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그룹 빌딩 전경. 일요신문 DB
금융감독원의 전자공시시스템에서만 겨우 나이와 ‘한국예술종합학교 졸’이라는 최종학력만 알 수 있을 뿐이다. 동양그룹 계열사 다른 임원들의 경우 모두 이 시스템 상에 전공까지 표시되는 데 반해 김 대표는 전공도 기재돼 있지 않다. 상장사의 대표이사가 이토록 비공개성을 띠는 것은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라는 게 재계의 시각이다.
김 대표의 특별함(?)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전자공시에 따르면 김 대표는 1975년생으로 나와 있다. 오너 일가가 아닌 CEO치고는 상대적으로 젊다. 그럼에도 김 대표는 동양네트웍스뿐만 아니라 동양생명과학(바이오·헬스케어, 이하 비상장), 애드엠(광고대행), 메디원(헬스케어), 동양온라인(온라인 서비스)까지 총 5개 회사의 대표이사직을 수행하고 있다.
이런 김 대표가 최근 유학을 이유로 회사에 갑작스레 사의를 표명한 사실이 <일요신문>에 의해 처음 확인됐다. 그렇다면 지난 2010년 그룹의 유통·전자상거래 회사인 ‘미러스’의 대표로 동양에 발을 들인 뒤 승승장구하던 김 대표가 3년 만에 사의를 표명한 이유는 뭘까. 동양그룹 관계자는 “김 대표가 ‘많이 지쳤다’며 유학을 위해 미국으로 가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말했다.
그렇게 잘나가던 김 대표가 ‘지친’ 까닭은 무엇일까. 그의 동양 입성부터 따라가 보자. 지난 2010년 5월 동양그룹은 자본금 1억 원으로 ‘미러스’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이 회사의 초대 대표이사로 등장한 인물이 바로 김철. 현재현 회장의 부인이자 고 이양구 창업주의 장녀인 이혜경 (주)동양 부회장이 지분 100%를 갖고 설립된 회사였다.
이후 현 회장-이 부회장 슬하의 네 자녀(현정담-승담-경담-행담)들이 2011년 이 회사의 유상증자에 참여해 각각 14.3%씩의 지분을 확보했다. 어머니에서 자녀들에게로 지분이 이동한 것일 뿐, 오너가가 지분의 전량을 소유한 사실에는 변화가 없다.
이 같은 지분 구조를 가진 미러스가 그룹의 도움으로 설립과 동시에 급성장하자 의심의 눈초리가 늘어났다. 결국 이 회사는 지난해 7월 그룹의 IT(정보기술) 서비스 회사인 동양시스템즈에 흡수 합병돼 동양네트웍스로 새 출발을 하면서 상장사가 됐다.
김 대표는 동양과 연이 맺어지기 전 조그만 개인 스튜디오를 운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동양그룹 관계자는 “김 대표가 디자인 컨설팅 일을 하면서 회사와 업무적으로 관련을 맺게 됐다”고 설명했다. 동양 측이 밝힌 김 대표의 대학 전공도 디자인이다.
이렇다 할 경영 이력이 없는 김 대표가 전격적으로 대기업집단 계열사 대표이사로 발탁될 만한 이유에 대해 동양 측은 ‘트렌디한 마인드’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것 역시 다분히 주관적인 이유일 뿐 계량화될 수 있는 성질의 소위 ‘스펙’은 아니다. 이와 관련해 재계에서는 김 대표가 창업주의 딸인 이혜경 부회장의 두터운 신임을 얻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동양 측은 이런 김 대표를 놓아줄 생각이 없어 보인다. 동양 관계자는 “유학을 떠나겠다는 뜻을 통보해 온 것이 맞지만 회사가 어려운 상황이라 쉽게 떠나지는 못할 것”이라며 “회사를 그만두는 문제는 김 대표 개인이 결정할 문제는 아니며 회사와 상의를 거쳐야 하는 문제로 현재까지는 김 대표의 유학은 미정”이라고 밝혔다. 동양 측은 휴직처리를 해 줄 수도 있는 사안이라는 입장이다.
이 시점에서 김 대표가 회사를 그만두는 이유를 ‘지쳤다’고 표현한 부분에 눈길이 쏠린다. 동양그룹에 따르면 젊은 김 대표의 전격 발탁을 두고 그룹 내부에서도 갖가지 이유로 반발이 심했고, 그룹 안팎에서 끊임없이 김 대표와 관련한 억측과 루머가 쏟아져 나왔다.
그룹 내에서 수십 년간 근무하면서 임원의 자리까지 힘들게 올라간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김 대표가 혜성처럼 나타나 그룹 내에서 승승장구했기에 그럴 만했다. 보수적인 분위기의 동양그룹이라는 점 때문에 기득권 세력의 김 대표에 대한 시기와 질투가 심했다는 전언이다. 특히 김 대표가 미러스 입사와 동시에 그룹의 소모품 구매 효율화 작업에 앞장서면서 기존 구매담당 임직원들 사이에서 강한 불만이 표출됐다는 얘기도 있다.
하지만 김 대표는 구매 효율화 작업을 넘어 그룹의 소모성자재 구매 통합을 이뤄냈고, 이 사업을 미러스의 MRO(소모성자재구매대행) 사업으로 정착시켰다. 그럼으로써 회사의 덩치도 쉽게 키울 수 있었다. 김 대표가 독창적 발상과 충만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입지전적 성공을 거둔 인물이지만, 기존 제도권 사회가 이를 수용하지 못해 계속된 마찰이 있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한편 구조조정 중인 동양은 회사가 조금 안정을 찾을 것으로 예상되는 하반기께 김철 대표의 ‘PI(개인 신상 공개)’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동양 관계자는 “김 대표도 자신과 관련한 회사 내외부의 갖가지 루머들을 잘 알고 있지만 젊은 나이에 주목 받는 것에 대해 부담스러움을 느꼈을 뿐”이라며 “회사가 안정되면 하반기께 김 대표의 PI를 추진할 계획을 갖고 있으며, 시기와 방법 등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연호 기자 dew90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