠자리까지 요구받았다”고 밝혔다.
VJ 출신인 최은화도 2006년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연예계 데뷔 후 10여 차례의 성상납 제의를 받았지만 모두 거절했다”고 말했다.
심지어 중국 가수도 비슷한 폭로를 했다. 한국에서의 연습생 시절을 보낸 중국가수 린 웨이링은 지난 2010년 “한국에서 연습생으로 활동을 준비하던 당시 성 접대를 강요받았다”고 폭로했다. 린 웨이링은 대만 매체들과의 인터뷰에서도 “물 위로 드러나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 모두들 이러한 종류의 비밀 이야기를 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며 “한국에서는 만약 당신이 좋지 않은 일로 폭로가 됐을 경우 일거리가 아예 없어진다는 뜻”이라며 한국 연예계를 강하게 비판했다.
# 성상납 제안 이면의 캐스팅 유혹
고 장자연 씨 사건을 배경으로 한 영화 <노리개>의 스틸사진.
러시아 출신 연극배우 라리사도 성상납 제안 사실을 밝혔다. 라리사는 “한국에서 연예인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성 접대를 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꿈을 접으려고 했었다”고 말했다.
영화배우 장유화는 영화감독으로부터 성상납 제안을 받았다고 폭로했다. 장유화는 2002년 “한 유명 영화감독으로부터 직접 성상납 제의를 받았는데 연애나 한번 하러 가자며 노골적으로 요구했다”고 폭로해 해당 감독이 누군지를 두고 네티즌들의 추측이 난무하기도 했다.
# 이미 뜬 연예인에게 백지수표 남발
신인이 아닌 이미 유명해진 연예인에게도 고액의 스폰서를 제안하는 경우도 있다. 가수 아이비는 2009년 자신의 미니홈피에 ‘만나만 줘도 3억을 주겠다’는 제안을 받은 적이 있다고 밝혔다. 아이비는 “실질적으로 연예계에는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마음만 먹으면 솔직히 주변에서 한 다리만 건너도 그런 사람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고 밝혀 대중을 놀라게 했다.
배우 함소원은 한 프로그램에 출연해 많은 돈을 제안하는 성상납을 요구받은 사실이 있다고 폭로했다. 당시 함소원은 “화보집으로 인기를 끌자 백지수표를 제안 받았다”고 말해 충격을 줬다.
‘백지수표’ 발언의 원조는 에로배우 정세희다. 정세희는 2000년대 초반 “재계인사로부터 하룻밤 대가로 백지수표를 제안받은 적이 있다”고 폭로해 세간에 화제를 불러 모았다. 정세희의 폭로처럼 재계 유력 인사들이 거액을 미끼로 유명 연예인들에게 은밀히 성상납을 요구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실제로 얼마 전 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한 김부선은 “한 소속사 대표로부터 대기업 임원을 소개해주겠다는 제안을 받았다”고 폭로한 바 있다. 김부선은 이를 거절했고, 이에 따른 대가를 치렀다고 고백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연예인은 아니지만 대기업 전 관계자를 통해 이런 관행이 폭로되기도 했다. 지난 2008년 전 대기업 법무팀장 출신인 아무개 변호사는 라디오에 출연해 “저 사람들(해당 대기업 특정 부서 관계자들)은 비자금을 가지고 연예인 윤락까지 하는 사람들”이라며 ‘연예인 윤락’ 실태를 고발하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이런 연예계 현실에 대해 조언을 해주는 톱스타들도 있다. 배우 송윤아는 지난 2009년 한 토크쇼에 출연해 데뷔 초 개인적으로 만나자는 연락을 과감하게 물리친 경험담을 소개한 바 있다. 당시 송윤아는 “소수에 불과한 얘기지만 밤 12시에 나오라고 연락하는 매니저가 있다면 나쁜 생각을 갖고 있는 경우”라며 “신인 시절 빨리 성공하고 싶은 욕심에 그런 제의를 받아들이는 것은 정말 옳은 일이 아니다”며 조언해 눈길을 끌었다.
김다영 기자 lata13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