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중 전 대변인을 잘 아는 이들은 ‘대형사고’는 예견된 것이었다고 말한다. 사진은 성추문에 대한 해명 기자회견.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이번 한미정상회담의 최대 성과가 무언인지 아십니까.”
한 절친한 선배 언론인(방미 수행단)이 기자에게 물었다. 대답을 머뭇거리자 그는 이내 “윤창중 대변인을 아웃시킨 겁니다”라며 씁쓸하게 웃었다. 기자도 어색하게 따라 웃긴 했지만 “‘윤창중’이라는 사람이 청와대에 입성하고 난 뒤 얼마나 ‘문제아’였기에 그런 농담까지 청와대 직원들과 출입기자들 사이에 나돌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언론인은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정권 입성 뒤 안하무인식 행적의 이유를 두 가지로 분석했다. 먼저 윤 씨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의 1등공신임을 너무 과신했다는 평가가 있다. 앞서의 언론인은 이에 대해 “지난 대선은 보수와 진보의 벼랑 끝 대결로 예상불가의 박빙 대결이었다. 그때 윤 씨는 종편에 연일 출연하며 진보진영과 소위 백병전을 치렀다. 대선 결과 분석에서도 종편에서 연일 보수진영의 논리를 대변하는 방송을 내보낸 것이 이념대결에서 우위를 점하는 중요한 모멘텀이 됐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윤 씨는 바로 그 이념대결의 최전선에 서서 전투를 이끌었다. 그리고 어렵게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됐다. 당연히 윤 씨 어깨에 힘이 들어가지 않겠는가”라고 밝히면서 “박 대통령도 윤 씨를 발탁하면서 ‘개인적으로 고맙다’는 뜻을 표명한 것으로 알고 있다(실제로 지난해 대통령 선거운동이 한창이던 12월 어느 날, 박근혜 후보는 ‘윤창중 칼럼세상’의 윤창중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고마움을 표시했다. 종편에 출연해 야당 후보를 비판하고 자신을 열심히 옹호하는 그의 ‘활약’을 격려하는 게 좋겠다는 측근들의 건의를 받아들인 것이다). 내가 아는 한 또 다른 보수성향 방송인도 종편에 출연해 ‘박근혜 방패’ 역할을 적극적으로 한 공으로 청와대 자리를 보장받았다는 얘기도 들었다. 이렇게 대선에 지대한 공을 세웠다고 하는 사람들은 정권에 참여하게 되면 특히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경향이 강하다. ‘봐라, 내가 해냈지 않느냐’는 강한 자기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윤 씨도 치열한 대선을 치르면서 기고만장해져서 결국 대형사고까지 친 것”이라고 말했다.
윤 씨는 자신이 대선 승리의 1등공신임과 동시에 감히 ‘박근혜 가정교사’를 자임했을 수도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007년 경부터 윤 씨와 상당히 가까운 사이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박 대통령이 윤 씨의 칼럼을 상당히 좋아했고 이를 알아챈 비서진은 박 대통령이 보는 기사 스크랩 맨 위에 윤 씨 칼럼을 올렸다고 한다. 이를 전해 들은 윤 씨도 상당히 으쓱해했다는 게 주변의 전언이다. 윤 씨의 ‘기고만장’ 이면에는 ‘내가 (칼럼을 통해) 박근혜의 생각을 움직인다’는 왜곡된 자부심도 상당히 강하게 자리잡고 있었을 것이다.
이런 저변의 정황은 그가 인수위-청와대 대변인으로 깜짝 발탁되었을 때 기자들이나 국민들은 크게 놀랐겠지만 적어도 윤 씨 자신은 ‘대변인도 성에 차지 않는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분석은 이번 방미 기간 중 자신의 직속상관인 이남기 홍보수석의 통제를 전혀 받지 않은 것은 물론, ‘해명기자회견’에서도 호칭을 ‘이 수석’으로만 언급하는 그의 ‘정신세계’에서 발견할 수 있다(홍보수석실은 차관급인 이남기 수석을 정점으로 윤 전 대변인과 김행 대변인, 최형두 홍보기획비서관, 백기승 국정홍보 비서관, 최상화 춘추관장 등 5명의 1급 비서관들로 이뤄져 있다. 수석 아래 서열도 홍보기획비서관-대변인-국정홍보비서관-춘추관장 순이라는 점을 따지면 윤 전 대변인은 최 비서관보다 아래인 3위에 불과하다). ‘대선의 백병전도 뛰어보지 않은 사람이 내 상관이 될 자격이 있느냐’는 자신만의 자존감이 이 수석을 ‘상관’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경기도 김포시에 위치한 윤창중 전 대변인의 집 문앞에 진을 치고 있는 기자들. 임준선 기자
이렇게 대선과 청와대 입성 등을 거치며 쌓인 그의 자아도취식 자신감이 이번 성추행 사건의 근본적 원인이 됐다. 그런데 정치권 일각에서는 “윤창중이라는 사람이 원래 자기만의 세계에 빠진 독특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내린다. 주변 환경도 윤 씨가 자기 스스로를 ‘박근혜 다음의 2인자’ 정도로 밀어 올렸겠지만 윤창중 개인의 성격이나 태도도 충분히 이번 사태를 몰고 올 가능성이 있었던, 좀 특이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윤창중’이라는 ‘사람’의 평가에 대해 문제가 좀 있다는 주장의 근거에는, ‘말과 술, 그리고 여자’가 있다. 윤씨는 평소에도 말이 거칠고 직설적이어서 상대방이 당황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게 주변의 공통된 증언이다. 기자들이 윤 씨와 식사를 할 때도 ‘어떻게 대변인의 입에서 저런 상스러운 말들이 나올까 싶을 정도로’ 그의 언사는 거침이 없었고 무례했다고 한다. 정치권에선 “윤 씨가 지인의 집에 초대받아 갔다가 술에 취해 집주인의 친구인 여성에게 ‘걸레 같은 X’이라고 욕을 해 쫓겨난 적이 있다” “2011년 여름 신문사 논설실장으로 있을 때는 한 친박 핵심 의원이 저녁자리에 1시간 정도 늦게 나타나자 계속 거친 욕설을 하며 화를 냈다”는 등의 윤창중 막말 사례가 계속 회자되고 있다. 그는 대선 며칠 전 칼럼에서 문재인 후보 지지자를 ‘정치적 창녀’라고 부르기까지 했다.
윤 씨는 또한 방송에 출연한 뒤 ‘이 팀은 왜 술을 안 먹냐’면서 ‘술자리를 자주 제안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윤 씨와 술이 관련된 일화도 있다. 청와대 주변에서는 “윤 전 대변인의 평소 언행과 술버릇에 대한 걱정이 수차례 여러 경로를 통해 최고위직에 전달됐다. PD 출신인 이남기 수석이 기자 출신인 윤 전 대변인을 전혀 통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고, 결국 이런 일이 터졌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청와대 근무 때도 술 때문에 지각을 하는 등 공직기강에 문제가 있었다는 말도 나온다. 이런 저런 문제로 이 수석이 여러 차례 허태열 비서실장에게 보고를 했지만 묵살됐다는 의혹도 퍼지고 있다.
윤 씨의 공직기강 문제점은 그의 평소 언행을 보면 이미 예견된 것일 수도 있다. 그와 오랫 동안 알고 지냈고 역대 정권에서 요직을 두루 지낸 정치인 A 씨는 그에 대해 “윤창중과 한때 내가 잘 아는 사이인데…곁에서 지켜보면 정서적으로 사람이 안정이 안 돼 있고, 감정절제를 잘 못하는 타입인 것 같더라. 그러니까 자극을 받거나 술을 마시거나 하면 사람이 금방 과격해지는 경향이 있다. 하는 짓이 연극배우 같다”라고 전했다. A 씨는 또한 “평소 여자관계는 어떠냐”는 기자의 질문에 “여자? 그런 걸로 굉장히 유명했다. 술이 좀 들어가면 가까이 있는 여자에게 추근댄다. 평소에도. 그런 부분이 굉장히 심했다고 한다. 윤 씨를 아는 사람들은 그가 언젠가 대형사고를 칠 줄 알았다고 하더라. 박근혜 대통령이 주변 관리를 잘할 줄 알았는데, 박 대통령이…너무 믿고 풀어준 거지”라고 말했다.
새누리당에서도 그의 ‘기행’은 어느 정도 소문이 나 있었다. 그와 고교동창으로 상당히 절친한 정치인인 B 씨는 지난 총선 과정에서 성추행 파문에 휩싸여 곤욕을 치른 바 있다. 그래서 당 주변에서는 윤 씨가 청와대 대변인에 입성하자 “‘둘이 끼리끼리 논다’던데 ‘걱정된다’”는 반응도 많이 나왔다고 한다.
그리고 그를 잘 아는 언론인 C 씨는 윤창중의 ‘인간성’에 대해 “나르시시즘이 강해서 자기가 ‘제왕’인 줄 안다. 유치한 권위의식이 있었단 얘기다. 기자시절부터 자기가 한가닥할 거라고 생각하고 그랬다고 한다. 80년대 제왕적 스타일의 그런 참모들 흉내를 내는 거지 뭐.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라고 말했다.
해외 순방 기간 동안 가장 바쁜 사람 가운데 한 명이 청와대 대변인이다. 최대한 많은 기자들을 접촉하기 위해 하루에 식사도 4~5번 할 정도로 바쁜 일정을 소화한다. 방미에 동행한 80여 명의 취재진 ‘관리’도 오롯이 그의 역할이다. 하지만 윤 씨는 자신에게 꾸중을 들은 오로지 한 명의 여성 인턴을 ‘위로’하기 위해 술판을 벌였다가 전대미문의 성추행 사건을 저지르고 몰래 귀국하는, 씁쓸한 코미디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
김포그니 기자 patronus@ilyo.co.kr
윤창중 씨의 ‘여자’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는 언론사 정보보고에도 올라갈 정도로 이미 알 만한 사람은 아는 이야기였다. 이번 한미정상회담을 취재했던 언론사의 한 고참기자는 윤 씨가 일부 여기자들에게 오해의 소지가 있을 만한 전화를 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 기자는 “정치부 말진들은 주로 젊은 기자들이다. 여기자들도 많다. 그런데 일부 말진 기자들이 정치인들과 밥을 먹는 자리에서 한 여기자가 지나가는 말로 ‘윤창중 대변인이 자꾸 밥 먹자고 전화가 오는데 만나기도 싫은데 귀찮아 죽겠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니까 그 자리에 있던 또 다른 말진 여기자들도 그와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나한테도 그런 전화가 왔었다’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가 회사 정보보고에까지 올랐다. 물론 정치인이 기자와 밥 먹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윤 씨는 기자들과 식사 잘 안 하기로 유명했는데 말진급의 젊은 여기자들만 콕 찍어서 밥 먹자고 한 것은 오해를 살 여지가 없지 않다”라고 말했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