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27일 청와대에서 빈프리트 크레치만 독일연방 상원의장을 접견,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다른 나라의 세부 정책을 명확하게 모델로 삼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가장 높았던 시기는 노무현 정부 시절이었다. 노무현 정부는 복지 확대에 힘을 쏟으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당시 노무현 정부와 진보진영은 대대적으로 스웨덴 모델을 국내에 소개하며 스웨덴 따라 하기를 이끌었다. 노무현 정부가 2030년까지 우리나라의 복지 수준을 미국 수준으로 향상시키는 내용을 담은 ‘비전2030’을 발표할 당시 내놓은 복지 모델이 실제로는 스웨덴이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정설이다.
이러한 스웨덴 따라 하기는 2006년 9월 스웨덴 총선에서 좌파연합이 우파연합에게 패배하자 스웨덴 복지모델 종언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일부 언론이 우파연합의 승리를 스웨덴 복지 모델의 실패라고 주장한 것이다. 이에 대해 노무현 정부 인사들은 우파연합의 공약 자체가 스웨덴 복지모델을 일부 수정한 것에 불과하다고 맞섰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아랍에미리트의 두바이 따라 하기가 인기를 끌었다. 이명박 정부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부터 두바이를 바람직한 발전 모델로 꼽아왔다. 심지어 인수위 소속 국가경쟁력강화특위 공동위원장에 데이비드 엘든 두바이 국제금융센터감독청 회장이 임명되기도 했다. 외국인이 인수위에 참여한 것은 그가 처음이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후보 시절에 이미 두바이를 방문하기도 했으며, “새만금을 한국의 두바이로 개발하겠다”고 밝혔고, 인천 송도신도시와 부산신항만의 개발모델로 두바이를 언급하기도 했다.
아랍에미리트를 구성하고 있는 7개 토호국 중 하나인 두바이는 언젠가 고갈된 석유에 의존하는 경제를 금융과 중계무역 등으로 바꾸기 위해 석유로 벌어들인 돈을 개발에 재투자했다. 이에 따라 두바이 곳곳에서 부동산 개발이 벌어지면서 세계 각국의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면밀한 수요조사나 자체개발 없이 부동산 중심으로 단기간에 과도한 투자를 벌인 데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자 2009년 국영기업인 두바이월드가 모라토리엄(채무상환유예)을 선언하며 무너졌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독일 경제 배우기가 ‘대세’로 떠올랐다. 이는 독일이 우리나라와 비슷한 수출 위주의 경제구조를 갖추고 있는 데다 금융위기를 초래한 미국이나 재정위기에 처한 다른 유럽국가와 달리 건실한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중소기업이 독일 고용의 70%, 교역의 80%를 차지하는 등 독일 경제의 척추역할을 하고 있는 점도 ‘중소기업 대통령’을 내세운 박근혜 대통령에게 시사하는 바가 컸다는 분석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높은 관심 탓인지 정부 부처와 정치권에서도 독일 배우기와 따라 하기가 한창이다. 국토교통부는 철도산업 선진화 방안을 내놓으면서 코레일을 지주회사로 하고 수서발 KTX 운용 자회사를 두는 방식의 독일식 모델을 채택하겠다고 밝혔다. 노대래 공정위원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독일 경제민주화가 정부가 추진 중인 경제민주화와 가깝다는 글을 남겼고, 중소기업중앙회 토론회에서는 현재 상속세 비중이 엄격한 가업상속제에 상대적으로 유연한 독일식 모델을 적용하는 안을 검토해야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독일이 걸어온 역사나 교육구조, 사회인식 등을 이해하지 못하고 단순히 독일 정치나 경제, 통일 정책 베끼기를 할 경우 독일 배우기는 공염불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준겸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