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 참사로 총체적 난국에 빠진 박근혜 정부가 분위기 반전을 위해 이명박 정부에서 검증된 김황식 전 총리 활용을 모색하고 있다. 일요신문 DB
총체적 난국으로 치닫고 있는 박근혜 정부로서는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한 ‘깜짝 인사’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 흔히 축구 경기에서는 경기가 잘 안 풀리거나, 패색이 굳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분위기 반전을 위해 ‘조커’라 불리는 걸출한 교체 선수가 투입된다. 최근 정계에서는 박근혜 정부의 난국을 타개할 수 있는 조커로 의외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바로 김황식 전 국무총리다.
“여권 인사지만, 야권에서도 참 탐나는 사람이다. 역대 최악이라 일컬어지는 이명박 정부에서 유일하게 인정받을 만한 사람은 그 양반밖에 없었다.”
야권에서만 20년 넘게 몸담아온 민주당의 한 핵심 당직자가 김황식 전 국무총리를 두고 내린 평가다. 이 당직자는 이어 “이명박 정부에서도 본인의 소신대로 할 말은 했던 사람”이라며 “공식 석상에서는 야권과 맞각을 세우기도 했지만, 사석에서는 ‘말’이 통했던 인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한마디로 ‘박근혜 맨’으로 통하는 정홍원 현 총리와 비교하자면 김황식 전 총리가 눈물 나게 그리울 지경”이라고 덧붙였다. 야권 인사가 여권 인사를 두고 이렇게 극찬을 하는 경우는 분명 드문 케이스다.
이명박 정부 이임과 함께 총리직에서 내려온 지 벌써 3개월여 시간이 흘렀지만, 김황식 전 총리의 몸값은 오히려 상한가를 치고 있다는 것이 정계 안팎의 중론. 정부 내에서도 ‘국무총리로서 여기저기서 치였던 이명박 정부 밑에서 2년 4개월이라는 장기간 동안 자신의 소신대로 업무를 수행해나갔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다. 여권 내에서는 순전히 실력을 두고도 높은 평가를 하고 있다’는 말이 떠돈다. 이와 더불어 총리 비서실에서는 김황식 전 총리를 두고 ‘최근 총리 중 단연 최고’였다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김황식 전 총리의 진면목을 온전히 다 볼 수 있는 장면은 지난 2월, 국회에서 있었던 마지막 대정부 질문 자리. 당시 김 전 총리는 작정하고 나선 야권 의원들의 파상공세에 홀로 맞서며, 조목조목 논리적인 반박을 가해 되레 야권 의원들의 진땀을 빼게 했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을 두고 헌정 사상 가장 나쁜 대통령”이라 악평을 쏟아냈던 김동철 민주당 의원은 가만히 듣고만 있던 김황식 전 총리를 향해 “그만 들어가라”고 소리치자 김 전 총리는 전혀 당황한 기색 없이 “그냥 들어갈 수는 없다. 총리로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이 정부에서 행한 모든 정책 중에는 분명 빛도 있고 그림자도 있다. 그러나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문제를 접근할 필요는 있다”고 반박했다.
국정원의 대선 개입 의혹과 관련해 “너무 명확하고 잘못한 일이어서 총리께서도 할 말이 없지 않느냐”는 정청래 민주당 의원의 공격에는 “난 잘못한 거 없다”며 “책임질 사람은 책임질 것”이라며 당당한 답변을 내놔 마지막까지 강인한 인상을 남겼다. 총리 비서실 관계자에 따르면, 김 전 총리는 이러한 대정부 질문 자리에서 내놓은 답변 상당수가 즉흥적이었다고 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자연스레 여권 내부에서는 김황식 전 총리라는 깜짝 인사 카드가 급부상하고 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물론 아직까지 김황식 전 총리가 어떤 정무직이나 선출직에 내정된다는 식의 구체적인 얘기가 오가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지금 상황이 워낙 급박하기 때문에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라며 조심스럽게 전망했다.
지난 21일, 김황식 전 총리는 자신의 모교인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창회에서 수여하는 ‘자랑스런 서울법대인상’을 수상하게 됐다. 하지만 동창회 측은 “김 전 총리는 최근 독일로 출국했다”며 “수상은 김 전 총리의 아들이 대신하게 됐다”고 밝혔다. 김 전 총리는 지난 3일, 독일로 출국했으며 6개월간 국내 정치인들의 단골 연수 코스로 현재 김두관 전 경남지사,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가 연수중인 베를린자유대학에서 독일 현대사를 공부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로서는 김황식 전 총리의 뜻을 알기 어려우나, 정계 안팎에서는 벌써부터 박근혜 정부가 김 전 총리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여러 가지 시나리오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한 정치 평론가는 “전직 국무총리기 때문에 정무직으로서는 마땅히 갈 곳이 없다. 하지만 선출직이라면 다르다. 오는 10월 재·보궐 선거를 포함해 내년 지방선거라면 충분히 이슈화시킬 수 있는 카드”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그는 “무엇보다 김 전 총리는 대한민국 최초의 호남 출신 총리 아닌가. 박근혜 정부가 내세우는 ‘대통합’ 측면에서도 타당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