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대 대선 당시 제3세력으로 각광받던 문국현 전 대표와 심리학자 황상민 교수가 국내 현안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를 쏟아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그와 유명 심리학자 황상민 연세대 교수가 마주 앉았다. <일요신문>이 마련한 두 사람의 특별대담. 지난 12일 이들이 만난 장소는 공교롭게도 지난 대선 야권 단일화 과정에서 문재인-안철수 전 대선후보가 만났던 한식당이었다. 이들은 두 시간 동안 다양한 이야기들을 쉼 없이 쏟아냈다. 다음은 두 사람의 특별대담의 전문이다.
황상민 교수(황): 사실 나 개인적으 문국현 대표에게 대통령이 이렇다 저렇다 얘기하고 싶진 않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보다 더 답답해하고 불안해한다. 이 때문에 많은 이들이 거기에 대한 답을 원하고 있다. 누군가 얘기를 해줘야 하는데 말이다.
문국현 대표(문): 글쎄, 보통 정부 출범 6개월에서 1년은 허니문 기간이지 않나. 이 기간에는 비평을 안 하지 않나. 뭐 할 말은 다들 있겠지만 얘기하기 힘든 문제 아닌가. 또 황 교수 같은 사람이 과거에 비해 활동을 현저히 적게 하니까 더 답답해하는 거다.(웃음)
황: (웃음)
문: 웃을 일이 아니다. 아주 중요한 포인트다. 이럴 때 일수록 집단 심리를 통한 해설이 필요하지 않나. 근데 황 교수도 아직은 해설에 앞서 좀 더 진단을 해봐야 하는 기간 아닌가. 지금 바로 그 문제에 대한 진단을 나에게 원하니 뭐라 답하기 어렵다.
황: 물론 문 대표가 말한 대로 정권 초기 허니문 기간이라는 게 있다. 그런데 여론조사를 보자. 심각하다. 보통 정부 출범 6개월까지는 60~70% 지지율이 나온다. YS(김영삼 전 대통령) 때는 90% 넘게 나왔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하기 이전에도 사람들이 기대감을 주지 못한 것 같다. 굉장히 혼란스럽다.
문: 대통령은 자기가 만든 조직의 리더가 아니다. 남들과 함께 만든 조직의 리더다. 대개는 3분의 2 지지를 받아 당선된다. 문제는 나머지 3분의 1에 대해서도 항상 귀를 열어야 한다는 거다. 그게 중요하다. 지금 같은 경우 4000만 명의 유권자 중 1700만 명만 박근혜 대통령을 선택했고 1500만 명은 다른 후보를 지지했다. 또 1000만 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이 투표장에 나오지 않은 상황 아니냐.
황: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원래 지지했던 사람들도 등을 돌리고 있는 것 아닌가.
문: 박 대통령은 불과 200만 표 차로 당선됐다. 그만큼 절박성을 가져야 한다. 상대 후보도 1500만 표가 나왔다. 역사상 최다 득표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우선 자신이 내세웠던 공약을 중심으로 다가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정직성은 있지만 유연성과 통합 측면에서는 부족한 것 같다. 원래 정직성이 때로는 유연성과 통합에는 부정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거다.
황: 많은 사람들이 박 대통령의 통합성이 부족하다는 것은 다 인정한다. 그런데 문 대표가 말한 것처럼 본인의 공약을 정직하게 지키고 있다고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문: 아직 기대를 열어놔야 하지 않나.
황: 정부 출범은 2개월 정도 됐지만, 대통령 당선된 지는 4개월이나 됐다.
문: 물론 박 대통령 공약이 지나치게 내부 지향적인 게 있긴 하다. 어떻게 보면 지금은 전 세곅 국경이 무너지고 이념이 무너지고 전 세계가 함께 고민하고 있지 않나.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너무 내부 지향적으로 가버렸다. 여기에 굴레가 씌워서 한반도와 동북아 전체를 보지 못하는 것 같다. 내부만 보면 본인이 내세운 ‘창조경제’도 못한다.
황: 사실 창조경제는 문 대표가 지난 17대 대선 당시부터 강조한 것 아닌가. 지금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는 자꾸 엉뚱한 곳으로 가는 것 같다.
문: 물론 창조경제는 여러 의미로 쓸 수 있다. 지난 2007년 대선 당시 내가 내세웠던 창조경제는 주로 다보스 포럼에서 나온 얘기를 한국의 상황에 맞춰 얘기한 거다. 즉 내가 말하는 창조경제는 ‘물자’가 아닌, 사람을 중심으로 짜 맞춰진 것이었다. 물자 중심으로 가면 양극화만 심해지고 창조성도 얘기할 수 없다. 내 슬로건이 사람 중심 창조경제였다.
문: 결국 지금 그 두 개가 하나가 되지 못한 셈이다.
황: 그렇게 보면, 박근혜 대통령은 창조경제를 주장하는데 사람은 없고 오로지 물자 중심의 ICT(정보통신기술)만 내세우고 있는 듯하다.
문: 덧붙이자면, 사람이 아니라 기술·산업에만 목메고 있다.
황: 지금 박근혜 정부가 얘기하는 창조경제는 로봇에서 슈퍼로봇으로 진화하기 바라는 창조경제를 얘기하는 것 같다.
문: 삼성도 요즘은 지난 과거와 달리 근로자들의 경영 참여와 창조 경영을 강조하고 있다. 원래 삼성은 한 사람이 밑에 있는 사람을 먹여 살리는 탑다운(Top down)이 중시됐는데 요즘은 바텀업(Bottom up)을 중시하고 있다는 거다. 결국 ‘사람’이 빠지면서 창조경제가 너무 제한된 용도로 쓰이고 있는 거다.
황: 그 대표적인 경우가 최문기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인선 아닌가. MB(이명박 전 대통령) 정부 당시 그는 4대강 프로젝트 내에서 로봇 물고기를 만들어 오염을 방지하겠다고 한 사람이다. 딱 거기에 비견되는 예인 것 같다.
문: 우리가 가장 귀 담아 들어야 할 사례가 독일의 창조경제이다.
황: 독일에서도 창조경제라는 것이 있었나.
문: 물론이다. 벌써 2007년도의 일이다. 요즘 전 세계가 가장 눈여겨보고 있는 모델이 독일 모델이다. ‘어떻게 독일처럼 중간 규모의 나라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계속 무역 흑자를 낼 수 있을까’ ‘EU전체가 다 흔들리는 데 어떻게 독일 혼자만 저렇게 EU를 다 지탱하고 나갈 수 있을까’와 같은 물음이 나오기 시작했다. 사실 독일은 20년 전만해도 금융백치, 병자국가, 통일비용 탓에 무너질 수 있는 나라로 불렸다.
황: 맞는 말이다.
문: 이런 비관적 국가가 세계 1위 국가가 됐다. 독일의 창조경제 모델에 앞장섰던 이가 엥겔라 미르켈 총리다. 그가 쳐했던 지난 2007년 세계 경제 위기는 보통 상황이 아니었다. 그때 미르켈은 이것을 이겨내기 위해 과감히 과거의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창했다. 피터 드러커가 얘기했던 창조적 파괴를 실천한 것이다. 그리고 그 창조경제의 목적을 일자리 창출과 교육혁신에 뒀다. 이걸 아예 못 박은 거다. 그 방법론으로 정부의 모든 조직과 활동가, 그리고 예산을 일자리 창출과 교육 혁신 중심으로 재편했다. 이게 핵심이다.
황: 현재 박근혜 정부도 혁신의 주체로 정부가 나서겠다고 하고 있다. 그런데 그 방법으로 단지 ICT만을 내세우고 있는데. 진단이 잘못된 게 아닌가.
문: 자칫 오해가 생길 수 있다. ICT만 특별히 내세우면 기존 2500만 명이 종사하는 사업들이 다 죽는다. 독일에서 말하는 창조경제는 기존 사업의 재창조였다. 순환적으로 창조적으로 파괴를 해야 한다는 거다.
황: 한국에서 그것이 가능할까.
문: 사실 가장 좋은 것은 정부가 예산을 다시 제로 베이스해서 짜보는 거다. 그렇게 하면 줄일 수 있는 예산이 20~30%는 나올 것이다. 물론 그것을 찾아낼 수 있는 전문성과 기득권에 대한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
황: 현 대통령 수준에서 그런 능력을 기대하는 것은 과한 것 아닌가. 물론 국민도 정부도 그 한 분(박근혜 대통령)에게 영웅적 능력을 바라는 상황은 아니다. 근데 그 분 주변 전문가(각료 및 정부 인사)들은 ‘진짜 능력’보다는 위에 있는 한 분 눈치를 보는 능력이 뛰어난 전문가들만 있는 거 같다.
문: 우리는 ‘의지의 달인’을 대통령으로 뽑았다. 그런 사람들은 소통보다는 자신의 가치 기준에 따라 옳다고 보는 것을 관철하는 힘이 뛰어나다. 소통의 달인이 되기 어려운 분이다. 이런 점에서 주변의 도움이 필요하다. 소통이 뛰어난 누군가는 ‘목’을 내놓고 가서라도 나서야 한다.
황: 우물에서 숭늉 찾는 것보다 힘들 것 같다.(웃음)
문: 황 교수가 왜 이렇게 비관적으로 변했나.(웃음)
황: 요즘 많은 분들이 이렇게 됐다. (웃음) 문 대표는 지금 중국에서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 지금 남북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우리 정부 입장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하는가.
황: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문: 우리 정부가 직접 북한에 대화를 하거나 제안을 하는 게 아니다.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이해관계가 있는 국제사회에 제안하는 거다. 이들과의 이해관계를 통해 북에 체제보장을 약속하고 핵과 미사일을 포기하게 해야 한다.
황: 그건 기존 6자 회담에서 계속 논의하는 것 아니냐.
문: 6자 회담에는 북한 체제의 보장 내용이 없다. 그저 중국이 주재국이 돼서 통제에 나서는 것뿐이다.
황: 설득력 있게 다가오지 않는다. 그런 합의 자체가 실효가 있겠나.
문: 나는 이것을 ‘신 마셜플랜’이라 부른다. 과거 미국이 전쟁으로 황폐화된 유럽의 복구를 통해 돈을 돌게 했던 마셜플랜처럼 북한에도 이와 비슷한 복구 사업을 진행하자는 것이다. 북한에서 핵과 미사일을 뽑아내는 대신 주변국들이 대규모 경제 인프라 건설을 진행하는 것이다. 중국의 외환보유고, 러시아의 동북아 개발 의지, 미국의 기술, 일본의 대자본, 대한민국 내 불황인 건설 산업 부흥의 필요성. 이것을 잘 조합해 북한 복구에 나서자는 것이다.
황: 북한 입장에서 미국 등 주변국이 그런 조치를 취해준다고 약속하더라도 믿지 못할 것이다.
문: 북한에 백치만 있는 게 아니다. 자기네 체제 보장만 해준다면 핵과 미사일 빼낼 수 있다. 중국 입장에서도 북한의 핵과 미사일은 용납할 수 없다.
황: 그런 것을 박근혜 정부가 이해할지 의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실체도 명확치 않은데.
문: 너무 한국 입장에서 남북한만 보면 안 된다. 주변국과 함께 논의해야 하는데 박근혜 대통령은 아직 주변국에 적극적인 프로포잘(제안)을 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박 대통령이 아버지보다 나은 지도자가 되려면 이것 꼭 해야 한다.
황: 아마도 난 다음 대통령에 기대해야겠다(웃음).
문: 그래도 내 나름대로는 윤병세 외교통상부 장관이나 류길재 통일부 장관이나 나름 폭넓고 깨인 사람으로 평가한다.
황: 다시 정치 안할 것인가.
문: 이제 그럴 일 없다. 지금 활동하고 있는 중국에서 시진핑에 이어 출마하면 모를까(웃음).
황: 한국에서는 정말 계획이 없나.
문: 내 나이가 이제 곧 일흔이다. 어린 세대와 소통이 되겠나. 나는 정치에서 나온 사람이다. 경제로 돌아간다고 선언한 사람이다. 그러지 않아도 정치에 박힌 사람이다. 다시 정치에 입문할 생각 없다. 현재 여야 양당의 전문성을 훼손할 생각도 없고. 정치에 관심 없다.
황: 정치에 관심이 없다?
문: 사실 창조한국당이라는 게 비정치권이었다. 정치권이 아니었다. 프로페셔널 정치인이 모인 게 아니었다. 그래서 흔히 제3세력으로 얘기 됐다. 일반적인 정당 세력으로 보진 않았다.
황
지난 2007년 당시 문국현 대통령 후보가 서울 명동에서 유세를 하는 모습.
문: 실제 많지 않았다. 물론 등원 이후 교섭단체 구성을 위해 선진당과 합하긴 했지만, 당시는 기존 정당의 견제를 위해 한 것이다. 그리고 교섭단체 구성 이전에 몇 가지 우리가 원했던 약속도 있었다.
황: 그럼 안철수 전 교수는 미래의 변화에 대해 헤쳐 나갈 수 있는 지도자로 가능성이 있는가.
문: 안철수 전 교수가 개인적 능력으로 치자면, 정치 20~30년 한 사람보다 유능할 수는 없다. 사실 유능한 사람이 대통령 될 필요는 없다. 어떻게 보면 유능한 사람은 주변 사람들을 잘 엮는 사람이다. 국가에 대한 사명감과 비전이 확실하고 소통 능력이 있고 유연하고 통합적이고 전 세계와 대화를 할 줄 알아야 한다. 아마도 국민들은 안 전 교수가 각 분야 전문가를 잘 엮을 수 있다고 봤던 것 같다. 그런데 유연한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다.
황: 안철수 전 교수가 실제 각 분야 전문가들을 잘 발굴해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 의문이다. 지금까지 지켜보면 유연하게 소통하는 부분도 사실 기대하기 어려워 보이는데.
문: 뭐 아직은 ‘자리’에 오른 사람이 아니니까. 판단하기는 이르다. 다만 정당생활 수십 년 한 사람처럼 인맥이 있는 건 아니지 않나. 이 때문에 뭔가 탕탕평평하게 인사를 할 수는 있다고 본 거다.
황: 그럼 안 전 교수는 민주당 입당이 유리한가, 아니면 신당을 창당해야 하나.
문: 우선 입당은 아니다. 그건 어찌됐건 한쪽 편을 드는 것 아닌가. 안철수 전 교수는 제3세력이 돼야 한다. 입당은 곧 한쪽 편만 들고 다른 쪽을 포기하는 것이다.
황: 사실 제1 야권인 민주당의 사정도 좋지 못하다.
문: 그 부분은 내게 물어 볼 질문이 아니다. 어찌됐건 난 정치를 안 한다고 선언하지 않았나.
황: 현재 하고 있는 일과 목표들, 정치를 통해 사회적 변혁도 할 수 있는 것 아니냐. 오랜 기업 활동만큼이나 좀더 정치인으로써 경험도 해봄직 한데.
문: 난 단순히 기업 활동뿐 아니라 오랜 기간 경실련 활동도 해봤고, 기업 캠페인 활동도 해봤다. 이것으로 충분하다. 정계에 다시 입문해서 뭔가를 해볼 생각은 정말 없다.
황: 한국 사회에서 비정치권을 대표하는 입장에서 사회를 변화시키고 싶은 생각은 있는 건가.
문: 그거야 시민의 당연한 의무다. 안 전 교수에게 아쉬운 것은 바로 그거다. 기존 정치권에 들어가려고 하는 것. 난 정치권이 아닌 시민사회를 대변하는 사람으로서 국회에 들어 간 거다. 나와 안 전 교수는 전혀 다르다. 그는 본인이 기존 정당을 단일화 협상을 통해 이용하려고 했다. 협상을 했다는 것 자체가 기존 정당을 이용한 것이다. 끝까지 갔어야 했다. 이 부분은 무척 아쉽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문국현 전 대표·황상민 교수는 문 ‘경영한류 전도’ 황 ‘괴짜 심리학자’ 문국현 전 창조한국당 대표(현 뉴패러다임 인스티튜트 대표)는 지난 17대 대선에 제3세력 후보로 등장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인물. 문 대표는 기업인 출신이라는 것과 합리적 보수라는 이미지 때문에 안철수 전 교수와 비교 되고는 한다. 대선 출마 전 국민의 기대가 높았다는 점도 두 사람이 닮은 점이다. 문 대표는 지난 18대 대선에서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한 바 있다. 대선 출마 당시 ‘사람이 희망이다’를 역설했던 문 대표가 ‘사람이 먼저다’라고 말하는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해 보였다. 현재 문 대표는 본연의 모습인 기업가로 돌아가 활동 중이다. 주로 중국에 머무르며 중국 기업들의 경영혁신 컨설팅을 하고 있다. 문 대표가 중국 기업에게 전하려는 것은 ‘사람 중심 창조경영’ ‘노 패러다임 경영’과 같은 가치다. 중국 기업에 한류 전도사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괴짜 심리학자’로 불리는 황상민 연세대 교수도 지난 18대 대선에서 이슈메이커로 등극한 인물. 서울대와 미국 하버드대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황 교수는 이미지의 심리, 대중문화, 디지털 매체, 소비자 행동, 신화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두고 있다. 현재는 연구법인 위즈덤센터에서 연구를 수행하면서 TV와 저술활동을 통해 활동 반경을 넓히고 있다. 배해경 기자 ilyohk@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