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시장이 내년 지방선거에서 재선에 도전할 것이라는 의지를 재천명했다. 이번에는 ‘민주당 경선 출마’라는 단서까지 붙였다. 정치권에서 거듭 제기되는 ‘안철수 신당행’에 일단 선을 그었다는 평가다. 재선에 성공할 경우 박원순 시장은 야권의 잠재적 대권주자 반열에 오른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노원병 보궐선거 이후 신당 창당을 통해 차기 대권을 바라보는 안철수 후보 진영에서 경계의 목소리가 나온다. 민주당 역시 이미 당내 서울시장을 노리는 의원이 적지 않아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 박원순 시장 주변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윤희웅 조사분석실장은 “야권의 헤게모니(주도권) 싸움이 정리되지 않은 상황, 그리고 내년 지방선거까지 수많은 변수가 남아있는 시점에서 박원순 시장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발언”이라고 분석했는데, “박 시장이 안철수 신당에서 내년 서울시장 선거에 나설 경우 민주당 후보와의 단일화 과정에서 입장이 난처해진다. 반대로 민주당 후보로 나설 경우 안철수 신당 측으로부터 ‘서울시장 후보를 양보하라’는 요구를 받을 때 당의 보호를 받으며 단일화 협상에 나설 수도 있고 아니면 지난 서울시장 선거에서 안철수 후보가 그랬던 것처럼 신당 후보에게 통 크게 양보하는 선택을 할 수도 있게 된다. 결국 현재 상황에서 야권에 피해를 주지 않는 전략을 선택했다”고 부연 설명했다.
시각차는 존재하지만 박 시장이 ‘재선 굳히기’에 들어갔다는 것이 정가의 관측이다. 특히 올해 초부터 박 시장이 민주당 경선을 대비하고 있는 정황이 포착됐다. 지난 3월 중순경 박 시장은 서울 여의도의 한 음식점에서 민주평화연대(민평련) 소속 의원 15명과 저녁식사를 했다. 이 만남은 박 시장이 직접 주최한 것이었다. 민평련은 고 김근태 의원(GT) 주도로 1994년 출범한 모임. 민주당 내에서 친노그룹 다음으로 영향력이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박 시장과 민평련 회동은 기동민 서울시 정무부시장이 다리를 놓았다고 한다. 민주당의 한 상근당직자는 “기동민 부시장은 김대중 전 대통령 비서실을 거쳐 김근태 의원 정책보좌관을 맡았던 대표적인 GT계 인사”라며 “국회 안에서도 손꼽히는 선거 전략가다. 앞으로 박원순 시장의 ‘킹 메이커’로까지 나설 가능성이 있다”라고 평했다.
또 다른 민주당 관계자는 “기동민 부시장은 지난 대선 당시 안철수 캠프와 문재인 캠프 양쪽에서 모두 ‘오더’를 받았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박 시장 쪽에 남기로 했다는 것은 ‘박원순 대통령 만들기’를 위해서 아니겠느냐”라며 “GT계도 시간이 지날수록 밖에서 비바람을 맞는 것(박 시장의 안철수 신당 참여를 비유)보다 민주당이라는 울타리가 있는 쪽을 선택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라고 전했다.
박 시장의 정치권 행보에 속이 타는 쪽은 공교롭게도 안철수 후보 진영이다. 안 후보가 국회 입성 이후 힘을 받기 위해서는 우군이 필요한데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게 앞서의 민평련이기 때문이다. 안철수 후보가 지난해 총선 당시 직접 지지선언을 했던 야권 인사는 무소속 송호창 의원과 고 김근태 의원 부인 인재근 의원이 유일했다. 사실상 GT계를 향한 ‘러브콜’인 셈이었다.
그런가 하면 지난 대선캠프에서 핵심 역할을 맡았던 유민영 공동대변인, 김형민 기획실장 등도 GT계로 분류되고 공동선대본부장을 맡았던 박선숙 전 의원 역시 민평련과 가깝게 지냈다. 하지만 현재 세 사람은 표면에서 노원병 보궐선거를 돕지 않고 있는 상황. 이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GT계 시선이 바깥의 안철수 후보에서 박원순 시장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전계완 매일P&I 대표는 “박 시장의 이번 재선 출마 선언은 일차적으로는 재선 굳히기고, 멀리 내다보면 안철수 신당과 민주당 어디에도 종속되지 않겠다는 정치적 독립선언이었다. 민주당에서 다른 후보를 내기 껄끄러워질 것”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이미 민주당 내부에서는 박 시장의 재선 도전에 관한 반발 기류가 일고 있다. 서울시장 자리는 대권으로 직행할 수 있는 ‘골든 티켓’이라는 점에서 무조건 양보할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실제 지난 서울시장 선거 단일화 과정에서 패했던 박영선 의원이 재도전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많고, 민평련 출신 중에서도 최재성 이인영 의원 등이 차기 서울시장을 노릴 만한 인물로 꼽힌다.
서울시 안팎에는 “박 시장이 재선은 기본, 다음 대권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는 이야기가 꾸준하다. 지난해 대선 이후 서울시 내부에서는 주목할 만한 두 가지 흐름이 생겼다. 하나는 박원순 시장 직속 또는 정무팀 지시로 인한 정보수집 및 보고 업무가 활발해졌다는 것과 협동조합·사회적 기업 등을 육성하는 경제진흥실 소속 사회적 경제과에 힘이 실리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시 소속 한 주무관은 “서울시에서 최근 관련된 사업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민주당 인사를 서울시로 영입하려는 노력이 있었고 결국 무산됐던 것으로 안다”고 전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서울시 정무부시장실 관계자는 “최근 서울시에 새로 영입된 사람은 없다. 서울시 채용은 전부 인재개발원을 통해 공개되고 있다”라고 부인했다.
앞서의 서울시 관계자는 “박원순 시장은 대인관계가 넓고 유연한 성격을 갖고 있다. 그래서인지 보수, 진보 할 것 없이 만나본 사람들이 다들 좋게 평가하는 편”이라며 “보수 언론조차 박원순 시장에 대한 악의적인 공세가 별로 없지 않나. 그만큼 유연성을 발휘해가며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박 시장이 일반 가정집을 돌아다니며 하룻밤을 지내거나 시시콜콜한 잡무까지 SNS를 통해 공개하는 등 ‘정치적 행보’가 지나치다는 볼멘소리도 상존한다.
한편 박원순 시장이 공을 들이고 있는 협동조합사업은 기존 정당결사체보다 느슨한 형태면서도 전국적으로 조직망을 갖출 수 있기 때문에 새누리당에서도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새누리당 대변인실 관계자는 “박 시장이 협동조합을 대권에 이용할 것이라는 것은 너무 음모론적 이야기 같다”면서도 “사실이라면 안철수 후보의 새 정치보다 구체적인 플랜이기는 하다. 야권 대권 경쟁에 있어 자연스럽게 눈길이 쏠리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