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형 가치주 과열 속 대형 가치주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일요신문 DB
한국거래소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으로 집계한 유가증권시장의 10대그룹 소속 12월 결산법인 69개사의 2012년도 유보율은 1441.7%였다. 유보율은 잉여금을 자본금으로 나눈 비율로, 벌어들인 현금을 얼마나 쌓아놓고 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 자본금의 14배가 현금으로 쌓여있다는 뜻이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휩쓴 2008년 말(928.9%)보다 무려 517.8%포인트나 증가했다.
10대그룹 상장 계열사의 자본금은 약 28조 원으로, 2008년 말 당시 10대그룹 상장사들의 자본금(25조 5000억 원)보다 10%가량 늘어나는 데 그쳤지만 잉여금은 같은 기간 235조 5589억 원에서 405조 2484억 원으로 72% 급증했다. 금액으로는 170조 원인데, 이 기간 10대그룹이 거둬들인 순이익이 약 190조 원인 점을 감안하면 일부 배당으로 지출한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곳간에 쌓아뒀다는 뜻이 된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지난 4년간 10대 그룹이 거둬들인 막대한 이익이 고환율 등 수출대기업 중심의 ‘MB노믹스’에 힘입은 것인 만큼 이제는 곳간을 열어 투자를 늘리고 일자리를 만들어 달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재계는 경제민주화 등 사업에 지장을 초래할 규제를 철폐해 달라고 맞서고 있다.
익명의 한 자산운용사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재계가 툭하면 규제철폐를 요구하지만, 지금 그렇게 규제가 많다면 과거에는 왜 투자를 했고, 지난 4년간 벌어들인 어마어마한 이익은 어떻게 설명할 것이냐”라고 반문하며 “결국 재계로서는 글로벌 경기상황이 불투명한 지금 상황에서는 투자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기업이 벌어들인 돈을 곳간에 재워둔 채 상황만 살핀다면 ‘가치주 스토리’가 힘을 받는다. 가치주 스토리는 부채를 뺀 기업의 순자산이 주가보다 얼마나 높고, 낮으냐를 따지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올해 순자산이 100억 원, 시가총액이 90억 원이라고 치자. 시장가치가 장부가치보다 낮으니까 이를 반영해 주가가 10% 오를 것으로 예상하거나, 장부가치가 시장가치보다 낮은 이유가 향후 부실 가능성을 반영한 것이라면 주가가 더 떨어질 것으로 예상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의 투자지표는 주가순자산비율(PBR)인데, 주가가 주당순자산(순자산을 발행주식수로 나눈 금액)의 몇 배인가로 표시된다. PBR이 1배라는 뜻은 시장가치와 장부가치가 같다는 뜻이다. 참고로 최근 한국거래소는 주식시장을 PER(주가수익비율)와 PBR로 파악할 수 있는 통계서비스를 시작했다.
가치주 투자 국면에서는 보통 자산을 많이 가진 중소형주가 두각을 나타내는데, 지난해부터 이미 중소형주의 주가상승이 상당부분 이뤄진 만큼 앞으로는 대기업 가운데 자산가치 대비 저평가된 종목을 발굴하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최근 가파른 상승세를 보인 LG전자가 좋은 예다. LG전자의 자본총계는 지난해 말 기준 12조 7000억 원인데, 시가총액은 12조 원에 불과했다. PBR이 1배 아래로 떨어졌다는 뜻인데, 적자로 자본총계가 줄어들지 않는다면 주가는 장부가치를 회복하는 게 보통이다. LG전자는 올 1분기 시장의 기대를 넘는 규모의 흑자를 기록했는데, 이에 힘입어 주가가 급등했다.
가치주 국면에서의 또 다른 투자기회는 배당이다. 예전 중소형 가치주가 주도하던 때와 달리 지금은 대형 가치주에 대한 기대가 높다. 10대 그룹은 1400%가 넘는, 전체 상장사 기준으로도 900% 가까운 유보율을 기록한다는 뜻은 그만큼 배당할 재원이 쌓여있다는 뜻이다. 지속적인 이익 성장과 이에 따른 주가 상승으로 수익을 챙기지 못한다면 주주로서는 배당을 통해 수익을 거두려 할 수 있다. 특히 대형 가치주에는 외국인 지분율도 높은 공통점이 있다.
한 자산운용사 주식운용본부장은 “우리 기업의 성장동력이 처지면, 외국인들은 배당을 통해 수익을 거두려할 게 뻔하다”며 “현재 우리나라 상장사의 배당성향, 즉 이익금 대비 배당금 비율은 주요 선진국 대비 절반에 불과하다. 또 저금리 기조가 정착되면서 2~3%의 배당수익률에도 투자자들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점은 배당 투자를 눈여겨 볼 이유”라고 말했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