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한 서울중앙지검 2차장 검사가 지난 14일 기자회견을 열고 국가정보원 관련 의혹 사건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채동욱 체제의 ‘원세훈 불구속 기소’ 건은 검찰의 정치적인 계산에서 내놓은 절충안이라는 시각도 있다. 이상민 인턴기자
최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지난 5월 말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이 곽상도 청와대 민정수석으로부터 “너희들 뭐하는 사람들이냐, 도대체 요즘 뭐하는 거냐, 이런 수사를 해서 되겠느냐”는 내용의 전화 한 통을 받았다는 충격적인 주장이 나왔다. 이에 대해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해명했지만 그 뒤 윤석열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장이 상황을 다시 반전시켰다. 윤 팀장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총선, 대선에 개입하라고 지시한 것은 명확한 데도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지금 수사지휘권을 행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윤 팀장은 “(법무)장관이 저렇게 틀어쥐고 있으면 방법이 없다”면서 “이런 게 수사지휘권 행사가 아니면 뭐냐. 채동욱 검찰총장도 자리가 아까워서가 아니라 어떻게든 이 사건을 최소한 불구속기소라도 해서 공소유지를 해보려고 참고 있는 것”이라며 채동욱 총장의 현재 심중을 설명했다.
채 총장이 청와대 입장을 호락호락 봐주진 않을 것이란 뉘앙스의 주장이었다. 이를 두고 법조계 일각에서는 “10년 만에 ‘특수통’ 출신의 검찰총장이 지휘하는 검찰의 등장에 청와대가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였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채 총장은 ‘국정원 사건’ 담당 검사로, 수사기술자로 정평이 난 윤석열 검사를 내세우는 등 사실상 ‘강경수사’를 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또한 채 총장은 최근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과의 사석에서 “수사팀이 제일 잘 알 테니까 수사팀 의견대로 하라”는 내용의 ‘의미심장한’ 독려를 한 것으로도 알려진다.
왼쪽부터 곽상도 민정수석, 김학의 전 차관.
검찰 내부 분위기도 한몫했다. 그동안 검찰 내부에선 이른바 ‘서울대 출신 특수통’ 검사들이 전 정권에서 ‘TK’(대구·경북·고려대 출신 검사)에게 밀리고 있다는 얘기가 계속 나왔다. 하지만 올해 정권 교체 과정에서 ‘친이’, ‘TK’인사들이 물갈이되고 ‘서울대 특수통’들이 다시 주류가 되는 양상이 전개되면서 검찰 내부에선 ‘올해부터는 뭔가 보여주겠다’는 의지가 그 어느 때보다 강하다는 것이다. 특히 이런 분위기를 ‘서울대 특수통’ 출신 채동욱 신임 총장이 주도하면서 이번 원세훈 전 원장의 불구속 기소 갈등도 불거져 나온 것으로 해석된다.
특수통 출신 한 검찰 관계자는 지난 12일 기자와의 사석에서 “채 총장은 ‘서울대 출신 특수통’의 전설로 검찰 내에서 특수통, 기획통 모두에게 존경받는 몇 안 되는 인물이다. 정치 성향을 철저히 배제하고 수사 과정에서 나온 팩트만 보고 처리하기 때문에 청와대 입장에선 앞으로도 애를 좀 먹을 것”이라며 “신임 총장 지휘 하에서 우리 검사들이 그 어느 때보다 눈치 안보고 수사할 수 있게 됐다”고 귀띔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만일 청와대 의중대로 김학의(전 차관)가 총장이 됐다면 윤석렬(검사)이 특수팀 팀장을 맡지도 못했을 거다. 윤 검사는 정치에 관심 없고 검사의 자부심 하나로 오로지 수사만 하는 사람으로 유명한데, 원세훈이 잘못 걸린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이렇듯 검찰이 채 총장을 중심으로 강한 연대감을 보여주며 권력핵심과도 각을 세우자, 청와대 내부에서는 뒤늦은 후회가 나오고 있다는 전언이다. 특히 채 총장의 ‘우연한’ 발탁에 대해서도 말들이 많다. 청와대가 추천위원회 선정 후보 3인 중 김학의 전 차관과 기수를 맞추기 위해 소병철 전 대구고검장 카드를 버리고 채동욱 총장을 내세웠던 게 화근이었다는 얘기다. 여기에는 곽상도 민정수석이 채 총장과 같은 특수통 출신이라는 점, 박근혜 대통령의 법률지원특보단장 강신욱 전 대법관이 채 총장의 은사라는 점이 ‘안도감’으로 작용했다는 설도 있다. 그런데 막상 채동욱 카드를 열어보니 예상외의 강경한 태도에 ‘아차, 싶었던 것’이다.
지난 4월 검찰개혁심의위원회 출범 및 위촉식에서 채동욱 검찰총장(왼쪽)과 정종섭 위원장을 비롯한 심의위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청와대 사정을 잘 알고 있는 한 여권 관계자는 최근 기자와의 통화에서 “(곽 민정수석) 본인은 법조 컨트롤타워가 되길 꿈꾸지만 그게 쉽게 되겠느냐”며 안타까워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VIP(박근혜 대통령) 측근 몇몇들 사이에서 ‘(검찰이 청와대의) 눈치를 이렇게 안 볼 수 있나’ 하는 섭섭한 소리도 나오고 있다”며 “최근 청와대 내부에선 ‘민정수석 카드’에 미스(mistake·실수)가 있었던 것을 인정하는 기류마저 흐르고 있다”고 털어놨다. 사실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곽 민정수석이 검찰 수사팀에 항의 전화나 넣는 우스운 이미지가 돼버린 것을 두고 박근혜 대통령의 심기도 불편해졌다는 분석도 흘러나온다.
한편 청와대와 정권 초기부터 원세훈 전 원장 처리를 두고 사실상 척을 지게 된 ‘채동욱 호’의 항해가 심상치 않을 것이란 예상이 법조계 내부에서도 지배적인 가운데 채 총장이 1년 안에 총장직에서 스스로 물러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특히 민주당은 채동욱 체제의 ‘원세훈 불구속 기소’ 건을 검찰의 정치적인 계산에서 내놓은 절충안이라고 보고 있다. 검찰 중립이 청와대에 의해 훼손된 것으로 보고 올해 안에 검찰개혁 이슈를 강하게 밀어붙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정치권의 압박에 대해 채 총장은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검찰을 지킬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들이 많다. 특수통 출신 한 검찰 관계자는 “채 총장은 평소 중수부 폐지를 반대해왔고 검찰 조직의 자체적인 정화를 원하는 인물이다. 정치권에서 개혁 압력이 들어올 경우 혁신안을 받아들이는 대신 검찰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옷을 벗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채 총장을 ‘눈엣가시’로 여기게 된 청와대가 조만간 ‘검찰개혁’ 카드를 꺼낼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닻을 올린 지 이제 두 달이 된 ‘채동욱 호’가 검찰 독립과 정권 수호의 두 가지 항로를 모두 개척할 수 있을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김포그니 기자 patronus@ilyo.co.kr
외압 굴하지 않는 ‘깐깐 특수통’
채동욱 검찰총장. 이종현 기자
검찰 본연의 수사를 중시하는 세력이 들어서면서 정재계와의 갈등은 필연적이었는지도 모른다. 최근 ‘국정원 사건’, ‘CJ 비자금 사건’ 등 정재계의 ‘뜨거운 감자’들이 강경한 수준에서 처리될 것이라는 예상도 이 같은 배경에서 나왔다. 정치권 일각에선 채 총장을 견주어 “검찰개혁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라는 칭송마저 보낸다. 채동욱 총장은 과연 어떤 인물일까.
먼저 채 총장은 ‘타고난’ 검사라는 데 이견이 없다. 채 총장을 10년여간 알고 지내온 한 검찰 관계자도 채 총장의 정치 성향에 대해선 모른다고 대답한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채 총장은 신임검사 시절부터 로봇처럼 오직 수사만 알았다. 게다가 정치 얘기를 깊게 나눌 만큼 검찰 내 사모임에 자주 참석하지도 않았다”고 답했다.
채 총장과 관련해 주목해 봄직한 일화는 또 있다. 채 총장은 지난 2006년 대검수사관으로 재직하던 시절 윤석열 현 특별수사팀장과 윤대진 현 특수2부장을 가르쳤던 ‘사부’로 알려져 있다. 현재 윤석열 팀장은 ‘국정원 사건’, 윤대진 부장은 ‘CJ 비자금’ 사건을 담당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최근 검찰이 맡은 중대 사건의 ‘양대 산맥’을 채 총장의 ‘애제자’들이 쥐고 흔들고 있는 셈이다. 이를 두고 ‘채 총장도 근무연을 따지는 인물이 아닌가’는 의혹이 나올 법도 한데 검찰 내부는 조용하기만 하다. 대다수의 검찰 관계자는 “윤석열, 윤대진은 채동욱 ‘주니어’나 마찬가지다. 채 총장이 자기와 똑같이 키웠다. ‘윤 씨 두 사람’(윤석열·대진)이 얼마나 ‘채’(총장)처럼 독종(검사)들인데. 대형로펌도 윤 씨들과 마주치길 꺼린다”라고 답했다.
수사에서 독보적 기량을 선보였던 채 총장은 과거 서울지검 특수2부장에서 서산지청장으로 좌천되는 등 인사 상 불이익을 여러 차례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대내적으로는 부장, 차장 시절 검찰 사모임에 발길조차 주지 않았고 대외적으로는 정치수사에서 외압에 굴하지 않았던 게 이유라면 이유였다고 한다. 수사를 천직으로 아는 검찰총장의 미래는 과연 어떻게 될까.
김포그니 기자 patronus@ilyo.co.kr