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정한 올림머리와 소박한 한복은 과거 육영수 여사의 트레이드마크였다. 육 여사의 단아하고 서민적인 언행은 독재시대의 엄혹함을 그나마 조금이라도 해소시켜 주는 좋은 완충재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 입성 뒤부터 어머니 육 여사의 패션과 언행을 거의 그대로 소화해내고 있다. 특히 이번 방미 때 보인 다채로운 한복은 ‘박근혜의 한복 정치’를 알리는 신호탄이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지난 5일 동포간담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착용한 한복. 미색 치마 저고리에 붉은 옷고름으로 포인트를 주었다. 사진제공=청와대
직접 드레스코드를 챙기는 것으로 알려진 박 대통령은 한복을 입음으로써 다양한 효과를 얻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무엇보다 ‘문화’를 강조했던 박 대통령이 몸소 한복을 입음으로써 훌륭한 홍보대사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류가 창조경제의 첨병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몸으로 보여주는 셈이다.
박 대통령은 첫 방미 일정에서 세 차례에 걸쳐 한복 패션을 선보였다. 지난 5일 뉴욕에서의 첫 일정이었던 동포간담회에서 박 대통령은 미색의 치마와 저고리에 붉은 옷고름으로 포인트를 준 한복을 입고 나타났다. 이튿날 워싱턴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서 열린 ‘한미동맹 60주년 기념만찬’에서도 한복 패션은 계속 됐다. 이번엔 흰색 바탕에 연분홍색 꽃무늬가 수놓인 화려한 저고리와 비취색 치마로 우아함을 강조했다. 또한 마지막 날인 8일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동포간담회에서도 분홍빛으로 통일한 치마와 저고리에 그린 계열의 옷고름이 달린 한복을 입고 나왔다.
이 같은 다양한 한복 패션은 박 대통령의 생각이 고스란히 반영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이미지컨설턴트협회 정연아 회장은 뉴욕 동포간담회에서 입었던 한복을 ‘베스트 패션’으로 꼽으며 자신의 이미지를 정확히 전달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분석했다.
정 회장은 “전체적으로 우아한 이미지를 풍기면서도 붉은 옷고름을 통해 여러 메시지를 전달했다. 빨간색은 태극의 한 요소이자 승리의 상징이다. 새누리당 로고의 색깔이기도 하다. 이를 통해 박 대통령은 ‘나 승리하고 미국에 왔어요’라는 뜻을 명확히 전달했다”고 말했다. 다만 정 회장은 “이미지라는 것은 객관화 돼서 평가받아야 하나 박 대통령은 일방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단점은 보완해야 할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장이미지 연구소 장소영 소장도 “올림머리에 다리가 긴 체형의 박 대통령은 한복이 잘 어울린다. 한복이 화해와 소통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한복 착용이 이미지적인 측면보다 정치적 요소가 더 강하게 반영됐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장 소장은 “한복이 예복 개념으로 공식적인 자리에서 입을 수는 있으나 외국인의 시선에서는 민속의상이다. TPO(시간, 장소, 상황)을 고려해볼 때 한복은 비즈니스 자리에서는 낯선 의상이다. 또 한복에 포커스가 집중돼 다른 요소들이 배제되는 경향도 있다”고 말했다. 이를 정치적 코드로 해석해 보면 박 대통령의 정치적 과실이나 허점이 한복 이미지 메이킹에 묻히는, 일종의 본질의 희석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얘기다.
한편 한복업계에서는 전반적으로 박 대통령의 ‘한복 사랑’을 반기는 분위기다. 한복단체총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는 조효순 명지대 명예교수는 “우리 전통의 미를 뽐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한복을 통한 다양한 한류문화 전파에도 힘을 실어주고 있다. 우아하고 기품 있는 한복의 장점을 세계에 알려주니 고마울 따름이다. 한복 디자이너들도 고무적인 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전통적인 측면에서 바라볼 때 몇 가지 아쉬움이 있다며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조 교수는 “한복은 예의를 생명처럼 존중하는 복식이다. 아무렇게나 입는 옷이 아니라 때와 장소에 따라 정예장, 준예장, 약예장으로 구분해 격식을 갖춰 입어야 한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이런 부분에서 약간 아쉬운 부분이 눈에 보이는데 조금 더 신경을 써줬으면 한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조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전통적으로 외출 할 때는 표의인 두루마기를 입어야 하는 게 올바른 한복 착용법이다. 특히 국가행사에 참여하거나 해외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반드시 표의를 입어야 한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경우 공식적인 자리에서도 두루마기를 입지 않아 예의에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이때 신발도 제약을 받긴 하나 현대사회에서는 크게 개의치 않는다고 한다.
또한 조 교수는 “박 대통령이 이왕 전통한복을 널리 알리겠다고 마음을 먹은 만큼 직물부터 신경 써서 골랐으면 하는 생각도 든다. 양단(해외수입용)보다는 삼베, 모시 등의 우리 전통의 직물에 세계 제일의 기술이라 평가받는 천연염색까지 곁들지는 게 더 좋지 않겠느냐. 이게 진짜 우리나라 ‘전통의 멋’이다”고 말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