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애
연예계에서 가장 큰 권력자는 단연 지상파 방송사다. 케이블채널과 종합편성채널의 인지도가 많이 상승했지만 몇몇 인기 프로그램을 제외하면 평균 시청률은 여전히 지상파의 10분의 1 수준이다. 때문에 지상파로 진출하기 위한 외주제작사와 연예기획사, 그리고 스타들의 눈치싸움이 치열하게 전개된다.
한 외주 제작사 관계자는 “편성권을 쥐고 있는 CP(책임 프로듀서)는 절대적 갑이다. 외주제작사가 1년에 1~2편의 드라마를 제작할 수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제때 편성을 받지 못해 드라마 제작이 수포로 돌아가면 1년간 손가락을 빨 수밖에 없다. 때문에 수시로 담당 CP를 찾아가 편성 사항을 체크하며 공을 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현빈
하지만 지상파 방송사가 가진 무소불위의 권력을 무력화시키는 이들이 있다. 시청률 보증수표라 불리는 드라마 작가들이 그 주인공이다. 김수현 김은숙 김영현 문영남 등 손대는 작품마다 ‘대박’을 내는 작가들을 확보한다면 편성은 떼어논 당상이다.
오는 10월 SBS에서 새 드라마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상속자들>을 선보이는 김은숙 작가는 대본 없이도 편성을 받았다. 게다가 대본을 읽지도 않은 상황에서 톱배우들이 출연을 결심했다.
최근에는 <내조의 여왕> <넝쿨째 굴러온 당신>을 쓴 박지은 작가가 이 대열에 합류했다. 박 작가는 아직 SBS에 시놉시스와 대본을 건네지 않았지만 SBS는 박지은 작가를 위해 기꺼이 연말 편성을 내줬다.
왼쪽부터 김은숙 작가, 박지은 작가
톱배우 역시 방송사가 ‘모셔’ 온다. ‘스타=흥행’이 성립되진 않지만 톱배우가 출연한다는 사실만으로 엄청난 홍보 효과를 얻고 그들이 출연하는 드라마에 붙는 광고 판매가 원활해 방송사에 큰 이익을 안겨줄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는 국내·외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현빈 원빈 배용준 이영애 정도가 ‘우선 편성’이 가능한 배우로 꼽힌다. 하지만 장동건이 김은숙 작가의 <신사의 품격>으로 브라운관에 복귀했듯 유명 배우들이 대부분 성공 확률이 높은 유명 작가의 작품을 선택하는 것을 감안하면 드라마 시장에서 ‘갑 오브(of) 갑’은 역시 히트 작가라 할 수 있다.
예능프로그램에서는 단연 톱MC가 갑이다. 강호동이 SBS <맨발의 친구들>에 투입되며 주말에 해외스케줄이 생기자 기존에 출연하던 MBC <무릎팍도사>가 녹화 요일을 옮겼을 정도다. 한 방송 관계자는 “출연자의 개인 스케줄 때문에 정해진 녹화 요일을 바꾼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강호동이었기에 모두가 수긍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유명 작가들과 방송사의 러브콜을 받고 유력 연예기획사가 서로 모셔가려는 톱스타들을 움직이는 진정한 갑이 있다. 다름 아닌 광고주. CF는 스타들의 전유물이자 자존심인 만큼 콧대 높은 스타들도 광고 재계약을 성사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톱스타 A는 재계약 시점이 다가오면 광고주들의 골프 모임 등을 찾아가 로비를 펼치는 것으로 유명하다. 한 연예계 관계자는 “A를 비아냥대기보다는 ‘대단하다’고 칭찬하는 이들이 더 많다. A 같은 프로정신 없이 매니저에게 무조건 재계약을 맺어오라고 윽박지르는 이들이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정글 같은 연예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갑을관계를 분명히 알고 처신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고 말했다.
안진용 스포츠한국 기자
‘떴다’ 하면 관계 역전
하지만 일단 스타덤에 오르면 관계는 백팔십도 달라진다. 소속사는 재계약을 성사시키기 위해 스타의 비위를 맞추기 시작한다. 수익 배분 비율도 스타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현격히 달라진다. 스타를 보유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기획사의 목소리가 커지고 신인 배우들도 ‘끼워팔기’할 수 있기 때문에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한다.
신인 시절 몸담았던 소속사와 오래 일하는 스타는 찾아보기 힘들다. 한 연예기획사 대표는 “자신의 무명 시절을 기억하는 소속사 식구들과 함께 있으면 갑을관계가 바뀌었기 때문에 제대로 대접받기 힘들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스타가 된 후 몸담은 소속사 관계자들과는 처음부터 갑을관계가 분명하기 때문에 이를 편하게 받아들이는 스타들이 적지 않다”고 전했다.
안진용 스포츠한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