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진료비에 불임치료를 포기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불임(난임)부부들에게 ‘비용’은 치료를 막는 현실적인 벽이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진료비에 치료를 포기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들을 돕고자 정부는 지난 2006년부터 일부 시술비를 지원하고 있으나 이마저도 완벽한 해결책은 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직장에서의 눈치, 주변사람들의 편견까지 불임부부를 괴롭히는 요소들은 끝도 없다. 불임의 시대 극복을 위한 해법들을 찾아봤다.
정부에서 지원하는 시술비를 받으려면 일정 요건을 갖춰야 한다. 지원요건은 △난임시술을 필요로 하는 의사 진단서 제출자 △법적 혼인상태에 있는 부부로서 접수일 현재 여성의 연령이 만 44세 이하인 자 △전국가구 월평균소득 150% 이하인 자(맞벌이 부부의 경우 소득이 적은 배우자의 소득은 50%만 합산해 반영)로 모든 요소를 충족해야 한다. 요건이 충족되면 각종 준비서류를 갖춰 부인의 주소지 관할 보건소에 접수하면 된다.
지원결정통지서를 받으면 그때부터 인공수정 시술비 50만 원씩 총 3회까지, 체외수정(시험관 시술)은 180만 원(기초생활보장수급자는 300만)씩 총 4회까지 지원된다. 서울 강남구의 경우 5회 100만 원이 추가 지원된다.
하지만 정부의 지원으로는 턱도 없이 부족하다는 게 불임부부들의 하소연이다. 시험관 시술의 경우 각종 검사에 주사까지 합하면 수백만 원을 훌쩍 넘기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원횟수에 맞춰 성공하지 못하는 경우 추가 시술에 대해서는 고스란히 100% 자비 부담으로 돌아온다.
맞벌이 부부의 고통은 한층 더 하다. 두 사람의 소득을 합산하기에 월평균소득 요건을 넘어서는 이들이 많은 것. 시험관 시술을 받고 있는 30대 여성은 “(소득이) 아슬아슬하게 정부지원 요건에서 벗어났다. 500만~600만 원 받자고 일을 그만둘 순 없지 않느냐. 설령 그만둔다고 하더라도 4회 만에 성공 못하면 그 뒤부터는 모두 자비로 해결해야 하는데 막막하다. 또 임신 후 육아비용까지 생각하면 쉽사리 일을 그만둘 수 없다”며 울상을 지었다.
또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경우에도 회사의 눈치 때문에 맘껏 치료받지 못하는 불임부부들도 수두룩하다. 채취, 시술 당일에는 법적으로도 휴가를 쓸 수 있지만 현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3년째 시험관 시술을 받고 있는 김 아무개 씨(여·34)도 매번 상사와 눈치싸움을 벌이고 있다.
김 씨는 “처음엔 병원 다니는 것을 숨겼지만 시간이 흐르니 도저히 안 돼 직속상사에게만 알렸다. 시술 받는 당일은 어떻게든 휴가를 내면 되지만 문제는 그 뒤다. 일명 ‘시체놀이’라고 해서 휴식을 취해야 하는데 꿈도 못 꾼다. 매번 착상에서 문제가 생기는데 회사를 그만둬야 하나 고민이 된다”며 “주변을 보면 1년 이상 시술 받는 이들 대부분이 권고사직을 당하거나 제 손으로 사직서를 쓰게 된다”고 전했다.
지방에 사는 부부들의 현실은 더욱 가혹하다. 부산에 살면서 대구로 병원을 다니는 30대 이 아무개 씨 부부는 온갖 혜택을 끌어다 휴가일정을 조절한다. 특별휴가와 연가도 부족해 병원에서 진단서를 끊어 병가까지 내야만 겨우 일정이 나온다.
휴가도 문제지만 동료들의 ‘이상한 눈초리’도 이 씨 부부를 힘들게 한다. 아내 이 씨는 “대부분이 남성 직원이라 불임으로 병원 가는 것을 이해를 못한다. 한번은 휴게실에서 날 두고 속닥이는 소리도 들었다. ‘애를 갖기 위해 병원까지 가야 하는 이유가 뭐냐’며 뒷담을 하더라. 그 이후로는 병원을 가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사회적으로 배려가 부족한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
‘불안’ 없으면 ‘불임’도 없다
불임부부들이 말하는 과거의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들도 ‘내 일’로 닥치기 전까지는 불임으로 겪을 고통에 대해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며 솔직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취재 초기에 만났던 한 40대 여성은 원인불명으로 무려 20여 차례 인공수정과 체외수정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는 “나조차도 불임은 하자 있는 사람들의 일이라 치부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막상 불임클리닉을 다니다보니 주변의 그런 시선들이 너무 싫더라. 나의 과거 모습인데. 부디 젊은 남녀들은 이런 고통을 겪지 않게 불임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미리미리 병원을 찾아 조기검진을 하는 게 최상이다”며 진심어린 조언을 남겼다.
기자는 지금에서야 말하지만 당시의 그 ‘조언’도 피부에 와 닿지 않았다. 하지만 4주라는 짧지 않은 시간을 불임취재에 매달리다보니 결코 ‘남의 일’이 아님을 깨달았다. 건강에는 전혀 이상이 없음에도 임신이 되지 않는 사례도 비일비재했고 본인이 아닌 배우자의 문제도 불임의 주요 원인이 될 수도 있었다. 무사히 첫 출산을 했더라도 그 뒤 불임이 되지 않으리라는 법도 없었다.
다양한 사연을 접하고 의사들의 현실적인 충고까지 접하고서야 불임이 남의 일이 아님을 깨달은 기자. 다행히 “너무 늦지 않았다”는 의사의 말과 함께 사전진료를 받아보기로 결심했다. 요즘엔 친구, 선후배를 막론하고 간단한 병원검진을 권유하며 ‘불임예방 전도사’ 노릇도 자처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의사들이 말했던 불임의 ‘진짜 해법’이 기억에 남는다. 서울의 유명 불임클리닉 출신의 한 의사는 “인공수정이나 체외수정은 공식적인 치료법이지 실제로는 ‘환경’이 가장 중요한 열쇠”라고 말했다.
그는 “병원을 방문하는 환자들의 얼굴을 보면 대부분 느낌이 온다. 이 부부는 금방 임신이 될 것 같다, 혹은 안 되겠구나. 물론 신체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경우다. 전자는 얼굴 표정부터가 다르다. 임신에 대한 확신, 부부간의 신뢰, 주변 가족들의 응원, 경제력. 이 네 박자가 고루 맞으면 ‘원인불명의 불임’은 없다”고 전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부부가 생각보다 많단다. 경제력이야 마음가짐으로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 차치하더라도 본인, 부부, 가족들의 마음이 맞지 않아 삐거덕거리니 임신도 뜻대로 안 된다는 설명이다.
앞서의 의사는 “한번은 부인이 진료를 받으러 간 사이 몰래 남편이 와서 ‘이제 임신 확률이 떨어지니 시술은 그만 받자’고 말해달라더라. 이유를 물었더니 시술 때문에 부부관계가 불편하다는 것이었다. 이런 남편으로부터 아내는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고 치료효과가 반감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불임은 ‘신’의 영역이지만 부부갈등 해소는 그 벽을 넘는 인간의 첫 번째 극복요건인 셈이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