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타파>의 김용진 대표와 최승호 PD가 5월 22일 프레스센터에서 한국인 245명이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했다고 폭로했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뉴스타파>의 1차 발표에 이수영 OCI 회장과 부인 김경자 OCI 미술관 관장, 조중건 전 대한항공 부회장의 부인 이영학 씨, 조욱래 DSDL 회장 등의 실명이 등장하면서 향후 또 어떤 ‘거물’이 걸려들지 초미의 관심이 되고 있다. <뉴스타파>는 오는 27일 두 번째 명단을 공개할 것이라고 밝혀둔 상태다. <일요신문> 취재 결과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재벌 총수 일가가 명단에 포함돼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앞으로 국내 유명 인사들이 조세피난처에 비자금이나 재산을 빼돌렸을 것으로 드러날 경우 큰 후폭풍이 뒤따를 전망이다.
‘버진아일랜드’와 같은 조세피난처들은 그동안 부자들의 ‘재산 은닉지’로 여겨지며 뜨거운 관심을 받아 왔다. 조세피난처는 ‘외환거래법’ 규제망이 약한데다 금융거래의 익명성이 철저히 보장되는 특성으로 인해 탈세 및 ‘부적절한’ 비자금 거래의 주무대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정부 등 사정기관은, 페이퍼컴퍼니 설립 후 현지서 차명계좌를 개설해 불법자금을 운용하는 과정을 밝혀내기가 쉽지 않아 ‘짐작은 하면서도 못 잡는’ 형국이었다. 조세피난처에 누가 ‘둥지’를 틀었고 불법행위를 저질렀는지에 대해 명확히 규명해내기는 상당히 어려운 것으로 전해진다. 덕분에 ‘버진아일랜드’ 등은 그동안 ‘비자금 사각지대’로 알려져 왔다.
<뉴스타파>와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의 공동 취재에 의해 드러난 이수영 OCI 회장(전 경총 회장)과 부인 김경자 OCI 미술관 관장은 재계에서도 예측하지 못했던 의외의 케이스로 알려진다. 이들 부부는 미국발 경제위기가 도래한 지난 2008년 4월 경 버진아일랜드에 페이퍼컴퍼니 ‘리치먼트 포레스트 매니지먼트’를 설립해 수십만 달러 규모의 자금을 국외 계좌에서 운용했다.
의외의 인물이 1차 발표에서 드러나자 향후 공개될 2차 명단에도 뜨거운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현재 명단을 확보하고 있는 <뉴스타파>의 한 관계자는 지난 23일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버진아일랜드 리스트에 오른 국내 재계 인사들이 워낙 많다보니 당분간 이쪽(재계) 인물들을 확인하는 데 집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2차로 공개될 4~5명에 대해서도 이 관계자는 “이름만 대면 초등학생도 알 만한 대기업 인물들이 줄줄이 나오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1차 때보다 더 비중 있고 이름이 널리 알려진 사람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는 것.
관련 서류를 들어보이고 있는 최승호 PD.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버진아일랜드 리스트 확보 소식이 알려지자 가장 세간의 관심을 끈 건 전두환 전 대통령의 비자금 관련 여부였다. 최근 채동욱 검찰총장이 ‘전두환 비자금’ 추적에 ‘올인’할 의사를 내비치면서 검찰 내부에서도 이번 버진아일랜드 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는 후문이다. 최근 ‘CJ 비자금’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 관계자들의 분위기도 이와 비슷하다고 한다. 한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23일 기자와 사석에서 “CJ, 원세훈 전 국정원장, 전두환 비자금 문제 때문에 조세피난처 자료가 (검찰의) 가장 큰 관심사다. 각 사건 담당자들이 ‘버진아일랜드’ 건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뉴스타파> 관계자는 “솔직히 말하면 못 찾았다. (전두환이란 이름이) 사실상 리스트엔 없는 것 같다. 게다가 대부분 차명이어서 밝혀내기도 어렵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페이퍼컴퍼니 설립대행회사 ‘포트컬리스 트러스트 넷’(PTN)과 ‘커먼웰스 트러스트’(CTL) 단 두 곳의 내부 고객명단을 확보한 것일 뿐이다. 이곳에서만 주요 국내 정재계 인사들의 이름을 상당수 발견할 수 있었다”며 “이런 페이퍼컴퍼니 설립대행사가 전 세계적으로 800개가 넘는다. 아직도 확인해야 할 페이퍼컴퍼니 대행회사가 수백 개에 이른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전두환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아예 없을 것이라고 장담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CJ 건과 관련해서도 앞서의 관계자는 “지금까지 확인된 바는 없다. 한마디로 관련자 실명을 발견 못했다는 얘기다. 그러나 대부분 차명으로 존재하는 만큼 앞으로 추가적인 확인을 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문제의 리스트에는 정재계 인사들만 그 이름을 올렸을까. “유명 연예인도 있다면 공개할 생각이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뉴스타파> 측은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다. 한번 고려해봐야 할 것 같다”며 유명 연예인 리스트 확보의 가능성도 일단 열어두는 등 전방위 확인 작업에 들어갈 것임을 내비쳤다.
김포그니 기자 patronus@ilyo.co.kr
조세피난처 ‘버진아일랜드’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것으로 드러난 이수영 OCI 회장(2008년 설립), 조욱래 DSDL 회장(2007년 설립)과 조중건 대한항공 전 부회장의 부인 이영학 씨(2008년 설립)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먼저 이수영 OCI 회장은 전 정권에서 경영자총연합회 회장을 지낸 인물. 전두환 정권 시절 민주정의당 후원회 운영위원 출신으로 1998년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을 역임한 바 있다.
조욱래 DSDL 회장은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의 막내 동생이다. 조 회장의 페이퍼컴퍼니에는 장남 현강 씨도 주주로 참여한 것으로 전해졌다. 효성은 22일 “조욱래 회장과 효성그룹은 현재 사업적으로 아무 관련이 없다”고 해명했다.
조중건 전 대한항공 부회장은 한진그룹 창업주인 고 조중훈 회장의 남동생이다. 조 전 부회장은 월남전 당시 현장에 뛰어들어 미국과의 하역 계약을 따내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이후 조 전 회장은 대한항공(KAL) 부사장, 대한항공 사장을 거쳐 1992년 대한항공 부회장 자리에 올랐다. 조 전 회장은 1997년 퇴직 후 1~2년 간 대한항공 고문으로 활동했다.
김포그니 기자 patronus@ilyo.co.kr
한국인 선호 조세피난처는?
버진아일랜드보다 필리핀·싱가포르
그래픽=송유진 기자 eujin0117@ilyo.co.kr
관세청 외환조사과는 “최근 유명세를 탄 ‘버진아일랜드’가 조세피난처의 전부는 아니다”라고 전한다. 외환조사과의 한 관계자는 “모든 조세피난처가 의혹의 대상은 아니다. 그러나 그동안 관세청은 버진아일랜드가 소속된 중남미 카리브해를 중점적으로 감시해왔다. 동양권에선 홍콩, 싱가포르를 주시해왔다”고 밝혔다. 버진아일랜드, 케이만군도, 파나마로 이뤄진 ‘카리브해 벨트’가 주 감시대상이 된 이유는 이곳이 다른 조세피난처 지역보다 회사 설립이 쉽고 규제도 사실상 없어 한국인 설립 법인수가 총 400여 개에 달하기 때문이다.
이어 관세청 측은 “필리핀과 싱가포르의 경우 파나마 벨트 수준까진 아니지만 외환거래 규제가 별로 없는 데다가 무엇보다 우리나라와 근접해 있어 가장 선호되는 지역”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해 내국인이 조세피난처에 설립한 현지법인수 현황에 따르면 필리핀(1374개), 싱가포르(555개)가 각각 1위, 3위를 차지했다.
이처럼 조세피난처에 설립된 2000곳이 넘는 현지법인들, 과연 적법하게 운영되고 있을까. <뉴스타파>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유령법인(페이퍼컴퍼니) 설립 후 매년 600달러에 달하는 갱신비를 부담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느냐”며 “설립했다는 자체만으로 불법성을 확정짓긴 어려우나 정황상 심증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다. 무엇보다 그간 국세청, 관세청 등이 이런 실태에 대해 의지를 갖고 면밀한 조사를 해왔는지도 의문이다”라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이미 2011년 버진아일랜드 측과 조세정보교환협정을 맺은 바 있다. 한 언론이 법인설립대행업체 내부 자료를 확보해 발표하기 전에 관세청 등이 보다 광범위한 자료를 충분히 확보했을 수 있단 얘기다. 때문에 최근 의혹이 제기된 버진아일랜드 법인설립 한국인 리스트를 국세청 및 관세청 측이 사실상 처음 들었다는 건 직무유기나 마찬가지 아니냐는 또 다른 의혹도 제기될 만한 부분이다.
이에 대해 관세청 측은 24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업무태만한 적 없다. 그동안 (조세피난처들을) 모니터링 해왔다. 다만 불법여부를 밝히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내부고발이 있다든가, 현지에서 금융사고가 나서 저절로 오픈이 되지 않으면 적발해내기 어렵다”고 해명했다.
김포그니 기자 patronus@ilyo.co.kr
현대판 보물섬을 맹폭하라
‘버진아일랜드’ 폭탄에 정재계가 떨고 있다. 최근 확인된 것으로 알려진 정재계 주요 인사 21명 이외에도 문제의 정재계 인사들의 수가 앞으로 어느 정도까지 공개될지는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다. 확실한 건 박근혜 정부가 정권 초부터 지하경제 양성화를 주장함에 따라 국세청을 비롯해 금융감독원, 관세청, 기획재정부 측에서 불법외환거래 수사망을 총동원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요신문> 취재 결과 관세청 및 금융감독원 등은 “조세피난처 전담 ‘기획 테마수사’를 준비 중”이라고 귀띔했다.
관세청 외환조사과는 지난 23일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하는 것 자체가 불법이 아니란 말을 하고 있다. 그러나 100% 합법이라고 말하기도 곤란하다”며 “이번 ‘버진아일랜드’ 리스트 건에 등장한 인사들의 불법성 여부에 대해 파헤치기 어려운 건 사실이다. 게다가 그쪽(뉴스타파)에서 숨겨진 계좌 자료를 갖고 있는지에 대해 국가기관에 오픈을 안 하고 있기 때문에 수사 결과를 속단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관세청 측은 “이번 정권이 지하경제 양성화를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관세청 내부에서도 조세피난처 외환 거래 건이 가장 큰 이슈다. 최근 여론도 좋지 않으니 국부 유출에 대해선 우리도 강경한 조사를 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다”라고 전했다.
금감원도 이번 사건에 작심한 듯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우리도 손 놓고 있지 않다”고 말문을 연 금감원 불법외환거래조사반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조세피난처’ 기획수사를 할 계획이다. 곧 발표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금감원 측은 “사회적 유력인사 및 대기업에 대해서 의혹은 있었으나 심증만으로 조사할 순 없었다”고 토로하면서 “(사회 이슈가 된) 이제야 조사할 명분이 생겼다. 조세피난처 이외에도 대외계정(비거주자가 국내에 오픈한 계정)도 살펴볼 예정”이라고 전했다. 한편 김덕중 국세청장은 “(버진아일랜드 리스트)내용을 분석해 탈세 혐의가 있으면 원칙적으로 처리하겠다”며 강경한 태도를 취했다.
김포그니 기자 patronus@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