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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3월 인도네시아 방문 때 수행원으로 따라간 경제인들. 오른쪽부터 구본준 LG그룹 부회장, 손경식 대한상의회장,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최재원 SK그룹 부회장, 최용권 삼환기업 회장. 연합뉴스 | ||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카자흐스탄 방문 때 나자르바예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앞서서도 기업인들과 조찬 간담회를 가졌다. 이때 김신종 광물공사 사장은 “카자흐스탄은 세계 2위의 우라늄 보유국인데 우리는 이 나라로부터 아직 이렇다 할 이야기를 못 듣고 있다. 오늘 정상회담 때 새로운 우라늄 광구를 우리에게 선물할 수 없는지 꼭 물어 달라”고 대통령에게 직접 부탁을 하기도 했다.
해외에서 동행 기업인들에 대한 예우도 극진하다. 지난해 11월 브라질의 수도 브라질리아에서 APEC 정상회의가 열리는 페루 리마로 출발하는 과정에서의 일. 이 대통령은 수행 기업인들이 브라질리아에서 페루 리마까지 직항이 없어 다시 상파울루로 돌아간 뒤 리마행 비행기를 타야 하는 사정을 전해 듣고 곧바로 “기업인들을 특별기에 태우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의 배려 덕분에 이기태 삼성전자 부회장과 강덕수 STX 회장, 손경식 대한상의 회장, 이용구 대림산업 회장 등은 특별기 1등석에 앉아 편히 페루 리마로 갈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이 대통령의 해외순방에 동행하기 위한 기업들의 노력은 가히 필사적이다. 이 대통령에게 눈도장을 찍는 것은 물론 해당 국가 진출에 적잖은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행하는 영광을 얻는 기업인들은 예상보다 많지 않다. 순방 나갈 때마다 많아야 30∼40명 정도다. 게다가 경제 4단체장은 기본이며 단골로 동행하는 대기업 CEO(최고경영자)를 제외하면 그 숫자는 더욱 줄어든다.
경쟁률도 높지만 이 같은 경쟁에 참여하기 위한 기본 자격을 얻는 것조차 어렵다. 현재 수행 경제인단은 전경련 또는 대한상의, 무역협회 등에서 추천해 청와대 경제수석실 산하 지식경제비서관실에서 최종 선정한다. 선정 기준은 크게 두 가지다. 먼저 ‘현지에서 사업을 진행 중이거나 향후 구체적인 비즈니스를 계획하고 있는 기업’을 우선적으로 고려한다. 여기에 분야별, 기업 규모별, 업종별 등 다양한 분야의 대표성 있는 경제인으로 압축한다.
이 때문에 해외 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섰던 일부 대기업과 해외 지사가 있는 공공기관 및 금융권 등을 중심으로 경제인수행단이 꾸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반대로 내수 중심의 기업이거나 해외 사업이 아직 구체적이지 못한 곳은 명함도 못 내미는 실정이다. 실제로 재계 서열 10위권에 포함된 한 대기업은 이 대통령의 해외 순방에 한 번도 동행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즉, 이 대통령 순방에 한 번 따라 나갔던 기업은 또 가고, 못 갔던 기업들은 계속 못 가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지난해 5월 중국 베이징 및 칭다오(靑島) 방문과 같은 해 9월 러시아 방문을 비교해 보면 잘 알 수 있다. 중국과 러시아는 이 대통령 해외순방 지역 중 비교적 한국 기업들이 많이 진출해 있는 곳이다. 당시 중국 수행경제인은 38명, 러시아 수행경제인은 33명이었다. 이 가운데 두 곳에 모두 간 경제인은 11명이다.
기본적으로 손경식 대한상의 회장과 조석래 전경련 회장, 이희범 당시 무역협회장,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이 수행했고 그룹사에선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부회장,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이용구 대림산업 회장 등이 두 곳 다 수행했다. GS칼텍스와 대한항공의 경우 중국 방문 때는 사장단이, 러시아 때는 회장이 각각 참석한 것을 감안하면 기업 수로는 13곳이다.
여기에 포함되진 않았지만 단골 수행단인 삼성그룹과 포스코, 한국석유공사, 한국가스공사 등을 포함하면 전체 수행 경제인의 절반 정도가 해외순방 전 사실상 결정된 셈이다. 이에 나머지 절반을 놓고 중견그룹과 중소기업이 치열한 자리다툼을 하게 된다. 그나마 중소기업의 경우 해외 현지에서 사업을 주도적으로 하기보다는 현지 기업과 함께 참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중국 수행 경제인단 38명 중 중소·중견기업 출신은 14명이었으며 부산상의 등 협회장을 빼면 10명에 불과했다. 러시아에서는 더욱 줄어 중소기업인은 6명에 불과했다. 이 대통령이 평소에 “새 정부는 출범하면서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선언했는데 이는 중소기업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지만 정작 해외순방에선 중소기업들이 상대적으로 소외되고 있는 셈이다.
특히 ‘박연차 게이트’와 관련해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이 지난해 이 대통령의 중국 순방 때 동행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진 것도 중견·중소기업에 더욱 악재가 될 전망이다. 수행 경제인단에 대한 ‘사전 검열’이 더욱 철저해져 이 대통령이 방문할 때 계약서에 ‘도장’을 찍을 만한 확실한 성과가 없으면 수행 경제인단에 포함되기가 더 어려워질 전망이다.
실제로 전경련 등에서 명단을 청와대로 올리면 청와대 민정라인에서 해당 기업과 현지 사업내용에 대해 다시 한 번 정밀하게 점검해 최종 수행 경제인 명단을 확정한다고 한다. 의욕은 넘치지만 가시적인 성과는 없는 중소기업 입장에선 사실상 이 대통령의 해외순방 동행 희망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청와대 안팎에선 벌써부터 수행 경제인단 선정이 너무 성과주의로 흐른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최근 황영기 KB금융지주 회장이 이명박 대통령의 중앙아시아 순방에 동행하지 않은 것을 놓고 벌어진 해프닝을 곰곰이 살펴보면 잘 알 수 있다.
청와대에선 “중앙아시아 순방이 자원외교 중심으로 이뤄지는 데다 KB금융지주가 중앙아시아에 투자한 금액이 크지 않아 황 회장이 수행 경제인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이를 뒤집어 보면 KB금융지주처럼 큰 금융기관이 해당국에 투자를 했더라도 그 규모가 크지 않고 당장 ‘도장을 찍을 일’이 없다면 수행 경제인단에 포함되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 때문인지 시간이 갈수록 과거 해외순방에서 계약 체결 건수를 중시하던 관행이 이명박 정부 들어서도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정작 이 대통령과의 순방을 기회로 시장을 개척하려는 기업들에게는 순방 동행의 기회가 오지 않고 해외 곳곳에 이미 튼튼한 사업장이 있는 기업들은 가고 싶지 않아도 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의 해외 수행경제인 명단에서 낯익은 이름을 확인하는 상황은 한동안 지속될 수밖에 없을 듯하다.
전용기 파이낸셜뉴스 기자 courage@fn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