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산 한국조폐공사 화폐본부 직원이 5만원 권을 제조하며 품질을 점검하는 모습. 5만 원권은 절세를 위한 수단으로 각광받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하지만 ‘순경 열이 도둑 하나를 잡기 어렵듯’이, 정부가 강하게 나올수록 부자들의 절세 수단도 교묘해지고 있다. 특히 국내 경기상황이 좋지 않다 보니, 수익에 대한 욕심도 적어 절세로 몰리는 뭉칫돈은 큰 폭으로 늘어나는 모습이다. 부자들의 대표적인 절세 투자처 6곳을 살펴봤다.
#금은 지난 5일 롯데백화점 본점이 골드바(Gold Bar·금괴)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날 하루만 2억 원 넘게 팔렸다. 100g에 690만 원이나 하는데도 불티가 났다고 한다. 금은 증여나 상속할 때 근거가 남지 않는다. 길게 볼 때 금값은 계속 오를 수밖에 없다. 전세계적인 통화전쟁으로 화폐발행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한때 금 관련 금융상품 투자가 각광을 받았지만, 거래내역이 노출되고 증여나 상속에도 세금부담이 있는 만큼 실물 금과 비교할 바가 아니다. 물론 실물 금도 매매 시 세금이 붙지만, 증여나 상속세율과 비교하면 한참 낮다.
금만큼은 아니지만, 은도 각광받는 투자대상이다. 은이 금보다 2011년 4월 고점 대비 가격이 많이 떨어진 것도 투자 대상으로의 매력을 더한다. 국제 금 시세 정보 사이트인 킷코(Kitco)에 따르면 골드바는 현재 2011년 고점 대비 13%가량 가격이 떨어진 반면 실버바는 40% 가까이 떨어졌다. 그만큼 값이 오를 여지가 금보다 클 것으로 전망하는 이가 많다.
그럼에도 굳이 비교를 하자면, 은이 금보다는 못하다. 일단 중량당 금값이 훨씬 더 비싸 보관이 용이하다. 그래서 각국 중앙은행에서 외환보유고를 관리할 때도 은이 아닌 금을 선호한다. 1㎏이면 7000만 원 가까운 가치가 있는 금에 비해, 은 1㎏의 가격은 채 150만원이 안 된다. 골드바 1㎏면 1㎏짜리 실버바 46개 이상의 가치를 갖는다. 게다가 국제 금값을 좌우하는 주요한 요인 가운데 하나가 중국과 인도 등 세계 1, 2위 인구 국가들의 금 선호 풍토인데, 이들 국가는 은에 대해서는 금만 한 충성도를 보이지는 않는다.
최근 북한의 도발 위협이 커지면서 전쟁에 대비해 금과 은의 수요가 좀 더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또 일각에서는 박근혜 정부가 지하경제 양성화의 마지막 수단으로 화폐개혁을 단행할 것이란 소문도 정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나돌며, 금과 은에 대한 수요를 자극하고 있다. 만약 화폐개혁이 단행된다면, 금과 은 등 귀금속은 보유자산 노출로 부과될 세금을 피하려는 고액 자산가들이 웃돈을 주고서라도 사려들 것인 만큼 ‘대박’이 날 수도 있다.
#5만 원권 5만 원권의 발행 잔액이 전체 지폐발행 잔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9년 28%에서 지난해 말 기준 62.8%로 크게 늘었다. 반면 5만 원권의 시중 유통량은 턱없이 부족한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이처럼 금과 함께 각광받는 게 5만 원권이다. 가만 놔둬도 값이 오른다는 측면에서는 금이 유리하지만, 실제 사용하기에는 5만 원권이 낫다.
이는 개인금고 판매량이 급격히 늘고 있는 점과 맥락이 닿는다. 이혜훈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최근 “5만 원권으로 15억 원을 보관할 수 있는 개인금고의 판매량이 최근 20%가 늘었다”고 밝혔다. 개인금고 판매증가는 금 투자인기와도 궤를 같이 한다.
#물가연동국채 물가연동국채는 물가가 가파르게 오르던 2012년 상반기까지만 해도 인기가 높았다. 요즘 좀 시들한 편이지만, 부자들에게는 여전히 매력적인 상품이다. 물가연동국채는 표면이자가 낮은 대신, 물가상승 정도에 따라 덤으로 붙여주는 이자에 대해서는 세금이 붙지 않는다. 부자들에게는 세금 안 붙는 투자처가 최고다.
물가연동국채는 물가가 올라야 돈이 되는데, 최근 정부의 금리인하 압력이 강하다는 점, 경기부양을 위한 대규모 추경이 진행된다는 점 등이 물가를 자극하고 있다.
#해외투자 조세전문가로,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에까지 올랐던 한만수 변호사를 보면 부자들에게 ‘해외’만 한 투자처도 없어 보인다. 해외에 계좌를 만들어 돈을 넣어두면 국내 세무당국이 일일이 이를 찾아내 세금을 부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2011년부터 연간 예치금액 10억 원 이상의 해외 금융계좌를 과세당국에 신고하도록 한 제도가 시행됐지만, 자발적 신고가 아니면 확인할 길이 없다. 한만수 변호사가 국가미래연구원을 통해 작성한 보고서에서도 “주권의 행사 영역 밖에서 영업을 하는 해외 금융회사들로부터 강제로 금융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밝힐 정도다.
이중과세 방지협약 덕분에 절세효과가 커 인기를 끌었던 브라질 채권은 최근 ‘토빈세(단기성 외환거래세)’ 도입에 따라 기대수익이 크게 줄었다. 반면 호주 채권은 과세기준이 되는 표면이자는 낮지만, 실제 기대수익률은 높다는 점에서 최근 부자들이 주목하는 투자처다.
#노른자위 상가 서울 지하철 강남역에서 걸어서 1분 거리인 강남역 센트럴 푸르지오시티 오피스텔에 800억 원 가까운 뭉칫돈이 몰렸다. 250억 원을 들여 10칸 이상을 분양 받은 부자도 있다고 한다. 사실 상가는 부자들의 단골 투자처지만, 요즘에는 노른자위 지역을 중심으로만 인기다. 지하경제 양성화 정책으로 차명계좌 등에 대한 단속이 심해지고, 은행 이자도 낮아 그냥 돈을 놀리느니 차라리 수익이 되는 상가에나 묻어놓자는 부자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한 부동산컨설팅사 대표는 “예전에는 상가 투자 시 수익률을 따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요즘은 공실 상태인 수십억 원대 상가를 정밀한 분석을 거치지 않은 채 착공 시점에 매입하는 고액 자산가도 의외로 많다”고 귀띔했다.
#사모펀드 가장 일반적인 부자들의 투자방법이다. 일반인(?)과 섞이지 않고, 수준(?)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확실하게 돈 되는 곳에 투자할 수 있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사모펀드의 가장 일반적인 형태는 주가연계증권(ELS)이나 파생상품연계증권(DLS)이었지만 절세효과가 낮다는 단점이 있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소득 분산으로 과세부담을 줄일 수 있는 ‘월 지급형’에 대한 인기가 높다.
사모펀드의 투자 대상은 거의 무궁무진하다. 주식, 채권, 파생상품은 물론 실물자산까지 돈 되는 곳이라면 거의 모두 사모펀드의 투자 대상이 될 수 있어 분산투자 효과가 크다. 특히 사모펀드는 투자자 숫자가 50인 미만으로 제한되다 보니 투자자로서 내 돈이 어떻게 운용되는지를 투명하게 관찰할 수 있다. 절세효과를 차치하더라도 부자들이 사모펀드를 선호하는 이유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