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에 대한 검찰 수사가 막바지로 치달으면서 고민이 깊어지는 것은 이명박 정부 관계자들만은 아니다. 검찰 수사팀이 원 전 원장에게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음에 따라 불똥이 박근혜 정부로도 튈 상황이기 때문이다. 원 전 원장 수사가 시작될 때만 해도 “전 정권 사람인데 뭘…”이라며 애써 태연한 척했던 청와대 관계자들은 이제 극도로 말을 아끼면서 상황을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일요신문DB
검찰 수사가 이렇게만 흘러간다면 현 청와대도 별로 신경 쓸 일은 없을 것이다. 오히려 원자력발전소 가동 중단 사태에 대응하는 방식에서 알 수 있듯, 현 청와대 내부에서는 전임 이명박 정부 시절의 비리나 잘못된 관행 등과 분명히 선을 그으려는 기류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원 전 원장이 개인 비리 의혹으로 수사를 받고 있다면 현 청와대로서는 더 철저한 수사와 비리 척결을 주문할 수도 있는 상황인 것이다.
하지만 원 전 원장에게 선거법 위반 혐의가 적용된다면 상황은 전혀 달라진다. 지난해 대선 당시 국정원 직원들이 조직적으로 인터넷 여론 조작에 나섰고, 이것이 원 전 원장의 지시에 따라 이뤄졌다고 검찰이 결론 내렸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는 지난해 대선의 정당성, 나아가 박근혜 대통령의 정통성 시비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사안이다. 여권 일부 인사들이 “우리가 국정원 덕에 이겼다는 거냐”며 검찰 수사에 노골적인 불쾌감을 표하는 이유도 이 사안이 갖는 ‘휘발성’ 때문이다.
청와대도 분위기가 좋을 리 없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최근 사석에서 원 전 원장 수사에 대해 “새 정부가 권력기관을 장악하지 않았다는 증거”라면서도 아쉬운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이 관계자는 “채동욱 검찰총장이 이럴 줄 몰랐다”고도 말했다. 채 총장 임명 당시 그가 야권 인사들과도 가까운 인물이라는 이유로 반대하는 기류가 있었는데, 이를 무릅쓰고 임명해 준 대통령에게 ‘칼끝’을 돌리고 있다는 불만이었다.
하지만 현재로선 마땅히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게 청와대 관계자들을 더욱 곤혹스럽게 만든다. 돌아가는 상황이 못마땅하지만 이런 민감한 시기에 함부로 입을 놀리거나 검찰과 충돌하는 모습을 보였다간 수사 개입 논란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박공헌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