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엔저 공세에 정부와 금융당국은 뾰족한 대응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임준선 기자
일본 정부와 일본은행의 엔저 정책이 이미 지난해부터 이뤄져왔고, 앞으로도 2년간 지속될 것임이 확실하지만 정작 우리 정부와 금융당국은 뾰족한 대응책을 찾지 못하고 상황만 살피고 있다. 엔저 불길을 잡을 아무런 소화도구도 가지고 있지 못한 ‘소국(小國)’의 비애인 셈이다.
이처럼 일본이 엔저를 내세우는 것은 제품의 가격을 떨어뜨려 수출을 늘림으로써 경제를 살리겠다는 의도다. 실제 일본 기업들의 이익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일본 1위 자동차업체인 도요타의 경우 지난해 영업이익이 전년대비 240% 증가했다. 4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던 소니는 흑자를 기록했고, 파나소닉은 내년에 흑자로 돌아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반면 현대자동차의 올 1분기 수출은 전년동기대비 8%, 기아자동차는 10% 줄어드는 등 우리 기업 수출은 위축되고 있다. 우리금융연구소는 엔-달러 환율이 110엔까지 가면 우리 기업의 영업이익이 1년간 26조 원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마땅한 대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가장 손쉽게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은 외환시장 개입이다. 우리 정부는 환율이 급격하게 움직일 때 ‘구두개입’ 등을 통해 속도를 조절한다. 하지만 이 정도 수준에도 미국 등 선진국은 한국 정부가 외환시장에 개입하며 환율을 조작한다며 경고의 목소리를 낸다. 시장에 직접 뛰어들 경우 중국과 같은 ‘환율 조작국’으로 낙인찍힐 우려가 있다. 환율 조작국 위험을 무릅쓰고 개입한다고 해도 원화와 엔화를 직접 거래하는 시장이 없어 원하는 효과를 거두기도 어렵다. 현재 원화의 경우 달러와 교환하는 시장이 있을 뿐이다.
금융당국이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만들어놓은 ‘거시건전성 3종 세트’도 엔저와 같은 상황에서는 효과를 발휘하기 어렵다. 거시건전성 3종 세트란 선물환 포지션 한도 제한, 외환건전성 부담금, 외국인채권투자 과세를 말한다. 이들 정책은 모두 외국인 투자자금이 급격하게 한국시장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게 해 환율 급변동을 막기 위한 것이다. 엔화가 넘쳐나는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정책은 아닌 셈이다.
그나마 대응책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낮춰 원화 통화량을 늘리는 것이다. 실제 최근 세계 각국 중앙은행들은 일본 등 선진국의 양적완화 정책에 맞서 자국 통화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앞 다퉈 기준금리를 인하하고 있다. 5월 들어 한은을 비롯해, ECB(유럽중앙은행), 인도, 호주, 덴마크, 이스라엘, 폴란드, 스리랑카, 벨라루스, 조지아, 케냐 등 무려 11개국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내렸다. 올 들어 가장 많은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낮춘 것이다. 앞서 4월에는 브라질, 헝가리, 터키, 보스와나, 몽고, 5개국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인하했다.
그렇다면 아예 한은이 기준금리를 더 낮추는 방식으로 대대적인 양적완화를 추진하는 것을 어떨까. 그러나 원화는 엔화와 달리 세계 결제시장에서 통용되는 통화가 아니어서 무작정 통화량을 늘리기 어렵다. 엔화는 미국 달러화, 유로화, 영국 파운드화 등과 함께 세계 결제시장에서 안정성을 인정받는 통화다. IMF(국제통화기금)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세계 각국 외환보유액 중 달러화는 63.5%, 유로화는 23.7%, 엔화는 4.7%, 파운드화는 3.0%를 차지하고 있다. 세계 투자자들은 미국 경제가 어려우면 달러를 팔고, 유로화나 엔화를 산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엔화의 경우 세계에서 찾는 소비자들이 있어 통화량을 늘리더라도 소화가 가능하고 결국 일본 정부가 원하는 대로 엔-달러 환율 상승이 이뤄지는 것”이라며 “하지만 원화는 찾는 외국 투자자가 없기 때문에 통화량을 무작정 늘려봐야 환율이 원하는 대로 변하지 않는다. 오히려 국내 물가가 폭등하는 상황만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준겸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