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으로 오릭스와 계약이 끝나는 이대호. 벌써부터 이대호 쟁탈전이 물밑에서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4월 초 일본 도쿄를 방문했을 때다. 일본 프로야구 모 구단 편성(운영)팀장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이대호 거취’가 화제로 떠올랐다. 당시 이대호는 지바롯데 마린스와의 개막 3연전에 4번 타자 1루수로 출전해 13타수 6안타 2타점 타율 4할6푼2리로 매서운 타격감을 자랑했다. 그 편성팀장은 “내가 알기엔”이라는 단서를 깔고서 “센트럴리그의 맹주가 이대호를 노리고 있다”고 귀띔했다. 일본 프로야구 센트럴리그의 맹주라면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뜻하는 소리였다.
취재 결과 요미우리가 이대호에 관심을 나타내는 건 일본야구계에선 공공연한 비밀로 통했다. 다른 구단 스카우트도 “요미우리가 이대호에 몸이 달았다”고 전했다. 이 스카우트는 “요미우리 스카우트팀이 이대호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는 것으로 안다”며 “시즌이 끝나면 곧바로 (이대호 영입을 위해) 행동 개시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만약 요미우리가 이대호 영입에 나선다면 다른 구단보단 유리한 고지에 있다. 우선 요미우리는 다른 구단이 부러워하는 월등한 자금력을 갖추고 있다. 2011년 이대호는 2년간 7억6000만 엔(약 86억 원)을 받는 조건으로 오릭스와 계약했다. 보너스와 인센티브를 뺀 순수 연봉은 2억5000만 엔. 당시는 엔화가 천정부지로 치솟을 때라 한화로 따지면 100억 원이 넘는 매머드 계약이었다.
지난해 오릭스 전 경기(144경기)에 출전해 타율 2할8푼6리 24홈런 91타점을 기록하며 타점 1위, 홈런 2위에 올랐던 이대호가 올 시즌 비슷한 성적을 낸다면 몸값은 2년 전보다 크게 뛸 가능성이 크다. 일본야구계는 과거 이승엽의 예를 거론하며 “이대호의 몸값이 4년 20억 엔 이상을 뛰어넘을 수 있다”고 본다.
요미우리가 유리한 건 자금력뿐만이 아니다. 요미우리엔 한국인 불펜포수 유환진이 있다. 유환진은 몇 해 전부터 국제 스카우트 업무도 병행하며 요미우리 편성팀을 돕고 있다. 이대호와도 각별한 사이라, 유환진이 영입 협상 테이블에 나선다면 다른 팀 스카우트보단 시쳇말로 ‘말빨’이 먹힐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최근 요미우리에 맞서 이대호 영입 쟁탈전에 나선 곳이 있다. 바로 미국 메이저리그다.
매사 신중하기로 소문난 이대호는 향후 거취를 묻는 말에 침묵으로 일관하곤 했다. 그러나 이대호는 한국에서 뛸 때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뛰는 메이저리그에서 나를 시험해보고 싶다”며 빅리그 진출 의사를 밝힌 바 있다. 물론 단서는 있었다. “헐값엔 (메이저리그에) 진출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일본 프로야구에서 위상을 높인 이대호는 이제 헐값을 걱정할 선수가 아니다. 그를 바라보는 미국야구계의 시선도 변했다.
메이저리그 모 구단 스카우트는 “과거 이대호는 파워와 정확성이 뛰어난 타자였으나, 어디까지나 미국, 일본보다 한 수 아래인 한국 프로야구 타자였다”며 “그러나 일본에서 괄목할 만한 성적을 내고서 ‘메이저리그에서도 통할 수 있는 타자’라는 인식이 강해졌다”고 밝혔다.
그는 “이대호를 관심 있어 하는 메이저리그 구단이 꽤 되는 것으로 안다”며 “우리 팀도 그 가운데 하나”라고 털어놨다.
이대호의 친형이자 국내 법적 대리인 역할을 맡고 있는 이차호 O2S&M 대표는 “여러 메이저리그 팀에서 동생에게 관심을 나타내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여러 경로로 이야기가 오고 있다”며 “주변에서도 ‘이대호가 미국행을 알아보느냐’는 질문을 자주 한다”고 밝혔다.
<일요신문>은 일본 취재 중 믿을만한 소식통들로부터 “이대호가 메이저리그의 유명 에이전트와 손잡고 미국행을 추진 중”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구체적으로 유명 에이전트를 스캇 보라스라고 꼬집어 말한 이도 있었다. 하지만 이 대표는 “항간에 떠도는 스캇 보라스와의 계약설도 언론 기사를 보고 알았다”며 사실이 아님을 명확히 했다.
보라스 코퍼레이션 한국지사 전승환 이사도 같은 말을 했다. 현재 미국에 있는 전 이사는 “나도 모르는 사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나와 이대호가 에이전트 계약을 맺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게 사실이라면 나로선 행운”이라고 농담을 던졌다.
하지만 전 이사는 “계약은 고사하고, 아쉽게도 이대호와 만난 일도 없다”며 “세간의 계약설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
롯데로의 유턴 가능성은? “더 큰 도전 준비 중” 롯데 팬들이 바라는 이대호의 국내 복귀는 조만간 이뤄질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제3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한국대표팀에서 이대호와 함께 뛴 A 선수는 “(이)대호 형이 국내 복귀보단 더 큰 도전을 준비 중이란 인상을 받았다”며 “간혹 대호 형이 롯데 이야기를 할 때 보면 애증이 교차하는 표정이 역력했다”고 말했다. 이대호는 지금도 롯데 동료들과 자주 전화를 주고받는다. 롯데 팬들에 대한 감사함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롯데 구단과의 연봉싸움에서 힘든 기억이 많아선지 구단에 대해선 함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A 선수는 “대호 형이 롯데 구단 이야기만 나오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며 “당분간은 국외에서 뛰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전했다. 향후 거취가 어떻게 결정 나든 이대호는 오릭스에서 뛰는 동안엔 야구에만 전념하겠다는 태도다. 오릭스의 퍼시픽리그 우승이 목표다. 자신도 지난해 역전당한 홈런왕 경쟁에서 당당히 승리해 한국에 이어 일본에서도 홈런왕에 오르겠다는 다짐이다. ‘부산 대통령’에서 ‘오사카의 거인’으로 우뚝 선 이대호가 메이저리그로 진출해 세계적인 강타자로 도약하길 많은 야구팬은 바라고 있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