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이 지난 11일 대통령 방미 수행 중 휘말린 성추문에 대해 해명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원 안은 박근혜 대통령이 미 상공회의소 주최 오찬에 참석한 모습.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사진제공=청와대
박근혜 대통령의 미국 방문을 수행 중이던 청와대 이남기 홍보수석은 미국 시각으로 지난 9일 오전, LA 빌트모어 호텔에 마련된 현지 기자실에서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이 전격 경질됐다”며 “경질 이유는 방미 수행 기간 중 윤 대변인이 개인적인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됨으로써 고위 공직자로서 부적절한 행동을 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의 미국 방문 기간 중 누구도 예상치 못한 소식이었다. 이 수석이 말한 윤 전 대변인의 개인적인 불미스러운 일은 다름 아닌 대사관 인턴직원인 현지 교민을 성추행했다는 것이었다.
사건은 현지시각으로 지난 7일 밤부터 불거졌다. 그날은 박근혜 대통령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과 공동기자회견이 있었으며 백악관 오찬, 언론 인터뷰, 그리고 오후에는 한미동맹 60주년 기념만찬이 진행됐다.
윤창중 전 대변인은 기념만찬을 마친 후 자신이 머무는 페어팩스호텔 근처에 위치한 월러드호텔로 자리를 옮겼다. 여기에는 자신의 운전기사와 함께 주미대사관 소속 인턴직원인 A 씨(여·21)가 동행했다. 윤 전 대변인도 지난 11일 기자회견에서 “그동안 A 씨의 업무 소홀에 질책을 많이 해 위로 차원에서 운전기사와 함께 술자리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A 씨는 재미교포 1.5세 재원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기간 동안 대변인을 수행하는 임무를 맡았다.
세 사람은 사건 당일 만찬이 끝난 직후부터 호텔 바에서 술을 함께 마신 것으로 알려졌다. 윤 전 대변인은 “30분간 화기애애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알려진 A 씨의 주장에 따르면 이 술자리 전후 윤 전 대변인이 자신의 엉덩이를 ‘움켜쥐었다(grabbed)’고 한다. 일설에는 윤 전 대변인이 자리를 정리하고 자신의 호텔방으로 A 씨를 불러 술 한잔을 더 권유해 그 때 사건이 벌어졌다고도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방미 중 한미 동맹 60주년 기념 만찬에 참석했다. 사진제공=청와대
사건은 그 다음 날인 8일 새벽까지 이어진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윤 전 대변인은 8일 새벽 5시경, A 씨를 자신의 방으로 다시 불렀다고 한다. A 씨는 윤 전 대변인의 부름을 거부했지만, 윤 전 대변인이 욕설을 섞어가며 방으로 올 것을 요구해 어쩔 수 없이 윤 전 대변인의 방을 찾았다고 한다. 그런데 방에 있던 윤 전 대변인은 알몸 상태였고 이에 놀란 A 씨는 다시 방을 뛰쳐나왔다고 한다. 윤 전 대변인은 이 부분에 대해서도 “욕설을 한 적도, A 씨를 부른 적도 없다”며 “아침에 노크를 하기에 급한 일이 있는 줄 알고 황급히 속옷만 입은 상태에서 문을 열었더니 A 씨가 있어 ‘여기 왜 왔느냐’며 문을 닫았다”고 말했다.
A 씨는 그날 오후 12시 30분경 미국 현지 경찰에 윤 전 대변인의 추행 사실을 알렸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곧바로 주미 한국대사관에 이 같은 사실을 알렸고 신원 확보를 요청했다. 경찰은 그날 오후 호텔에 머물고 있는 윤 전 대변인을 찾았지만, 윤 전 대변인은 외교사절이라는 이유를 들어 조사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진 바 있다. 경찰은 조사를 거부한 윤 전 대변인에게 “조사가 끝난 것이 아니니 일단 호텔에 머무르라”고 지시했다는 말이 있지만 윤 전 대변인은 “현지 경찰의 조사를 받은 바 없다”고 일축했다.
이후 윤 전 대변인은 워싱턴DC 인근 덜레스 국제공항으로 부랴부랴 떠났다. 호텔에 대부분 짐을 남겨뒀다고 해 ‘도망치듯’ 귀국한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는 대목. 게다가 그가 상부에 “부인이 위독해 급히 한국에 들어가야 한다”는 거짓 보고까지 하고 1시 30분경 한국행 비행기를 탄 것으로 전해진 바 있다.
하지만 윤 전 대변인은 “부인 얘기는 한 적이 없다”면서 “이남기 홍보수석이 ‘재수 없게 됐다. 성희롱에 대해서는 변명을 해봐야 납득이 되지 않는다. 1시 30분 비행기를 예약해 놨으니 빨리 워싱턴을 떠나서 한국으로 돌아가라’고 지시해서 따랐다”고 해명했다.
이로써 최소한의 사실, 즉 신체접촉과 ‘민망한 대면’은 일단 확인된 셈이다. 이제 사건의 쟁점은 ‘엉덩이를 움켜쥐었느냐, 허리를 툭툭 쳤느냐’와 ‘윤 전 대변인이 A 씨를 호텔로 불렀느냐, 아니냐’, 마주했을 때 '알몸이었느냐, 속옷을 입고 있었느냐' 등이 될 것으로 보인다.
사실 사건 자체보다는 청와대의 도피·은폐 의혹 후폭풍이 더 거세질 듯하다. 지금껏 청와대는 윤 전 대변인이 자의에 의해 중도 귀국했다고 밝혀왔다. 모든 것이 윤 전 대변인 개인의 잘못이라는 것이다. 반면 윤 전 대변인은 이남기 수석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귀국을 종용했다고 강조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당한 측면이 있어 혼자 모든 것을 짊어지고 죽지는 않겠다는 심산으로도 읽힐 수 있다. 이 수석은 윤 전 대변인의 귀국 종용 사실을 부인해 앞으로 진실공방이 불가피하다. 이 과정에서 더 큰 폭탄이 터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윤 전 대변인으로선 이제 더 이상 잃을 게 없기 때문이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